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 등 정신질환 발병 확률도 높아
- 건강치 못한 운전자 운행은 고장 난 차량 운전하는 것과 같아

건강검진 받는 화물차 운전자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고된 노동과 주ㆍ야간 장시간 운행, 차 안에서 숙식해결로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화물차 운전자들. 특히 과도한 업무로 만성피로와 수면장애 및 뇌심혈관 질환ㆍ요통ㆍ관절염 등의 직업병을 호소하는 이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확률도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화물차 운전자의 운행은 고장 난 차량을 몰고 운행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언제 어떠한 위험상황에 직면할지 알 수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화물차 운전자의 직업병은 발생기미 초기에 치료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말 오전 울산시 울주군 울산고속도로 언양 방면 3km 지점에서 달리던 화물차가 고속도로에 세워져 있던 교통안내 전광판과 충돌해 운전자가 숨졌다. 이 사고로 전광판이 도로 위에 쓰러지고 화물차에 실려 있던 곡물이 도로에 쏟아지면서 언양 방면 고속도로 통행이 차단돼 일대 교통이 2시간 넘게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운전자는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119 구급대가 출동했을 당시 운전자는 의식이 없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화물차 운전자가 고속도로를 주행하다 의식을 읽으면서 수 백 미터를 달리다 중앙분리대에 있는 전광판 기둥을 들이받은 것으로 보고 이 운전자가 심장질환 등의 질병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사회생활의 어느 경우건 활동 주체의 건강은 자신이 시도하는 업무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목표한 만큼의 성과를 얻어내기 어려우며 경우에 따라서는 건강이 악화돼 신체밸런스를 잃음으로써 예기치 못한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

특히 장거리를 부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대형화물자동차 운전자에 있어 건강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본자산이다. 건강이 부실하면 체력적인 부하가 막중한 화물차 운행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5명 중 1명 ‘수면장애’

그러나 많은 화물차 운전자들이 주행시간 불안정으로 운행 및 휴식 등이 불규칙하고 이로 인한 피로로 잠자리에 들어도 쉽게 잠이 들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 장애의 비율이 높은 수준인 것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가정용 수면장애 진단기를 활용해 94명의 화물차 운전자들의 수면 시간당 호흡 상태를 진단한 결과, 5명 가운데 1명꼴로 수면장애를 겪고 있어 ‘도로 위 살인자’로 불리는 졸음운전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사고를 분석해 봐도 건수는 승용차가 5500건에 이를 정도로 많지만, 치사율은 화물차가 7.1%로 승용차의 2배를 넘는다.

졸음운전 원인은 70%가량이 충분한 잠을 못 자는 것으로 조사됐고, 심지어 22%는 질병 단계인 중등도 이상의 수면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광익 순천향의대 수면센터 교수는 “수면의 질이 저하되면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낮에 졸림이나 피로 등 때문에 운전자들에게는 교통사고 발생률이 올라가는 원인이 된다”고 진단했다.

스트레스와 신경과민도 화물차 운전자의 건강을 해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집채만한 짐을 적재해 무거울대로 무거워진 차체를 움직여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 화물차 운전자는 자가용 승용차를 운전할 때와는 느낌이나 운전요령 등이 모두 전혀 다르다고 한다. 중량 화물차는 시동 후 차체를 움직이기 시작하면 가속이나 감속 모두 운전자의 의도대로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 신호가 바뀌거나 체증 등으로 주행도중 멈춰서야 하는 경우에도 감속시간과 거리가 자가용 승용차에 비해 대략 3∼7배나 걸린다. 따라서 마음 먹은대로 차가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에 자칫 추돌사고의 위험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이유로 화물차 운전자들은 다른 자동차 운전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특히 중량 화물차의 추돌사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1회 사고가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운전자들은 한시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것이다.

‘우울증’ 일반인 4배

녹색병원이 2009년 내놓은 ‘화물 노동자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화물차 운전자들의 절반 이상이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름값이 큰 폭으로 뛰고 화물차 등록대수가 늘어나는 등 운전자들의 경제적 여건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운전자들의 정신건강 지수는 10년새 더 악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녹색병원 산업안전연구원이 2009년 3월 화물차 운전자 8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431명(52.7%)의 화물차 운전자가 ‘경증’ 이상의 우울증 증세를 가지고 있었다. 전문의와의 상담 등 치료가 요구되는 ‘중증’ 이상의 우울증 증세를 가진 운전자도 204명(24.9%)에 달했다. 2011년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우리나라 국민 우울증 유병율(평균 6.7%)의 4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녹색병원 산업안전연구원의 윤간우 직업환경의학과장은 “잦은 야간 운행과 불규칙한 생활 리듬, 경제적 어려움 탓에 화물차 운전자들의 정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이밖에 화물차 운전자들은 장시간 운전과 좁은 차안 생활로 인해 뇌심혈관 질환과 요통, 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에도 노출돼 있다.

순천에서 12.5t 화물차를 운행하고 있는 김철성(43·가명)씨는 아침 8시에 집에서 나와 11시까지 상차작업을 한다. 주로 전남에서 농산물을 싣고 와 서울 가락동 공판장까지 배달해야 하기 때문에 점심도 거른 채 서둘러 출발하지만 화물차의 특성상 속력을 낼 수 없어 6~7시간이 지난 후에나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후 야간에 하차 작업을 하고 여관비를 아끼기 위해 차에서 3~4시간 정도 새우잠을 잔 후 다음날 출발지로 돌아오는 생활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김 씨는 하루 꼬박을 차에서 생활하는 셈이다.

을지대 산업의학과 김수영 교수는 “화물차 운전자들은 좁은 차안에서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추간판탈출증(디스크)등과 같은 요통 증상을 느끼거나 잦은 기어 변속으로 인해 무릎 연골이 닳아져 통증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며 “이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 발생률과 우울증 발생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