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기치하에 검찰이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에 대한 수사를 6개월째 이어가고 있지만 ‘기세’가 많이 수그러든 모습이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3번째 구속영장 청구 끝에 구속됐다. 하지만 우 전 수석과 서울대 법대 동기인 최윤수 국정원 전 차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MB 최측근 인사인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구속 영장도 기각됐다. 앞서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공작 의혹 사건 관련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구속됐다 석방되는 등 청와대와 검찰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야권에서는 청와대가 검찰에 대해 통제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고 있다. 청와대와 사법부, 법원과 검찰, 그리고 검찰내 얽히고설킨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 김관진·임관빈 ‘석방’ 김태효·최윤수 ‘영장기각’
- ‘실세 검사’ 없는 민정수석실, 검찰 통제력 ‘상실’했나

 
12월14일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에 대해 검찰은 징역 25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했다. 다음 날 두 번 이나 구속영장이 기각됐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구속됐다. 세 번째 영장실질심사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적폐청산 수사가 그나마 면이 섰다는 평가다. 여권에서는 우 전 수석이 세 번 만에 구속수사를 받자 “우병우 한 명 잡아넣으려고 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MB는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냉소적 반응도 나오고 있다.
 
당초 검찰에서 세 번째 구속영장 신청 후 우 전 수석의 변호인 측이 제출한 의견서는 변론시간 부족을 들어 영장심사 날짜를 미뤄달라는 것이었다. 이를 법원이 이례적으로 수용하면서 세 번째도 기각되는 게 아니냐며 검찰이 바짝 긴장했다는 후문이다. 법원이 피의자의 건강이나 중요한 경조사가 아니라 단순히 변호인의 변론시간 부족을 이유로 날짜를 연기해 주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특히 영장실질심사를 청구하면 이틀 안에 실질심사가 이뤄진다. 12월11일 청구됐지만 14일날 심사가 이뤄져 3일이나 시간을 준 것은 특혜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에 검찰 안팎에서는 우병우 사단이 법원과 검찰 내 여전히 건재하다는 반증이라는 시각도 나왔다. 변론 시간이 많을수록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어 기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이 구속을 피하진 못했다.
 
우병우 세 번 만에
구속 검찰 ‘면’은 섰지만...
 

반면 우병우 전 수석과 서울대 법대 동기이자 절친인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의 구속영장은 12월2일 기각됐다. 최 전 차장은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 등 공직자와 민간인 불법사찰과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운영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지만 법원에서는 최 전 차장의 ‘국정원 내 통상적인 업무로 인식했다’는 항변을 받아들여줬다. 우 전 수석 역시 ‘민정수석으로서 통상적인 업무로 인식했다’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시설 군 사이버사령부에 정치개입 활동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13일날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주요 혐의사실에 대한 피의자의 역할 및 관여 정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김 전 기획관이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사이버사에 ‘여권을 지지하고 야권을 비난하는 활동을 하라’고 지시한 명의와 함께 군무원 증원 당시 ‘호남 출신은 뽑지 말라’며 특정 지역 출신을 배제하는 데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앞서 유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구속됐지만 ‘부당하다’며 낸 구속적부심이 받아들여져 석방된 바 있다. 여기에 김 전 기획관마저 구속이 기각되면서 신병확보가 어렵게 됐다. MB정부 ‘안보 실세’로 청와대와 국방부 사이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인사였기에 향후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한 수사 역시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군사이버의 정치개입 활동이 ‘MB→ 김 전 기획관→ 김 전 장관’의 지시 체계를 통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법원의 잇따른 영장기각과 구속적부심 인용으로 핵심 피의자들에 대한 신병확보에 실패하면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는 물 건너 간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이 밖에도 국정원 수사팀에 대한 법원의 영장기각은 더 있다. 관제데모 의혹을 받고 있는 추선희 전 어버이연합 사무총장, 공영방송 장악 의심을 받고 있는 김재철 전 MBC 사장, 국정원 민간인 외곽팀 운영 의혹을 받고 있는 전 국정원 직원 노모씨 등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적폐청산 수사가 법원의 잇따른 영장기각과 석방으로 김이 빠지면서 검찰·법원 갈등설에 최고수장인 문무일 검찰총장과 실질적으로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간 검·검갈등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또한 야권에서는 청와대의 검찰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난무하는 실정이다.
 
검찰은 법원의 잇단 결정에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검찰은 “특수한 사정이 아닌 한 다툴 여지가 없는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각 사유”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박찬호 국정원 수사팀장은 김관진·임관빈 석방 결정 당시 “구속제도에서 증거인멸과 도주의 염려와 중대범죄가 인정돼 무거운 처벌이 예상되면 그 점만으로도 간주되는 것”이라며 법원을 강력히 비판했다. 검찰의 반발에 대해 법원은 ‘검찰이 영장을 남발한다’고 일축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최근 “법원을 흔들지 말라”고 경고, 양 기관 간 갈등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
 
이뿐만 아니라 문무일 검찰총장과 윤석열 중앙지검장의 갈등설도 불거졌다. 문 총장은 12월5일 검찰이 진행중인 ‘적폐청산 수사’와 관련해서 “각 부처에서 보내온 사건 중 중요 부분에 대한 수사는 연내에 끝내겠다”며 “수사가 기한을 정하기는 어렵지만 올해 안에 주요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 총장, “연내 수사 마무리”,
윤지검장, ‘마이웨이’

 
또한 문 총장은 “사회 전체가 한 가지 이슈에 너무 매달렸는데, 이런 일이 너무 오래 지속되는 것도 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라며 6개월 동안 진행돼 온 적폐청산 수사에 대해 국민적 피로감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실제로 문 총장은 지난 10월 검찰 간부회의에서도 적폐 수사팀 증원을 허가하면서 “11월 말 마무리” 입장을 밝히고 신속한 수사를 독려했다.
 
문 총장의 이번 발언은 ‘통제가 되지 않는’ 윤 지검장을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 역시 언론을 통해 “신속하게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시한을 정해놓고 수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윤 지검장 또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자 “법과 원칙 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는 다소 격앙된 입장을 내놓았다.
 
또한 문 총장은 국정원 파견검사 3명이 관여된 국정원의 검찰 수사방해 사건처리와 관련해 선임인 장호중 검사장에 대해서만 구속 영장을 청구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윤 지검장은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중앙지검은 3명 전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중 변창훈 검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에 문 총장은 윤지검장과 면담 자리에서 “사건관계인 인권을 더 철저히 보장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하지만 윤 지검장은 검찰 내 ‘대표적 특수통’이자 선이 굵은 ‘강골 검사’로 청와대뿐만 아니라 검찰총장이으로도 ‘통제’가 안 되는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2013년 국정원 정치·대선 개입 의혹 특별수사팀장으로 수사하던 과정에서 ‘외압 의혹’을 폭로해 언론에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로 인해 수사일선에서 배제돼 대구고검, 대전고검 등으로 전보된 바 있다.
 
윤 지검장은 지난해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 실무를 총괄하는 수사팀장을 맡아 현재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히 2013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는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청와대와 검찰 간 ‘불협화음’도 흘러나오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들어서고 ‘청와대 사전보고’를 없애면서 청와대가 사실상 검찰에 대한 통제를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수사와 관련해 예정상황이나 기밀에 대해 청와대나 법무부에 보고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노무현 정부 때에 이어 두 번째다.
 
검찰, 국정원, 국세청, 경찰 등 국내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청와대 민정라인에서도 전병헌 전 수석에 대한 수사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하고 뉴스를 통해 접한 뒤 상당히 당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초 문 총장이 취임하면서 ‘앞으로 어떤 이유에서든 청와대와 법무부에 수사와 관련된 사전보고를 일체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고 어기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겠다고 공언했다. 사전보고가 없다면 청와대는 검찰의 동향을 사전에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
 
현재 민정라인을 보면 비검찰 출신인 조국 민정수석에 전직 의원인 백원우 정무비서관이 핵심이다. 물론 검찰 출신의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있지만 검찰과 청와대 가교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당초 청와대는 조 수석을 임명하면서 “권력기관을 정치에서 독립시키는 동시에 관력기관 개혁 의지를 담았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적폐청산’수사 대상이던 인사 두 명이 자살하는 등 ‘검찰 과잉수사 논란’에다 적폐청산 수사의 핵심 인사들에 대한 법원의 영장이 연이어 기각되면서 청와대가 검찰에 대한 통제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檢-法 ‘적폐청산 수사’ 두고
‘핑퐁게임’ 왜

 
여권의 한 인사는 “검찰은 문재인 정부 최대 공약인 적폐청산 수사를 벌이기만 하지 확실한 대어를 잡지는 못하고 시간만 끌고 있는 모습”이라며 “법원은 법원대로 영장을 기각하면서 적폐청산 수사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싸잡아 공격했다.
 
이어 이 인사는 “검찰개혁과 적폐청산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검찰과 법원 간 갈등 자체가 부담이고 MB나 우병우 두 인사에 대한 명확한 범죄사실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국정 운영하는 데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검찰개혁, 사법부 개혁을 앞두고 반기를 드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쓴소리를 보냈다.
 
이에 청와대에서는 적폐청산 수사를 두고 ‘청와대와 검찰 불화설’의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검찰에 불만이나 이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이 인사는 “검찰이 아직 수사와 관련된 피의자 소환도 다 못한 상황”이라며 “올해가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연내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의견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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