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민주·자민련, 자력 정권획득 불투명에 손잡을 가능성“현재 의원수 합하면 개헌 정족수 넘어” … 17대 총선이 분수령한국 정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 기선잡기에 돌입한 것이다. 그 결과 집권당인 민주당이 깨지고 거대 야당이 탄생됐다. 한나라당과 자민련, 그리고 사실상 야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이 거대 야당이다. 이들 세당의 의석을 합치면 대통령을 탄핵하고도 남을 223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세당의 당리당략 결과에 따라선 정치지형이 급변할 수도 있다. 올 초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가 기자에게 아주 의미있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각제와 관련된 말이었다.“내년에 치러질 총선의 최대 화두는 내각제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이 거대 의석을 차지할 경우, 내각제 개헌은 필연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은 꿈만 같겠지만, 조만간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이 당시만해도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의 이 말은 먼 훗날의 얘기처럼 느껴졌다.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개헌을 할 수 있는 의석에는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 다르다. 한나라당(149석), 민주당(64석), 자민련(10석) 등 세당의 의석수가 개헌선을 훨씬 넘는 223석이기 때문.세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개헌을 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세당이 당장 개헌을 추진할 것 같지는 않다.내년 총선 결과가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내년 총선 결과도 지금의 의석분포와 비슷할 경우, 여론을 수렴한 뒤 곧바로 개헌이 추진될 것으로 정치권 관계자들은 예상한다. 따라서 총선결과가 사실상 개헌여부의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의원도 이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총선결과 야당의석이 개헌선에 미칠 경우, 곧바로 개헌은 추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는 게 이 의원의 분석이다.

민주당을 탈당해 통합신당에 참여한 의원들도 개헌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당장은 개헌을 추진하지 않겠지만, 정치적 여건이 맞으면 언제든지 개헌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근태 의원은 2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당의 역사적 뿌리와 이념이 다르므로 (개헌은)정치적 수사에 끝날 것”이라며 “개헌을 추진하면 정치권에 일대 혼란이 와 민생·경제·평화문제는 정치인과 국민의 관심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역사적 뿌리가 다르기 때문에 정치적 연대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 이같이 대답했다. 사실상 개헌은 불가능하다는 게 김 의원의 말이다. 그렇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은 김 의원의 생각과 다르다. ‘정치는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는 정치권의 속설처럼 이념이 다른 정당일지라도 언제든지 연합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태우 정권 때의 3당합당이다. 군사정권의 상징인 노태우 정권과 민주주의의 상징인 김영삼씨가 연대할 것이라 예상하는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당을 합쳤다. 김영삼씨는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합당을 선택했고, 노태우씨는 안정적인 정국운영을 위해 합당이란 극한 방법을 동원했다. 가히 혁명적 수준의 정치지형 변화였다. 이념을 초월한 3당합당은 당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런 충격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씨는 노태우씨에 이어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 이처럼 정치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말’을 갈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옷’을 갈아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정치판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군도 없다’는 속설이 있다.지금의 정치상황은 3당이 개헌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각 당에 확실한 정치리더가 없는 상황에선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이다.

우선 최대 의석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을 살펴보자. 최병렬 대표가 이끌고 있는 한나라당도 내심 정권창출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회창 전총재의 뒤를 이를 확실한 대선주자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렇다고 최 대표가 직접 나서 대선주자로 뛸 형편도 아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5·6공 관련 인물의 퇴진론을 들고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대권주자로 나설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 내 또 다른 계파보스라고 할 수 있는 김덕룡 의원도 마찬가지. 김 의원이 직접 대선후보로 나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초재선 그룹을 이끌고 있는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 사정이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한나라당의 당헌 당규는 이미 내각제를 대비해 만들어져 있다”며 “한나라당 내 누구도 대선후보로 나설 형편이 아니고, 설령 나선다고 하더라도 당선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당내 분위기는 오히려 내각제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또 “노무현 대통령이 실정을 거듭하면 할수록 내각제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도는 날로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민주당 사정도 한나라당과 비슷하다. 박상천 의원을 비롯, 한화갑 조순형 의원 등도 대선후보가 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설령 대선후보로 나선다고 하더라도 당선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민주당 당직자들은 “정치권에 나돌고 있는 내각제 문제가 총선 이후에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며 “통합신당은 땅을 치며 후회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자민련은 내각제를 적극 옹호하는 정당이다. 김종필 명예총재가 내각제론자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내각제 개헌론과 관련, 광역자치단체장의 한 관계자도 의미있는 말을 했다. “이미 3선인 단체장이 다음 지방선거에 나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다음은 대선에 출마하는 길인데, 총선이후 내각제 개헌이 추진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처럼 대통령제가 지속된다면 대선을 위해 앞으로 치고 나갈텐데 개헌론에 막혀 정치적 행보를 하지 못하고 있다.”이처럼 혁명적 정치상황이 오기 위해선 내년 총선이 중요하다.

사실상 개헌정국의 키를 내년 총선이 쥐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내년 총선 결과는 어떻게 될까. 통합신당의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부느냐가 승부를 가를 전망이다. 전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통합신당은 대패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란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통합신당의 수도권 의원 중에서 호남표를 얻지 않고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며 “20석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한다. 한나라당의 분석도 민주당의 분석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여의도 정치권엔 내년 총선 이후 혁명적인 정국변화 바람이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한다. 17대 총선 결과도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의 의석수가 개헌선을 훨씬 넘어설 것이란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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