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재건축 비용 어떻게 마련하나”···세입자 “이사 원해···보증금 돌려달라”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해 9월 경주에 이어 지난 15일에도 포항에서 중형 지진이 발생했다. 약 14개월 만에 또 다시 지진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내진(耐震) 설계 외장재 내진 강화, 부실공사, 필로티 등 똑같은 문제점이 확인되면서 정부를 향한 비판 여론과 함께 건축물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또 피해를 당한 주택의 철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집주인의 재건축 비용 부담, 세입자의 임대보증금 회수 문제로 양측의 잡음도 커지고 있어 범정부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007년 강릉 지진 이후 10년, 내진 설계 문제점 여전
포항 일부 주택 철거 불가피···돈 없는데 재개발‧재건축 어떻게?


지난 2007년 1월 강릉 오대산에서 규모 4.8의 지진이 있었을 때도 최근 포항 지진과 같이 설계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일부 건축사의 안전 불감증과 허술한 법 규정 때문에 엉터리 내진 설계가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진 설계의 중요성은 강조되지 않아 개선된 점은 크게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건물 대부분이 악성 날림 공사, 부실 공사, 불법 시공 등으로 밝혀지고 있는 만큼 이번 지진을 계기로 지진과 관련된 법안 통과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반면 전문가들은 단순히 법만 개정한다고 내진 설계가 강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미 내진 설계 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으나 사실상 관리감독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

지진대책법은 내진 설계 대상 시설물을 정하고 해당 건물을 건축할 때는 내진 설계 여부를 관할 지자체에서 확인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내진설계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각 지자체의 건축인허가 공무원이 건축물 설계자가 작성한 서류만으로 행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파트가 아닌 빌라의 경우는 시공자나 감리업자가 불분명하다는 것도 문제다. 일본의 경우 건물을 신축할 때 소규모 건축물이라도 내진 설계 기준을 준수했는지 전문가로부터 ‘감리’를 받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강제하고 있지 않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현행 건축법상 내진 등급을 설정하도록 하고 있으나 세부 관리 지침이 미흡하다”면서 “건축물의 내진 능력 공개를 의무화하는 데 그치고 있어 실질적인 안전 관리 지침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진 취약한 필로티
2015년 기준 주택의 88%

 
내진 설계는 구조공학적 시각에서 강한 지반 운동에 견딜 수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것을 말한다. 즉 지진에 견딜 수 있는 구조물의 내구성을 뜻한다.

윤영일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내진 설계 대상 중 실제 내진 설계가 확보된 건축은 20.6%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국토교통부가 밝힌 도시형 생활주택 안전실태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지진발생에 취약한 필로티 구조(건물에서 지상층에 면한 부분에 하중을 지지하는 구조체 이외의 외벽, 설비 등을 설치하지 않고 개방시킨 구조‧주로 공중의 통행, 차량의 통행, 주차장 등으로 사용)의 도시형 생활주택이 전국적으로 88%(2015년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내진 설계가 의무 규정돼 있지 않다. 따라서 서울의 건축물 70%, 학교 건축물 30%는 내진 성능을 갖추지 못했고 공장 역시 40%가 내진 성능이 부족하다.

지난 2015년부터 3층 이상 또는 500㎡ 이상인 모든 건축물에 대해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고 있으나 법이 소급 적용되지 않아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부터 내진 설계 적용 대상을 ‘2층 또는 200㎡ 이상 건물’로 확대하는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개인 소유 건축물엔 강제할 수 없고, 기존 건축물에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크다.
 
철거‧재건축 가닥
피해자 길거리 나앉나

 
포항 지진 여파로 일부 주택의 철거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집주인의 재건축 비용 마련과 세입자의 임대보증금 회수가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포항시는 피해가 집중된 지역 주민과 협의할 계획이며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주택 파손은 ‘소파(기둥·벽체·지붕 등 주요 구조부가 50% 미만 파손됐으나 수리하지 않고는 주택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 ‘반파(기둥·벽체·지붕 등 주요 구조부가 50% 이상 파손돼 수리하지 않고는 주택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 ‘전파(기둥·벽체·지붕 등의 주요 구조부가 50% 이상 파손돼 개축하지 않고는 주택 사용 불가능한 경우)’ 등으로 나뉜다.

현재 국토부는 소파, 반파, 전파 등 지원 단가를 각각 나눠 복구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 국토부는 지진으로 파손된 주택의 복구비용 지원을 위해 총 480억 원의 융자금을 긴급 편성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국토부는 융자 한도를 특별재해지역 기준으로 전파‧유실 주택의 경우 4800만 원에서 6000만 원, 반파 주택의 경우 24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진으로 인해 주택이 파손되지는 않았으나 필로티 구조 등 지진에 취약한 기존 주택 소유자의 내진보강비도 지원한다.

단독주택, 연립주택 및 다세대주택 등 내진보강을 희망하는 주택 소유자 대상으로 호당 4000만 원까지 융자 지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철거 주택 재건축 시 발생하는 비용 대한 추가 지원이 쉽지 않고 당분간 세입자의 보증금 회수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 밖에 지진 보험에 가입해 있다면 재건축 여유가 생길 수 있으나 대다수의 피해자는 미가입 상태여서 길거리로 나앉을 형편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자연재해로 집주인‧세입자 모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지만 세입자가 계약 해지 등을 요구하면 집주인은 결국 보증금을 돌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철거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집주인의 재건축 비용 마련, 세입자들의 보증금 회수 등은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지원과 관련된 법 개정, 모금된 성금 적극 활용 등의 확실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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