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의 연결고리…진짜 전문경영인 회장은 누구

왼쪽부터 김준기, 이재용, 강환구, 권오현, 정기선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우리나라에서 기업 총수 또는 회장이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회사의 실소유주라는 인식이 높다. 실제 창업자의 후손들이 최고 경영자로 기업을 운영하면서 경영권과 지배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오너(owner) 체제 기업이 절대 다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간 오너들이 고용한 전문경영인들 역시 사실상 독립적 경영보다 승계의 브릿지(Bridge), 즉 오너일가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일요서울은 일명 브릿지 회장님은 어떤 이들이 있었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동부·삼성·동서 등 후계 전면 등장 전 기업 내 정지 작업 중?
CJ·코오롱 등 후계자 나이 어려 전문경영인 체제 거칠 수 있어


우리나라 재벌그룹 총수 가운데 마지막 남은 창업 1세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퇴진하면서 사실상 대부분의 재벌그룹들은 2·3세 후계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다만 일부는 후계자의 나이나 능력, 승계 시기 등을 고려해 전문경영인을 선임하고 정지 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동부그룹도 마찬가지다. 동부그룹은 김준기 회장이 성추행 혐의를 받고 지난 9월 사임한 뒤 금융감독위원장 출신인 이근영 동부화재 고문(80)을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동부그룹은 “이근영 회장은 그룹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고 경영을 쇄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향후 이근영 회장을 중심으로 계열사별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책임경영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근영 회장은 김준기 회장 슬하의 김남호 동부금융연구소 상무 체제를 전제로 하는 안정화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 상무가 당장 경영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동부그룹 내 역할과 비중이 더욱 중요해졌고, 동부그룹 최대주주에 올라있는 만큼 이 회장 이후 안정적인 상황에서 전격 취임할 가능성이 많다.

실제 김남호 상무는 제조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주)동부 지분을 18.59%, 금융계열사 지주회사 격인 동부화재 지분을 9.01% 보유하고 있다. 각각 12.37%, 5.94%를 갖고 있는 김 회장보다 지분이 많다.

동부그룹을 제외해도 전문경영인이 수장으로 있지만, 멀지 않은 시일 안으로 오너 2·3세가 총수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기업들은 다수다. 재계 순위 1위 삼성그룹을 포함해 현대중공업, 동서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수감 등의 영향으로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및 종합기술원 회장이 실질적 총수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인사에서는 세대교체를 선언, 언젠가 돌아올 이재용 부회장의 자리를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현재 강환구 사장의 단독 대표이사 체제지만 현재 오너 3세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 경영 일선에 배치돼있다. 정기선 부사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장남이다.

그는 2009년 현대중공업 재무팀에 대리로 입사한 뒤, 같은 해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치고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지난 2013년 6월 현대중공업으로 돌아왔다.

2015년 1월 상무에서 1년 만에 전무로 승진, 재입사 4년여 만에 부사장 자리까지 오른 만큼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으며, 범죄 행위 등 극단적인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수장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동서그룹의 경우 동서식품은 이광복 사장, 동서는 이창환 회장이 맡으면서 전문경영인체제를 완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동서는 경영 승계 과정도 착실히 준비 중이라는 분석이다.

이 회장이 최대주주인 김상헌 동서 고문(전 회장)의 뒤를 이어 경영을 맡은 이후부터 수익성이 주춤하고 있고, 김 고문의 장남 김종희 동서 전무가 꾸준히 지분 매입을 하고 있어 3세 시대 개막을 앞두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동서 2세인 김 고문은 수년에 걸쳐 지분을 장남 김종희씨 전무에게 넘겨주거나 장내에서 매도하고 있다. 김종희 전무는 동서의 적통 후계자다. 창업주인 김재명 명예회장의 장남이 김상헌 고문이고, 그의 장남이 바로 김종희 전무다.

한편 아직 결정된 바는 없지만, 전문경영인 체제를 오랫동안 고수하던 기업이 오너 체제로 다시 돌아오거나 향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뒤 경영 승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기업도 다수다.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온 한샘의 수장은 전문경영인인 최양하 한샘 회장이다. 창업자인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한샘 지분 15.45%를 가진 최대주주지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진다.

최양하 회장은 내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데, 당초 연임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이른바 한샘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서 오너 체제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설이 나오는 상황이다.

조창걸 명예회장의 세 딸은 경영과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다만 셋째 사위인 임창훈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3월 한샘 등기임원으로 선임된 데 이어 회사 지분 0.21%를 신규 취득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 CJ 미국지역본부 마케팀담당 상무(32), 허정수 GS네오텍 회장의 장남 허철홍 GS 상무(38),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장남 구동휘 LS산전 상무(35), 이웅열 코오롱 회장 장남 이규호 상무(33) 등도 경영 승계 후보군이지만, 어린 나이 탓에 회사를 바로 물려받기보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한 차례 거칠 수 있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경영승계 직전의 전문경영인 회장들은 사세 확장보다 성장 동력 기반 마련, 현안 해결과 유지가 역할인 경우가 많다”면서 “기업 오너 후계자들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경영을 승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인 셈”이라고  말했다.

또 “사실상 2세나 3세 경영인들이 전면에 나서기 위해선 시기나 명분 등이 고려된다”면서 “부정적 사태수습이나 현안 해결을 위해 책임 경영에 나서기 보단, 안정적인 상황에서 ‘공’을 물려받으면서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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