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적 도핑 혐의 러시아, 미온적 태도에 국제단체 출전금지로 맞대응
- 흥행은 빨간불에도 ‘공정과 정의’ 가치 실현한 클린축제 대안으로 등장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국가적 도핑 혐의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출전 금지라는 초대형 징계를 받으면서 국제 체육계가 요동치고 있다. 이에 대해 불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보이콧 대신 선수들의 개인 자격 출전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혀 수습에 나섰지만 동계 스포츠 강국의 불참으로 김빠진 올림픽을 연출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흥행에 빨간불이 들어온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입장에서는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어떤 묘안을 마련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6일(한국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러시아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불허하는 결정을 내렸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을 비롯해 총 16명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총회에 상정되지만 총회 투표에서 결과가 뒤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견해다.

다만 IOC는 러시아 선수단의 출전을 금지하는 대신 러시아 선수들이 ‘러시아 올림픽 선수(OAR)’라는 이름의 개인 자격으로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했다. 러시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러시아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연주된다.

단 강화된 도핑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IOC 집행위의 이번 결정은 2014 소치동계올림픽 당시 조직적으로 자행된 개최국 러시아의 도핑 조작에 대한 포괄적 징계로 판단된다.

앞서 IOC와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진상을 조사하고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이에 리우올림픽 당시 IOC는 러시아 육상 및 역도 선수들의 출전을 불허했다. 또 소치 동계올림픽을 대상으로는 도핑 조작에 연루된 러시아 선수 25명의 기록과 성적을 삭제하고 11개의 메달을 박탈했다.

또 IOC는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에 대해 추가적으로 1500만 달러(약 164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그동안의 도핑 조작 조사비용과 향후 IOC 차원에서 운영할 독립도핑검사기구(ITA) 설립비용까지 ROC에 청구한 것.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첫 국가 출전 불가
초유의 사태

 
이처럼 IOC가 철퇴를 내리게 된 것은 러시아 선수들의 집단 도핑 사실의 내부 고발이 그 시초였다.

러시아 반도핑기구 산하 모스크바시험실 소장을 지낸 그리고리 로드첸코프 박사는 2015년 알렉세이 벨리코드니 선수촌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도핑 은폐술이 너무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다며 불편을 표시했고 이후 지난해 5월 12일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종합 1위를 차지하기 위해 금메달리스트를 포함한 러시아 선수 수십 명에게 금지약물을 투입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조사를 진행한 WADA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7월 18일 발표된 캐나다 법학자 리처드 맥라렌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도핑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는 2011년~2015년까지 30개 종목 자국 선수 1000명을 대상으로 국가 주도로 조직적인 도핑 조작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리우올림픽을 얼마 안 남긴 상황에서 IOC는 러시아 선수들에 대해 종목별 국제경기단체에 허용 결정을 떠넘겼다. 이에 육상과 역도를 제외한 271명의 러시아 선수단이 참가했다.

그러나 러시아 선수들의 집단 도핑 사실이 계속 불거지면 국제 체육계는 러시아 측과의 갈등이 깊어졌다. 특히 맥라렌은 지난해 12월 9일 러시아 도핑 실태 2차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 28명의 도핑 결과가 조작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결국 IOC는 자체조사를 통해 지난달 2일 소치올림픽 남자 크로스컨트리 50km 단체 출발 금메달리스트 알렉산더 레그코프 메달 박탈과 올림픽 영구 출전 금지를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총 25명을 영구제명하고 메달도 박탈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며 반발하자 결국 IOC는 올림픽 출전 금지라는 초강수 징계를 내리게 됐다.
 
러시아 올림픽위원회(ROC)
      개인 출전 허용
보이콧 위기 넘기나

 
평창올림픽을 얼마 앞둔 상황에서 IOC가 결단을 내리면서 국내외 체육계가 요동치고 있는 모양새다.

우선 러시아 측은 즉각 반발하며 한때 올림픽 전면 보이콧을 거론할 정도다. 이에 대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7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을 막지 않겠다”고 밝혀 한발 물러선 상태다.

하지만 오는 12일 ROC가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어서 여전히 변수는 남아 있는 상황이다.

또 이미 지난달 IOC로부터 징계를 받은 러시아 동계스포츠 선수들은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이의를 제기했다. 러시아 선수들은 CAS에 오는 2018년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등 IOC 결정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ROC에서 개인 자격 출전을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의 선택 문제가 남아 있는 등 러시아 선수들이 출전까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러시아의 스노보드 대표 니키타 아브타네프는 “개인 자격으로도 출전하고 싶다. 러시아 출신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헬멧에 스티커라도 붙이겠다”며 출전 의지를 드러냈다.
예브게니아 메드베네바(여자피겨) 선수
      반면 여자 피겨계의 일인자로 군림하고 있는 예브게니아 메드베네바는 개인 자격 출전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관심이 쏠린다.

메드베데바는 김연아 은퇴 이후 독보적인 실력으로 평창올림픽 여자 싱글 우승 후보 영순위로 꼽히는 선수다.

그는 2016년부터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했고 부상 중에 출전한 2017~2018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1, 4차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실력을 과시한 바 있다. 하지만 메드베데바는 IOC의 결정에 앞서 “러시아 국기 없이는 올림픽에 불참하겠다”고 밝혀 출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메드베데바가 불참을 강행할 경우 여자 피겨 종목은 다소 힘이 빠지게 된다.

선수들마다 엇갈린 입장은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다. 특히 러시아 쇼트트랙팀으로 전향해 뛰고 있는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은 지난 6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 자격 참가 의사를 드러냈지만 현재 매체 인터뷰를 자제하며 훈련에만 몰입하고 있다.

또 러시아가 최정상에 있는 동계 종목 스타급 선수들의 출전 여부가 확정되기까지는 여러 변수가 남아 있어 최종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더욱이 이번 결정을 두고 러시아 정치계와 체육계 안에서도 이견을 보이는 듯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
      스포츠 강국 한마디에
평창 흔들

 
이러는 사이 러시아 출전 불가의 불똥이 평창올림픽 흥행에 찬물을 끼얹게 됐다. IOC 발표 이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러시아 선수단이 개별적으로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 IOC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정부 관계자도 “러시아의 조직적인 도핑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태였고 청와대 역시 IOC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전했다.

하지만 겨울스포츠 강국인 러시아가 빠지게 되면서 이미 평창올림픽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개인 출전을 허용하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으로 진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출전 여부가 확정될 때까지 안심하기 힘들다.

특히 동계종목의 스타급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러시아 선수들이 출전을 포기할 경우 이들을 보기 위해 몰리는 관객 동원도 힘들어지는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진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북핵 리스크 발언까지 파문을 일으키며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지난 8일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미정”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러시아에 이어 스포츠 강국인 미국이 올림픽에 불참할 경우 평창올림픽의 흥행은 기대하기 힘들다.

물론 이에 대해 미국 백악관은 재빠르게 나서 상황을 수습하고 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8일 “안전하고 성공적인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한 한국 정부의 헌신을 확신하며 우리는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며 “미국은 한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참가를 고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스포츠 강대국들의 한마디에 대회의 흥망성쇠가 좌우될 정도로 심한 부침을 겪으면서 평창올림픽에 대한 우려만 키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평창올림픽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하려던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 구상이 갈수록 꼬이면서 해법을 마련하기에 쉽지 않아 보인다.
 
빅토르안(한국명 안현수) 선수
      정부, 평창 구상 차질
수정 필요
 

애초 정부는 북한이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도발을 멈춘다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또 중국·러시아 등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들의 지원을 기대했다.

하지만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이어 러시아까지 참가가 불가능해지면서 문 정부가 구상하던 평화올림픽은 이미 김이 샜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구상을 현실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북한 참여를 기대하는 등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수록 변질될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순수하게 올림픽 정신에 입각한 평화의 스포츠 제전으로 치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또 IOC가 러시아에 대해 철퇴를 내렸지만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공정과 정의’를 상징하는 특별한 행사를 열 계획이어서 이를 활용한 클린 축제를 강조할 경우 평창올림픽이 올림픽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ROC의 최종 결정이 남았지만 개인 자격 출전이 성사될 경우 평창올림픽은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대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도핑을 저지른 러시아에 대해서는 징계를, 도핑으로부터 자유로운 깨끗한 선수들의 참여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담기에 충분하다고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더욱이 평창올림픽을 통해 IOC는 특별한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바흐 IOC 위원장은 지난 7일 “도핑 규정 위반 러시아 선수들 때문에 메달을 받게 되거나 메달 색깔이 달라진 선수들을 평창올림픽에 초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바흐 위원장은 평창올림픽에 이들을 초대해 2~3일 정도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이들에게 새 메달이 수여되고 이를 위한 수여식이 열릴 예정이다.

바흐 위원장은 “우리는 IOC 선수위원회와 함께 공정과 정의를 상징하는 메달 수여식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메달 수여식이 확정되기까지 CAS의 메달 박탈 관련 최종 결정이 남아있지만 IOC와 러시아 모두 평창올림픽 이전에 결론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에 평창이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실현 대화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러시아보다
NHL불참 직격탄

 
한편 정부는 평창올림픽 흥행을 위해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는 러시아 선수들에 대해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흥행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을 독려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에 앞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불참을 선언하면서 흥행에 성공에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NHL은 리그 일정 중단으로 인해 금전적인 손해와 선수들의 부상 등을 이유로 평창행을 거절했다. 이에 대해 IOC로부터의 대우에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아이스하키는 동계올림픽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종목으로 폐막식 당일까지 아이스하키 결승전이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러시아보다 NHL 불참이 평창올림픽 흥행에 직격탄을 날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평창올림픽은 이미 두 마리 토끼를 놓치면서 흥행 성적을 기대하기엔 쉽지 않다는 염려가 제기돼 정부 차원의 해법이 요구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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