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1994년 등굣길 학생 등 32명 사망
후진국형 사고 되풀이… 여전히 ‘안전불감증’ 심각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4분. 23년 전 한강을 건너 학교로, 직장으로 향하던 32명이 어처구니없게도 목숨을 잃은 곳, 성수대교.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리던 아침. 한강 11번째 다리로 수려한 미관을 자랑하던 성수대교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이날 성수대교 제5·6번 교각 사이 상판 약 48m가 갑자기 잘리면서 한강 위로 내려앉은 것이다.
 
이 사고로 다리 위를 달리던 한성운수 소속 16번 시내버스 1대와 승합차 1대, 승용차 4대 등 차량 6대가 한강으로 추락해 등교하던 여고생 등이 숨지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가 나던 날과 똑같이 구슬픈 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지난 2014년 10월 21일 오전 11시.
 
성수대교 북단 한켠을 쓸쓸히 지키고 있는 참사 희생자 위령탑에서 20주기 위령제가 열렸다. 당시 대형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데다 불과 4일 전에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가 일어난 까닭에 위령제는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10여명의 희생자 가족들과 지인들은 위령탑 앞에 차례로 나와 묵념을 하고 향을 피운 뒤 흰색 국화를 내려놓았다. 헌화를 마친 이들의 눈은 저마다 충혈돼 있었다. 위령탑 주변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향이 빗줄기 사이로 자욱하게 퍼졌다.
 
제단에는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과 함께 배와 사과, 떡 등이 놓여 있었고, 각계에서 보낸 희고 노란 국화꽃이 자리했다. “강용남·김원석·배지현·백민정·이지연·최양희·백민정·장세미…” 헌화 후 유가족들은 추도사와 추도시를 낭독한 데 이어 사고로 희생된 32명의 이름 하나하나를 천천히 부르며 넋을 기렸다.
 
이들은 추도사에서 “우리는 지난 20년을 형제자매, 아버지, 어머니를 가슴에 묻으며 한없는 고통과 눈물로 보냈다”며 “유가족의 단 한가지 소망은 다시는 이땅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삼풍백화점과 대구지하철 화재 등과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등 안타까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온 국민이 안전요원이라는 생각으로 안전 불감증의 굴레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다시는 성수대교 붕괴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고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안타깝고 비참하게 희생된 고인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고 했다.
 
성수대교 참사는 우리 사회에 안전 불감증과 부실공사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켰던 충격적인 사고였다. 이 사고는 부실공사 문제와 당국의 관리감독 부재(不在)라는 충격적인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고 직후 접수된 신고에도 구조단이 1∼2시간 후 도착하거나 사고 직전 다리를 건넌 사람들의 신고가 묵살되는 등 한국 사회 안전망의 큰 구멍을 그대로 보여줬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후진국형 사고를 질타하는 여론이 악화되자 당시 이영덕 국무총리가 사표를 냈고, 이원종 서울시장은 경질됐다. 사흘 뒤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이후 1997년 복구된 성수대교는 43.2t까지 통과할 수 있는 1등교로 거듭났고, 2004년엔 8차로로 확장됐다. 교량이 끊어져도 한강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하는 이중 안전장치인 낙교 방지턱과 교량 손상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온라인 감시 시스템도 구축됐다.
 
이 사고를 계기로 전국 시설물 안전을 관리하는 한국시설안전공단이 생겼고, 시설물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성수대교 참사 뒤에도 대규모 인명피해를 동반한 대형 인재(人災)는 끊이질 않았다.
 
이듬해인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1명이 사망해 한국 사회가 다시 한 번 큰 충격에 빠졌고, 1999년 화성 씨랜드 화재로 23명이,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로 192명이, 2011년 우면산 산사태로 16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잇따랐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 2014년 10월 15일 성수대교 점검 현장을 공개했다. 당시 서울시는 성수대교 사고 후 낙교 방지턱과 온라인 실시간 감시 장비를 갖추고 점검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각 아래 점검 현장에서 서울시 관계자는 “사고 전에는 이렇게 돌아다니며 육안으로 점검할 수 있는 장치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성수대교 붕괴 후 강화된 교량 안전관리 체계들을 소개했다.
 
시(市)는 낙교 방지턱, 온라인 감시 시스템, 1인 1시설물 전담주치의 제도, 정기점검·정밀점검·정밀안전진단, 1996년 이전 완공 교량에 대한 내진(耐震) 보강, 수중 점검선 개발 등 개선대책을 마련했다. 낙교 방지턱은 교량이 끊어져도 한강으로 떨어지지 않게 한 번 더 잡아주는 이중 안전장치로, 내진 1등급으로 설치됐다.
 
온라인 감시 시스템은 육안 확인이 어려운 교량 손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장치로, 아치교 등 특수교량 10곳에 구축됐다. 성수대교에는 신축변위계와 가속도계 등 4종 16개 시스템이 설치됐으며, 시스템을 통해 취합된 데이터는 인터넷데이터센터로 보내져 분석되고 이상징후가 발견되면 곧바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진다.
 
시(市)는 연(年) 2회 정기점검과 1∼3·4∼6년 주기의 정밀점검도 하고 있다. 성수대교는 2011년 당시 정밀안전진단에서 상태평가 B등급, 안전성평가 A등급을 받았다. 시(市)는 1996년 이전 지어진 천호대교, 올림픽대교 등 10곳은 진도 7∼8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 1등급으로 보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교량들은 대부분 안전등급이 B등급 이상으로 양호하다”며 “도로 시설물의 급속한 노후화에 대비해 지속적으로 안전 관리를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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