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국가를 세우고 봉건잔재를 청산하며 개인의 자유·평등·사유재산권 같은 기본권 확립에 서양은 몇 백 년에 걸친 투쟁을 통해 이루었지만 우리는 불과 몇 십년 만에 압축적으로 정치발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서구의 선진국들보다 국가정체성 형성이 어려웠다. 그 이유는 광복 후 남북분단과 좌우의 대립, 김구 등 일부 민족지도자들의 대한민국 건국에 불참, 6.25전쟁 과정에서 의 보복, 고도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소득 불균형 현상,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에 따른 종북좌파 세력의 준동과 남남갈등 등을 들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했다. 이처럼 역대 좌파 정권들이 건국-산업화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한 결과 국가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했고, 설상가상 햇볕정책 추진으로 국가정체성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군사력에서 압도적 우위였던 구 월남과 중국의 장제스가 각각 호치민과 마오쩌뚱에게 패퇴한 이유는 국가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았고 정신전력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분단된 동·서독이 통일에 성공하고 경제부흥을 통해 유럽의 강자로 우뚝 솟은 이유는 국가정체성 확립을 통한 국민통합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공갈 앞에서 풍전등화에 놓인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갈파한 신채호 선생의 가르침처럼 우리 조국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애국심에 기반 한 국가정체성을 함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한민족(韓民族)이란 의식을 깔고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민족사의 두 쾌거인 ‘신라의 삼국통일과 대한민국의 건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자가 민족의 탄생이라면, 후자는 국민의 탄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김춘추의 나당연합이 삼국통일의 기반을 구축한 것이라면, 이승만의 한미동맹은 자유통일의 기반을 구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삼국시대는 한반도의 춘추전국시대이다. 당시 전쟁횟수만 275회에 달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무한투쟁’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삼국 중에서 가장 국력이 약한 신라가 삼한일통(三韓一統)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신라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과 충의의 자세로 결속한 국민의 ‘총화단결’ 때문이었다. 김춘추는 왕이 되기 전에 고구려(642년), 일본(647년), 당(唐: 648년)을 방문하는 목숨을 건 외교전을 펼쳤다. 여기에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은 가야계의 김유신을 중용하는 포용인사를 단행하여 김유신에게 군사에 관한 전권을 부여하여 신라사회의 에너지를 결집,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게 하였다. 문무왕은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미처 통일하지 못하고 죽자(661년) 왕위를 계승해 재위 21년 동안 백제 저항군을 진압했고, 고구려를 정벌했으며, 당나라 군대를 축출하여 한반도를 한민족의 생존공간으로 확보했다.

이승만은 ‘좌우합작’하자는 제의도 물리치고 ‘남북협상’하자는 요청도 거절하고 전체주의적 공산정권에 맞서서 장차 실지(失地)를 회복할 대한민국 정부를 세웠다. 그 후 유엔과 미국 등 30여 개 국가로부터 승인을 받아내고, 아이젠하워의 정전협정에 반공포로 석방 카드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현재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그리고 한·미 동맹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만든 것이다. 그 바탕위에 박정희는 5.16을 주도하여 집권한 후 18년 5개월 동안 수출주도, 중화학공업육성, 외자도입 전략 등으로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창출했다. 부국 대통령 박정희의 업적은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가 “역사에 기록된 것 가운데 6·25전쟁 후 40년 동안 한국이 이룩한 경제성장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는 평가에 잘 나타난다.

중국은 7세기에 이어 16세기(임진왜란)-17세기(병자호란)-19세기(청일전쟁)-
20세기(6·25전쟁)에도 한반도 운명의 순간에 무력 개입했다. 676년 신라는 ‘나당전쟁’의 승리로 삼국통일을 완수하는 동시에 자주권을 회복했다. 삼국 통일기에 신라가 당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것은 김유신의 자주국방 의지 덕분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이어 세 번째 완전한 한반도 통일인 ‘21세기 남북통일’과 한·중관계의 길을 비춰주는 바로미터이다. 우리는 한반도에 영토적 야심을 가지고 지배하려 한 당에 담대히 맞서 ‘유연한 외교’와 ‘결연한 전쟁’ 투 트랙으로 한국사를 창조한 신라의 국가경영 리더십에서 ‘통일대업(統一大業)의 길’을 배울 수 있다.

삼국통일과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바로 알고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건국-산업화 선각자들의 미래지향적 통찰력과 국민의 굳건한 안보의식, 그리고 ‘하면 된다(can do)’는 정신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여기에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같은 것을 바라면 승리한다)’의 총화단결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의미나 성취는 절반의 기적일 뿐이다. 선진국가를 이루고 통일이 되어야 비로소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를 완성하는 것이다.

우종철 자하문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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