<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도날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첫 아시아 순방이 끝난 지 10여 일이 지났다. 일본, 한국, 중국을 오가며 미국우선주의를 기본으로 한 다양한 외교로 순방기간 내내 삼국의 언론에는 트럼프 이슈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채로웠던 점 하나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쟁이었다. 양국은 트럼프 대통령 초청을 통해 국내외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려 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꺼내든 메시지는 ‘납북자’였고 우리나라가 꺼내든 메시지는 ‘위안부’였다. 결과적으로 두 나라는 두 메시지의 이슈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두 나라의 빅 이벤트에 즐거워 할 수만은 없었다. 특히 국내 납북자 단체와 가족들 얘기다.

이미일 이사장 “우리나라는 아직 먼 것 같아요”
정권 바뀌어도 납북자 대하는 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납북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납북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소위 진보 정부에서는 ‘납북자’란 단어는 금기시돼 왔다. 북한과의 협상과 대화를 위해 숨겨야 할 존재였다. 북한을 자극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란 게 이유였다. 납북자 가족들과 단체 그리고 당사자들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에서 한탄만 하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韓 위안부 vs 日 납북자
정권 이익이 우선인가


아베 정부의 납북자 이슈화 계획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코타 메구미의 어머니 사키에 여사를 비롯해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 17명을 만난 사실을 지난 7일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1면 톱으로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을 만난 것은 북한 인권 문제를 일본 정부와 연계해 해결해나가겠다는 자세를 명확히 보여준 것이라며 자세히 보도했다.

특히 이 신문은 워싱턴 외교소식통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인 납북 문제에 대해 “현재에도 진행 중인 테러행위”라는 인식을 강력히 갖고 있다고 전했다. 또 곧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테러지원국가 재지정에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사건과 함께 일본인 납북 문제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신문은 무엇보다 이 면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납치 피해자를 귀국시키면 이는 매우 특별한 것의 시작”이라고 한 데 대해 (일본인 납북 문제가) 북한에게 미국과의 협상 실마리가 될 가능성을 시사했다며, 향후 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아사히신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에 주목하며 일본인 납북 문제가 긴장이 고조돼 있는 북한 정세를 타개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한 지원을 표명했다고 1면 톱으로 전했다.

특히 이 신문은 납북자 피해 가족과의 면담이 성사된 데는 미국 NSC(국가안전보장회의) 매슈 포틴저 선임 보좌관이 큰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연락회의 사무국장인 메구미의 동생 타쿠야씨가 지난 9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워싱턴에서 포틴저 보좌관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부모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에 해병대 출신인 포틴저 보좌관이 “누구도 내버려 두고 갈 수 없다”는 군의 명언으로 대답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포틴져 보좌관에게 일본인 납치 문제를 듣고 지난 9월 유엔 총회 연설의 일본인 납치 문제 언급은 물론 이번 면담도 결정했다고 전했다.

“과거 정부들이 못한 거
우리가 한다, 그러면 좋은데”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의 납북자 가족들의 만남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환영만찬장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트럼프와 포옹하는 장면이 이슈가 되며 ‘일본에 제대로 한방 먹였다’는 칭찬이 쏟아졌지만 그 자리에 납북자 가족이나 단체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컸다.

기자는 지난 8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납북자 가족의 만남을 지켜보며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있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환영만찬에 초청을 받았냐고 물었지만 “그런 거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또 이 이사장은 “안 부르죠, 과거 정부들이 제대로 못한 거 우리가 제대로 한다, 봐라, 이러면 좋은데 어리석은 것 같다”며 한탄했다.

이어 이 이사장은 “위안부만 나가서 악수하고 포옹하고. 저희만 부르는 것도 아니고 같이 부르면 면도 서는데”라며 “일본의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은 가서 만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먼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하 가족협의회)는 지난 8월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만든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조사 보고서’ 발간을 위해 애서 왔다. 지난 2010년 12월 출범한 위원회는 같은 해 제정된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보고서를 만들어 왔다.

총 15권의 보고서에는 그동안 가족협의회가 수집해 왔던 납북자 정보가 고스란히 담겼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부에서 제대로 도와주지 않을 때도 이들은 이들의 가족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써 왔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이들의 외침에 묵묵부답이다. 지난 8월 인터뷰 당시 이미일 이사장은 꾸준히 통일부 장관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고 한다. 오는 11월 29일이면 개관하는 ‘6·25전쟁 납북자기념관’ 개관식에서는 볼 수 있겠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

이 이사장은 “통일부 장관 면담을 신청했는데 (통일부 직원들이) 우리 보고 거꾸로 물어본다. (벌써) 만난 줄 알았는데 못 만났냐고. (통일부 장관을) 아직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며 “기념관 개관식서 어설프게 만나고 싶지 않다. 그 전에 만나야 하는데…”라며 아쉬워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파악하고 있는 전시납북자는 약 9만6천여 명이다. 이 이사장은 이보다 많은 납북자 수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공식적인 수치에 반영하지 않았다. 납북자 가족들이 납북자가 된 가족들을 기다려 온 시간은 자그마치 67년이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정부는 북한에 납북자 신원 확인도 제대로 요청하지 못하고 있다. 생존 가족들조차 생을 마감한다면 이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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