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여당, 의회 협조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
- 야3당, 새로운 정치 구도 이해하지 못해

 
지금의 한국 정치 상황이 무언가 쾌속으로 진행되고 있다거나 순풍에 돛단 듯 잘 나아간다고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의 기대와 우려와는 다르게 오히려 외교 문제에서 선전하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보수파가 보기엔 외교 문제에서도 확실한 친미노선을 걷지 못하고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왕좌왕한다는 식의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북핵문제 및 사드 보복 등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거나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보인다. 또한 외교부의 직업외교관들만을 신뢰하지 않고 정부가 직접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황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외교 문제에서 그나마 이런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외교 문제는 행정부가 국가의 자원을 동원하여 전략을 세우고 언술을 짜서 행위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판은 있을지언정 문재인 정부의 전략과 언술이 그대로 실행되며, 그 전략과 언술을 떠받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력인 영역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누가 집권하든 대한민국의 국력이라는 동일한 판돈을 가지고 게임을 하게 된다.
 
文(덧말:문) 정부, 행정부.검찰 개혁 한계 봉착
 
그러나 내치의 측면에선 한계에 도달했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기 시민들에게 고평가를 받았다. 촛불시위로 인한 정권교체의 기대감이 강하게 반영되었을뿐더러, 초창기 행보가 기대 이상이라는 평이었다. 행정부가 먼저 처리할 수 있는 과제들을 신속하게 발표하면서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주었다.
 
뒤집어 말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의회의 협조를 구해야 가능한 과제들을 실행하는 로드맵을 짰다는 얘기가 된다. 행정부의 권한만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이미 대략 다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지속적 순항을 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야3당이 그럴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 여당은 더 이상 개혁 정책 드라이브를 실현해 내기가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적폐청산’이란 다소 두루뭉술한 말을 화두로 검찰조직만이 부지런히 이곳 저곳을 두들겨 대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에게 거의 전혀 협조하지 않는 보수 야3당에게는 현 상황이 꽃놀이패일까. 그렇지도 않다는 점이 현 상황의 지리멸렬함이다. 어떤 의미에서, 현재의 보수 야3당(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은 2016년 최순실 게이트 정국으로부터 네 번째 대규모 광장 촛불시위가 발생하고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일련의 상황에서 정치적 함의를 전혀 깨닫지 못한 채 행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보수 야3당은 가장 보수적인 민심을 잡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민주당에서 갈라서 나온 국민의당을 ‘보수 야3당’으로 묶는 것에 주저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지난 대선과 이후의 행보는 국민의당 역시 이 영역에서의 경쟁자로 만들었다.
 
현재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한국 정치 지형도에서 가장 오른쪽인 냉전보수의 민심, 흔히 말하는 대구·경북(TK) 민심을 잡기 위해 경쟁하는 중이다. 국민의당은 호남이 지역 기반이었다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지만, 당 지도부가 바른정당과의 통합 내지 협력을 추진하고 이에 대해 반발하면서 다른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야3당, 보수 유권자 민심경쟁? 아쉬움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에 대해선 중도층에서도 ‘좌편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선 “이게 민주당 정권이냐 정의당 정권이냐”라는 식의 성토도 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보다 훨씬 오른쪽에 있는, 시장경제 친화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사람도 자유한국당이든 바른정당이든 심지어 국민의당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말하자면 과거 보수정당의 양대 지지기반 중 사회경제적 보수와 중도, 흔히 말하는 강남 중산층 민심이 그들에게 호응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이 상황을 방치한다면 과거의 지지층 복원은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지금처럼 가장 보수적인 TK 민심을 향한 경쟁이 보수정당의 지지 기반을 허물어 뜨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문제의 핵심은 민주주의 문제일 것이다. 중산층, 사회경제적으로 보수 및 중도파 유권자라 하더라도 대부분 1987년 체제가 열어젖힌 민주주의 자체에는 찬성했다고 여겨진다. 1997년과 2002년의 패배를 매우 아쉬워하고 뼈아프게 생각했을지언정 선거를 통한 경쟁이 가능한 세상에 대한 합의는 탄탄했다고 생각된다. 그런 이들이 보기에 작년부터 불거져 나온 여러 사건들이 대단히 미심쩍게 보일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한국 사회의 보수 정당이 과연 민주주의에 동의하는 세력인지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진보 세력이 여전히 과거 사회주의 혁명세력이나 북한 동조 세력에서 크게 바뀌지 않은 이들이란 의심을 받는 상황의 반대 방향이라 볼 수 있다.
 
자유한국당을 개혁하려는 홍준표 대표는 친박 인사들을 청산하고 서민 중심 노선을 복원하려는 것 같다. 물론 예전과 동일한 방식을 추구하겠다는 이들보다는 진일보한 판단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의구심이 방금 진단한 대로라면, 현재의 지리멸렬한 교착 상황, 보수 야3당이 자기들끼리의 경쟁에서 승리하면 민주당에 맞선 범보수 세력의 한 축으로 새로운 양강이 될 수 있다는 발상 하에 이루어지는 경쟁 상황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 수 있다. 좀 더 세밀하게 여론을 읽고 새로운 환경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