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에 대한 세제, 내·외국인 차별하는 유해 조세제도”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한국이 유럽연합(EU)의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조세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5일(현지시간) EU가 발표한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령 사모아, 바레인, 바베이도스, 그레나다, 괌, 마카오, 마샬군도, 몽골, 나미비아, 팔라우, 파나마, 세인트루시아, 사모아, 트리니다드 앤 토바고, 튀니지, 아랍에미리트(UAE) 등 국가가 이름을 올렸다.

지난 수년간 슈퍼리치들의 조세회피 문제 심각성은 수차례 제기됐지만, EU가 17개국을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47개국을 감시국으로 지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EU가 밝힌 바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각 국은 조세회피를 막기 위한 국제적 기준들에 맞추는데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블랙리스트에 최종적으로 이름을 올리기 전까지 해당국과 EU간 대화에서 조세회피 관련 규제에 대한 충분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번 발표에 따라 각 해당국은 EU의 개발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조세회피 제재 규정 강화를 장려하는 방침으로, 추후 해당국이 EU와 합의할 경우 블랙리스트에서 제외될 수 있다.

피에르 모스코비치 EU 조세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블랙리스트를 발표하면서 "(해당국) 재무장관들에게 그 어떤 소극적인 태도도 피할 것을 촉구한다. (개혁을 약속한)국가들은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세금 관련법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모든 국가들에게 계속 압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불공정한 세금 경쟁이나 불투명함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EU의 결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적 기준에 부합되지 않고, 국제적 합의에도 위배되며 조세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U는 한국의 경제자유구역, 외국인투자지역 등 외국인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제도가 내·외국인을 차별하는 ‘유해 조세제도(preferential tax regime)’에 해당된다고 봤다. 문제로 지적된 세제는 외국인투자지역 등에 입주하는 기업의 감면대상 사업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한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것이다. EU는 저율과세 또는 무과세이면서 ▲국내와 국제거래에 차별적 조세혜택 제공 ▲해당 제도의 투명성 부족 ▲해당 제도에 대한 효과적 정보교환 부족한 경우를 충족하면 유해 조세제도로 판단한다.

그러나 기재부는 EU가 OECD 및 주요 20개국(G20)이 조세회피 방지를 위해 시행 중인 BEPS(국가 간 세법 차이를 이용한 조세회피행위) 프로젝트와 다른 기준을 적용해 국제적 기준에 위배된다고 반박했다. 또 “OECD의 BEPS 프로젝트에서는 적용 대상을 금융·서비스업 등 이동성 높은 분야로 한정해 우리나라 세제가 유해 조세제도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냈다”면서 “EU의 이번 결정은 적용 범위를 제조업으로 확대한 것으로 국제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기재부는 EU 회원국이 아닌 국가에 EU의 자체 기준을 강요하는 점도 조세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했다.

기재부는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이번 EU 결정에 범정부적으로 적극 대처할 계획이다. 또한 OECD 등 국제회의에서도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반영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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