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공화국 출범 이후 실패한 대통령들을 양산한 대통령제
-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상시적 단계별 헌법개정이 바람직

 
정치학 이론 중 세대이론(Generational Theory)이 있다. 월터 딘 번햄(Walter Dean Burnham) 등 일련의 미국 정치학자들이 “25년 내지 30년마다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 정당을 지지하게 만들었던 요인이 약화되면서 정당체제가 재편성된다”며, 자국의 정당정치를 시대적 구분하면서 만들어 낸 정치이론이다. 이들은 정당재편의 요인으로서 선거권의 확대, 도시화, 산업구조의 변화, 이데올로기의 대립, 전쟁, 인구구조의 변화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세대이론에 입각해서 우리나라의 정당정치를 분석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먼저 1945년 독립부터 4.19 혁명 후의 제2공화국 시기까지를 보면, 독립, 전쟁, 독재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으로, 반봉건(半封建)적, 전(前)근대적인 특징을 갖는 시기이다. 과도기적 정당정치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의 정당정치 시기는 5.16 군사쿠데타에서 제5공화국까지의 시기로 약 26년간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남북분단, 이념대결의 냉전체제하에서 군부독재와 이에 대항하는 저항적 정당의 반민주 대 민주 대립구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작용과 반작용의 반(半)정당정치 체제이다. 실질적인 정당정치의 태동기로 제1세대 정당정치 시기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제2세대 정당정치는 87년 체제로 불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태동한 제6공화국 시기이다. 이 시기는 냉전체제의 종식과 세계화,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과 지역주의 정치체제의 확장에 기반을 둔 주기적 정권교체가 가능한 반(半)민주적 정당정치 체제의 특징을 갖는다.
 
굳이 이 시기를 반(半)민주적 정당정치로 규정한 이유는 정권교체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민주적 성격을 강하게 갖는 정치체제였지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드러났듯이 경우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민주적 기본질서가 위협받을 수 있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제2세대 정당정치 시기는 민주항쟁으로 태동하여 촛불혁명으로 끝을 본 격동의 시기였다. 제2세대 정당정치는 박근혜의 탄핵으로 마무리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제3세대 정당정치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5월 9일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이 만들어 낸 정부이다.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정당정치 체제의 첫 주자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과도기적 정당정치 체제의 특징을 갖는 정부로 끝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렇지만 제3세대 정당정치 체제로 이행하기 위한 내외부적 환경은 충만한 상태이다.
 
정보통신기술 혁명에 의한 정보화 시대가 도래했고, 외교안보는 물론 경제, 산업, 복지의 영역에까지 미치는 세계화 및 지구적 규모의 환경변화에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르는 인구구성의 변화, 그리고 온라인 시민과 광장촛불시민의 만남이라는 국내정치외적인 부분에서의 요인들은 새로운 정당정치 체제를 열망하고 있다.
 
또한 국내정치적 측면에서도 다원사회를 반영한 정당의 분화로 다당화가 이루어졌으며, 온라인 정치, SNS 정치의 일상화와 촛불정치와 광장정치에서 나타나듯이 직접민주주의의 강화가 시대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제3세대 정당정치 혹은 17년 정치체제를 잉태할 제반 요건들은 거의 완비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새로운 정당정치 체제는 출범하지 못했다. 이 모든 요인들을 담아낼 그릇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새로운 정당정치 체제는 그 정당정치 체제를 담아낼 그릇이 필요하다. 그 그릇은 다름 아닌 새로운 헌법이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헌법이 개정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리는 6공화국 출범 이후 실패한 대통령들을 양산한 대통령제를 바꾸어야 하며, 지역주의 정치를 고착화시킨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도 대선거구제나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거버넌스(Governance, 共治)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가장 강력한 지방분권형태인 연방제의 도입 등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17년 정치체제 혹은 제3세대 정당정치의 방향이며, 신(新)민주적 정당정치 체제를 만들어 내는 길이다.
 
그런데 지난 대선 과정에서 모든 대선 후보들이 약속한 개헌이 답보상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부터 개헌에 심혈을 기울여왔던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활동은 어느 순간부터 멈춰 있다. 올 연말까지가 활동기간인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개헌은 물 건너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개헌열차가 갑자기 멈춰선 것일까? 지금까지 개헌을 주도한 것은 국회였다. 국회는 삼권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기구로 공적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그 국회를 구성하는 핵심인 국회의원들은 대부분이 정당 소속이다.
 
정당은 임의기구이지만 국가의 공적영역을 구성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연유로 어떤 정치학자는 현대 민주주의의 특징은 국민 주권에 있지 않고 정당 주권에 있다고 갈파했다. 정당은 선거과정을 통해 권력을 소유하는 집단인데, 내년 6월 13일에는 동시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정당이 개헌열차를 멈추게 하고 선거과정에 올인하는 이유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11월 16일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총회 특별강연에선 ‘지방선거에서 곁다리로 투표하는 개헌투표는 내용도 형식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가 지난 대선 직전인 5월 7일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과의 국민협약서에서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는 2018년 지방선거 때 실시하겠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는데, 자신의 개헌에 대한 생각을 정면으로 부정한 발언이다.
 
아마 내년 지방선거에서 불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개헌 국민투표가 함께 이루어진다면 정치적 손실이 막대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리당략적 판단으로 개헌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개헌에 적극적이었던 국민의당의 상황이라고 나을 것이 없다. 분당 일보 직전에 와 있는 당의 현실을 감안하면 개헌의 추동력을 국민의당에서 찾기는 어렵다.
 
분당의 기로에 선 국민의당은 개헌은 남의 집 잔치에 불과하다. 바른정당은 정당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찾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에서 개헌을 주도할 이유도 힘도 없는 상태이다. 다른 군소 정당들은 개헌보다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에 더 열중하는 모양새다. 야당은 당리당략 때문에 개헌열차에서 하차하였고, 결국 개헌열차는 멈춰선 상황이다.
 
그렇다고 정부 여당이 강하게 개헌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도 않다. 여당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상황을 길게 유지하고 싶은 유혹에 개헌을 주도하지 않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야당이 개헌열차에서 하차하자 여당은 개헌의총을 한다며 개헌열차를 굴려보지만 개헌열차는 꿈쩍하지 않는다. 개헌열차는 여당과 야당이라는 두 바퀴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헌열차를 어떻게 굴릴 것인가가 관건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경성헌법이다. 국회 재적의원 2/3의 찬성을 얻어야 헌법개정안이 의결되며, 국민투표에 부쳐져 유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에 의해 헌법개정이 확정된다. 이 어려운 작업을 해내기 위해서는 과거에서 지혜를 빌릴 필요가 있다. 87년 헌법은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만들어낸 헌법이다.
 
지난 촛불혁명은 6월 항쟁 이상의 결과물을 얻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개정은 요원한 상태이다. 87년 당시에는 여야당 각 4명의 대표가 헌법개정을 주도했다. 그런 점에서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대신하여 정치적 무게감이 있는 여야당 대표로 헌법개정 실무기구를 만들어 헌법개정안을 논의하고 확정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또한 여기에서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구조 개편만을 원 포인트로 개정하려 한 적이 있듯이,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부분부터 원 포인트 형식으로 개정할 것을 논의해야 한다. 우선 기본권 확대 등 합의 가능한 사안만으로 헌법개정안을 만들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쳐 헌법개정을 이루고,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논의를 계속하여 다가오는 총선, 그리고 대선에 국민투표에 부친다면 권력구조 개헌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상시적으로 헌법개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나라 헌법은 연성헌법으로 바뀔 것이고 정치권의 협치 문화도 뿌리내릴 것이다. 개헌이 필요하다고 모두가 생각한다면 시기를 탓하지 말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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