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동지 부통령에게 권력 안 넘기려다 군에 덜미
쿠데타 세력, 무가베의 공로 인정해 가택연금 그쳐


로버트 무가베(93) 짐바브웨 대통령이 37년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지난 21일(현지시간, 이하 같음) 사임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무가베 대통령은 이날 짐바브웨 의회의 제이콥 무덴다 의장에게 사임서를 전달했다. 공영TV를 통해 공개된 사임서에서 무가베 대통령은 “나 로버트 가브리엘 무가베는 공식적으로 내 사임을 밝힌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즉시 효력을 발휘한다"며 “내 결정은 자발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짐바브웨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부드럽고 평화로운, 비폭력적 권력 이양을 바란다"고 말했다. 무가베 대통령의 사임은 의회가 정식 탄핵 절차에 들어간 가운데 나왔다. 무가베 대통령은 지난 11월 14일 군부의 정권 탈취에도 불구하고 사임을 거부해 왔고, 사임을 발표하기 불과 며칠 전까지 12월 전당대회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임시 대통령은 에머슨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이 90일간 맡게 된다. 음난가그는 무가베 대통령의 유력한 후임이었으나, 대통령직을 노리는 무가베의 젊은 부인 그레이스 여사와의 갈등 속에 11월 초 무가베에 의해 전격 해임됐다. 음난가그와 해임에 대한 반발은 군부의 쿠데타로 번졌고 이는 결국 무가베 대통령의 권력 상실로 이어졌다. 집권 여당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 애국전선'(ZANU-PF)은 무가베의 사임 선언 하루 전인 20일 음난가그와를 대표로 선출하고, 국가 최고 지도자로 지명했다. ZANU-PF대변인은 21일 “음난가그와는 향후 24시간 내에 돌아와 90일간 대통령으로서 취임선서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짐바브웨 국민들은 무가베 대통령의 사임에 환호했다. 일부 시민들은 길거리로 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고, 도로에서 사임을 반기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울려 퍼졌다. 티나시 차카네트사(18)는 “37년간 독재해 온 무가베가 사라져서 너무 행복하다. 농담 아니다"라며 “새로운 짐바브웨는 국민이 통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군부 쿠데타를 이끈 콘스탄티노 치웬가 장군을 칭송했다. 무가베 대통령과 냉랭한 관계를 맺어 온 미국도 환영 입장을 밝혔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은 "로버트 무가베의 사임으로 오늘은 짐바브웨의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우리는 목소리를 내고 평화롭고 명백하게 변화를 외친 모든 짐바브웨인들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모든 정당에 헌법과 민간질서를 존중할 것을 요청한다"며 “짐바브웨 지도자들에게 국민들의 더욱 안정되고 유망한 미래를 위해 필요한 정치적, 경제적 개혁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는 짐바브웨의 자유·공정 선거 실시를 돕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1890년대부터 1980년까지 짐바브웨를 식민 지배했다. 당시 무가베 대통령은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과 함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메이 총리는 “무가베의 사임이 짐바브웨에 새로운 자유의 길을 구축할 기회를 가져왔다"며 “짐바브웨의 가장 오랜 친구로서, 우리는 국제·지역 파트너들과 함께 (짐바브웨가) 더 밝은 미래를 성취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국제사회의 시선은 권력 핵심에 복귀한 음난가그와에 쏠린다. 그는 1980년 짐바브웨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부터 무가베의 2인자 역할을 맡아 왔다. 짐바브웨 내에서는 빈틈없고 무자비하며 효과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는 뜻에서 ‘악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는 내년 치러질 짐바브웨 대선의 유력한 차기 주자로 꼽혀 온 만큼 향후 정국 움직임에 따라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음난가그와는 평소 군 내에서 자신의 지지 기반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왔다. ‘팀 라코스테'로 불리는 민간 지지 세력도 상당수에 달한다. 부통령직에서 경질된 후 그는 외국으로 몸을 피하고 전략을 가다듬었다. 그가 피신한 지 며칠 만에 짐바브웨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무가베 대통령과 그의 가족을 가택 연금했다. 당내 지지 세력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ZANU-PF 내 음난가그와 측근들은 로비 활동을 통해 19일 무가베 대통령을 당 대표에서 파면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무가베를 몰아내는 행동에 나섰던 군부가 무가베를 대통령 직에서 강제로 축출하지 않고 그의 사임을 유도한 것은 무가베가 지닌 ‘독립 영웅'으로서의 상징성과 그에 대한 지지 여론을 고려한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세계 최고령 지도자 무가베가 37년 간 통치했던 짐바브웨는 아프리카 대륙 남부에 위치한 소국이다. 인구 약 1600만 명의 짐바브웨는 196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옛 로디지아에 뿌리를 두고 1980년 거듭난 국가이다. 짐바브웨는 영국에서 독립 후 국가 이름을 로디지아에서 짐바브웨로, 수도 이름을 솔즈베리에서 하라레로 변경했다. 짐바브웨는 로디지아로부터 해방될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에서 가장 의식주가 양호한 나라로 꼽혔다. 한때 식량과 광물도 풍부하고 보건시스템이 좋은 나라로도 평가를 받았다. 광물과 금, 농수산물이 주요 수출품이며 관광산업과 사냥 수익은 외화 수입원으로 꼽힌다. 그러나 무가베가 1980년 초대 총리에 올라 37년간 집권하는 동안 식량과 깨끗한 식수가 부족하고 기본 위생과 보건환경이 열악한 나라가 됐다. 지금은 장기집권과 실정으로 경제도 악화돼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로 쇠진한 상황이다. 짐바브웨에서는 정치 혼란과 지폐 남발 등으로 천문학적인 인플레가 발생해 자국 통화의 유통이 아예 불가능해져 짐바브웨 정부는 2015년 자국 통화를 정식으로 폐지하고 미국 달러화를 중심으로 몇 종류의 외국 화폐를 쓰게 하다 새로운 통화를 발행하기도 했다. 올해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북한과 비교해 소득 수준이 비슷한 1100달러 정도이다. 무가베의 몰락은 수억 명이 여전히 권위주의 통치자들의 권력 남용에 시달리며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들 때문에 고통을 겪는 아프리카 대륙에 걸쳐 반향을 일으킬 전망이다. 무가베가 강제 축출되기 전 가족과 재산을 보호 받기 위해 쿠데타 세력과 일궈낸 타협은 다른 불안한 지도자들에게 참고 사항이 되기에 족하다. 무가베의 실각에 등골이 서늘했을 다른 아프리카 지도자들로는 31년째 권좌에 있는 요웨리 무세베니(73) 우간다 대통령,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피에르 은크룬지자 부룬디 대통령, 그리고 조세프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김정아 기자  jakk364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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