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정치권에는 수많은 ‘박(朴)’이 등장했다. ‘친박(친 박근혜)’, ‘진박(진짜 친박)’, ‘원박(원조 친박)’, ‘강박(강성 친박)’, ‘신박(신 친박)’ 등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은 박 전 대통령 마케팅에 혈안이 됐었다. 한국당의 최대 주주인 TK에서는 지난 총선 공천 및 선거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우지 않은 후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고 보수의 심장에서 ‘배신자’ 낙인이 찍힌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역시 총선에서 박 전 대통령 마케팅을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친박·진박을 자처하던 TK 정치인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박 전 대통령이 자유한국당에서 제명되고, 홍준표 대표가 당을 장악한 시점에 국정원 특활비 파문까지 터지자 친박계가 스스로 소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관심은 15일로 예정된 한국당 원내대표 선거다. 무계파로 돌아선 TK 친박계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 ‘無계파 선언’ 親朴, 그래도 홍문종? “일단 김성태는 안 돼!”
- 친박→진박→탈박, 한국당 TK 재편 빨라진다

자유한국당 내 최대 계파로 분류돼 온 대구·경북(TK) 지역 친박계가 사실상 소멸의 순서를 밟고 있다. TK 친박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제명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파문을 겪으며 중립을 고수하거나 무(無)계파 성향으로 탈바꿈하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다.

20대 총선을 기준으로 최근까지 TK 한국당은 친박과 비박의 이분지계로 갈라져 있었다. 대구의 경우 친박계는 윤재옥(달서구을)·초선 곽상도(중구-남구)·정종섭(동구갑)·추경호(달성) 의원을 꼽을 수 있다. 경북은 김석기(경주)·김정재(포항북구)·백승주(구미갑)·장석춘(구미을)·최교일(영주-문경-예천)·이만희(영천-청도) 의원이 친박계로 분류된다.

TK 親朴 곽대훈·정종섭·
최교일·추경호 탈박 선언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 초선의원 14명은 지난달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당의 혁신에 뜻을 같이하는 우리는 계파주의 배격을 천명한다”면서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이런 계파정치의 징조가 나타난다면 단호히 배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초선의원 대표로 성명을 발표한 이은권 의원은 “우리 당은 그간 계파정치와 패거리 정치로 정당정치와 민주정치를 왜곡시키고 정권까지 빼앗겼다”면서 “우리 당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계파정치 청산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고 그 과정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성명에는 이 의원을 비롯해 성일종·유민봉·곽대훈·김성훈·김성태·김순례·김종석·송석준·윤상직·정종섭·정유섭·최교일·추경호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 중 TK지역에서는 곽대훈(대구 달서구갑)·정종섭(대구 동구갑)·최교일(경북 영주시문경시예천군)·추경호(대구 달성군) 의원이 기자회견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모두 지난 4·13 총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마케팅에 열을 올렸고 이것이 주효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박 전 대통령에 의해 공천을 받고, 박 전 대통령 마케팅으로 당선된 친박·진박 TK 정치인들은 이제 스스로 소멸의 길을 택한 것이다.

아울러 친박계로 알려진 이재만 최고위원 역시 최근 ‘친박’에서 ‘친홍’으로 들어선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특히 최근 홍 대표가 ‘이 최고위원에게 뜻을 맞춰 같이 가자’고 제안한 것으로도 알려졌으며 이 최고위원도 지역에서 홍 대표와의 우호적 관계를 공공연하게 흘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0일 대구 수성호텔에서 열린 대구·경북 중견 언론인 모임인 아시아포럼21 정책토론회를 마친 홍준표 대표가 단체사진을 찍을 때 ‘이재만 어디 갔나’라고 여러 차례 찾았고 이 최고위원이 달려와 홍 대표의 바로 옆에서 손을 잡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또한 이 최고위원은 최근 홍 대표의 베트남행에도 동반했다. 지역 정가에선 이재만 최고위원이 내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親朴, 잔류파이면서
계파색 옅은 후보 지지”

이처럼 TK 지역 친박계 의원들이 잇따라 ‘자기 정치’를 위해 친박 프레임을 벗기 시작하자 정치권의 관심은 이달 15일로 예정된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으로 옮겨간다. 당 안팎에서는 원내대표 경선이 홍준표 대표와 바른정당 복당파 ‘연합군’을 등에 업은 김성태 의원과 친박계 홍문종 의원 그리고 범친박이면서 중도를 표방하고 있는 이주영 의원의 삼파전으로 흐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당 최대 주주인 TK 지역의 친박계 의원들은 과연 어느 쪽 손을 들어줄 것인가에 정치권의 이목이 또다시 집중된다.

일단 TK 친박계가 탈계파를 선언했고 홍 대표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인다 할지라도 김성태 의원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TK 친박계가 스스로 계파 소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심전심으로 홍준표 대표와 복당파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따라 홍 대표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김성태 의원을 원내대표로 만들어 당 체제를 완성하려는 데는 비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자 정치권에서는 친박계가 홍 의원이 아닌 이주영 의원 쪽 손을 들어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TK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 상황이 더는 ‘박근혜 마케팅’이 통하지 않는 만큼 TK도 친박계 후보를 밀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홍문표 사무총장, 장제원 수석대변인 등 바른정당 복당파가 주요 당직을 꿰차고 있는 상황에서 원내대표까지 복당파가 차지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잔류파이면서 계파색이 옅은 후보를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를 잘 알고 있을 이주영 의원 역시 연일 무계파를 천명하며 친박계 표심 얻기에 주력하고 있다. 이 의원은 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당 중립의원 모임에 참석해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다 아울러서 갈 수 있는 모멘텀(상승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금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또 계파 대결로 흐르는 것에 대해 당내 많은 우려들이 있다. 계파정치를 극복하고 청산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표명했다.

그러면서 “중도 중립에 있는 의원들이 뜻을 모아 그 중심으로 계파정치를 극복해나가기 위해 모였다”며 “그 방안을 의원들이 모여 의논해 보자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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