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도 나섰다

청와대 조국(오른쪽) 민정수석이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 천주교 수원교구를 찾아 낙태죄 폐지 관련 발언의 실수를 인정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에서 23만 건을 넘는 등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낙태죄 폐지에 관한 논란이 거세다. 이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달 26일 청와대 홈페이지 공식 영상을 통해 이 같은 낙태죄 폐지 국민 청원의 답변한 것을 계기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반대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임신 중절, 현행법상 위법···의사도 처벌, 음지로 빠지는 중절 수술
찬반 갈등 심각···청와대, 입법기관에 공 넘겨 사회적 논의 결과 주목


이명박 정부 당시 중절 수술 단속을 강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60~80만 원선인 수술비가 100만 원까지 치솟았다. 지난 2009년 11월 대통령 직속기구인 미래기획위원회는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중절 수술 단속을 주요 과제로 공론화했다.

현행법상 ‘성폭행에 의한 임신’, ‘유전학적‧전염성 질환’ 등에 한해서만 임신 중절을 허용한다. 이 외의 사유로 중절 수술을 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시술을 한 의료진도 2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그러나 남성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책임과 처벌 면에서 자유로운 성향을 보인다. 성관계는 함께 했으나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의 피해는 여성들만 감내하는 것이다.

이 밖에 임신 중절이 위법 행위의 테두리 안에선 음지로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낙태나 임신 중절이 적발되거나 처벌되는 경우도 드물었다. 현행법상으로는 유죄이지만 단속 및 처벌을 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낙태 행위를 묵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낙태를 반대하는 보수 진영과 낙태를 찬성하는 여성계 사이에 큰 충돌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른바 ‘휴전’을 하고 있던 찬반 측의 목소리가 커졌다. 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국민청원에 답변하며 “당장 실태조사를 2018년부터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은 더 거세졌다.

낙태반대운동연합은 지난달 26일 청와대의 낙태죄 폐지 청원 발표에 대해 “임신을 하면 낙태할 권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생기는 것”이라며 낙태죄 폐지를 반대했다.

청와대는 이날 낙태죄 폐지 청원과 관련해 실태조사부터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폐지 여부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 위헌 심판을 계기로 이뤄지는 사회적‧법적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청와대가 논의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낙태반대운동연합은 “낙태 실태 조사를 5년마다 하기로 한 정부의 과거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낙태를 줄이고 현행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공론이 필요한 데는 동의한다”면서 “헌법재판소나 국회에서 공론할 때 반드시 의사가 낙태의 실태를 증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낙태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실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낙태죄 폐지 반대 사유에 대해서는 “임신을 했다는 것은 자녀가 생겼다는 뜻이고 낙태를 한다는 것은 자녀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낙태죄 폐지를 반대한다”면서 “인간 생명을 소중히 여겨 보호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지녀야 할 기본적인 책임이다. 낙태는 태아의 생명을 제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낙태하는 여성에게도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는 낙태의 문을 열면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찬성 측의 의견을 달랐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난달 28일 “낙태죄 폐지를 향한 청와대의 전향적 입장 표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여성단체연합은 “임신 중단을 둘러싼 우리 사회 논의가 태아의 생명권을 넘어서야 한다”면서 “임신 중단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문제일 뿐 아니라 여성의 생명권‧재생산권‧건강권‧삶에 대한 통제권 문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몇 가지 우려점이 있다. 먼저 형법상 낙태죄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실태조사로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조사 목적과 대상 선정부터 조사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민우회도 이날 낙태죄 폐지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단체 모두 ‘현행법이 임신중절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남성과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점’ 등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진흙탕 싸움’은 종교계까지 번졌다. 종교계는 태아의 생명 존엄성 등을 들며 여전히 낙태죄 폐지에 대한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조 수석이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밝히는 과정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이하 천주교주교회의)는 항의에 나섰다.

천주교주교회의는 “낙태 역시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유아 살해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태아의 생명이 침해당할 수 없다는 입장임을 다시 한 번 명확히 밝힌다”고 밝혔다.

결국 조 수석은 지난달 29일 천주교주교회의를 찾아가 낙태죄 폐지 관련 발언 실수를 인정하기도 했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지난달 7일 청와대 청원이 20만 명이 넘어선 것과 정부 입장 발표 움직임에 대해 “인간은 수정 순간부터 존엄한 생명이 시작된다는 생명관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밝힌다”면서 “인간생명을 능가할 만한 더 중요한 가치가 아닌 한 수정 순간부터 시작되는 모든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행동은 살인행위라는 점을 재차 천명한다”고 밝혔다.

조 수석이 영상에서 인용한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0년 한해 임신 중절 수술 추정 건수는 16만9000건으로 이중 합법 시술의 비중은 6%에 그쳤다. 평균 하루 435건의 불법 중절 수술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가 이 이상 진일보한 입장을 내놓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입법기관인 국회와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로 공을 넘겼기 때문.

지난 2012년 8월 낙태죄 합헌 결정이 날 때도 재판관의 절반인 4명이 위헌 의견을 냈던 만큼, 이번에는 위헌 결정 쪽으로 조심스럽게 기대감이 쏠리지만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저마다의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국회가 낙태죄 폐지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전망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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