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만 먹는’ 정몽규 ‘칭찬 일색’ 정의선

왼쪽부터 정몽규 회장, 정의선 부회장
현대가(家) 총수들의 체육 사랑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때부터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 특히 오촌(五寸) 관계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은 각각 대한축구협회장과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바쁜 경영 일정을 쪼개서 일일이 협회 업무를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근래 들어 똑같이 힘을 써도 정몽규 회장은 비판을, 정의선 부회장은 칭찬을 받는 모습이다.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현대가 두 협회장의 모습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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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 인사들이 가장 많은 애착을 드러낸 대표적인 스포츠는 바로 축구다. 정몽규 회장은 사촌 형인 정몽준 전(前) 대한축구협회장에 이어 2013년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현재 정몽규 회장은 사퇴 압박을 받고 있을 정도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진출에 성공하긴 했지만, 우리 국민들의 지지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경기력을 보이면서 비난의 화살이 정몽규 회장에게 돌아간 것이다.

또 대한축구협회의 전·현직 임직원들이 골프장과 유흥업소 등에서 협회 공금을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분노는 배가됐다. 일각에서는 “대한축구협회가 한국 축구를 망치고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9월 업무상배임 혐의 등으로 조중연 전 대한축구협회장을 비롯한 대한축구협회 전·현직 임직원 1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의뢰로 올해 4월 수사에 돌입한 경찰은 12명의 혐의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11년 7월부터 약 1년간 220차례에 걸쳐 협회 공금을 1억 1000여만 원을 사용한 혐의다. 특히 골프장, 유흥주점을 포함해 피부미용실 등 협회 업무와 전혀 무관한 곳에서 공금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신문선 축구연구소 소장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대한축구협회 집행부 총사퇴를 거론하기도 했다.

신 소장은 “현대가의 장기 집권이 이어지다 보니 일탈이나 비도덕적인 부분도 당연시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축구협회 집행부는 총사퇴해야 한다. 한국 축구가 죽음의 단계까지 온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몽준, 정몽규 전·현 회장이 대한축구협회에 단돈 1원도 찬조하지 않은 사실을 아느냐”면서 “축구는 현대 일가의 세습 도구가 아니다. 투명하고 깨끗하고, 능력 있는 축구 전문 행정가를 뽑는 선거로 새로운 집행부를 꾸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모습의 정몽규 회장과는 반대로 정의선 부회장은 아버지 정몽구 회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양궁이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 최강으로 군림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운 인물이라는 극찬을 받는다.

정의선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뒤를 이어 2005년부터 대한양궁협회를 이끌고 있다. 그동안 두 부자가 양궁에 지원한 금액만 400억 원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에는 여자양궁단이, 현대제철에는 남자양궁단이 있다.

현대가와 양궁의 인연은 고 정주영 회장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대한체육회장을 맡은 고 정주영 회장은 1983년 대한체육회가 양궁과 국궁의 분리를 결정한 그해 초대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았다.

이후 고 정주영 회장은 1985년 정몽구 회장(당시 현대정공 사장·현 현대모비스)에게 2대 회장직을 넘겼고, 정의선 부회장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한국 양궁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지원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가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남녀 전 종목 석권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면서 정의선 부회장을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해졌다. 당시 정의선 부회장은 경기장을 직접 찾아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또 정의선 부회장은 올림픽 기간 선수들이 최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양궁장 인근에 대형 리무진 전용 컨테이너에 휴식 공간을 만들어 주는 등 선수들이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현대자동차그룹의 총수일가들은 양궁 저변 확대에 힘을 쏟고 있으며 꿈나무 육성 지원 사업과 기술 연구, 인재 발굴, 스포츠 과학화 등에 매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회장 부자의 투자가 한국 양궁을 이끌고 있다는 증거다.

무엇보다 대한양궁협회는 체육 관련 협회 가운데에서도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철저한 실력주의 원칙과, 양궁협회가 전적으로 선수들을 위한 단체임을 내세운 것은 가장 큰 공로라는 평가도 있다.

대기업 총수가 체육 단체 회장을 맡으면 으레 ‘전문성이 떨어진다’거나 ‘체육 단체를 사유화하려고 하냐’는 지적이 제기되곤 하는데, 현대자동차그룹의 양궁 사랑은 ‘대기업 사회적 기여의 표본’으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너무나 상반되는 정몽규, 정의선 회장에 대한 평가 속에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하다. 서로의 눈치를 보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기업 경영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결과를 떠나서 기업이 체육 단체를 맡거나, 지원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회적 기여 활동으로 보는 것이 맞다”면서도 “다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괜히 기업의 신뢰도까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양궁 쪽에서만큼은 ‘없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라 문제가 없겠지만, 정몽규 회장은 너무 큰 비판 앞에 직면한 상황이라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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