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폐 청산’이란 범주에 묶인 두 문제
- 위안부, 사려 깊고 세밀하게 대응해야

 
문재인 정부에서 두드러진 것이 TF 모임이다. 보통은 전임 박근혜 정부의 문제들을 청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국가정보원처럼 그런 모임이 반드시 필요해 보이는 조직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에는 그런 종류 모임에서 잇따라 두 개의 반성을 내놨다. 하나는 일본 정부와 맺은 위안부 협의에 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개성공단 철수에 관한 것이다. 얼핏 두 대응은 과거 정부의 실책을 지적하려 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행위로 보인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다소 맥락이 다르다.
 
위안부 협의, 애초부터 잘못되었지만...
 
위안부 협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정말이지 왜 이런 협의가 체결된 것인지 한숨이 나는 문제이긴 하다. 박근혜 정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임기 중반 친중반일 외교 기조를 이어나갔다. 시진핑의 중국에게선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아베 일본 총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안을 일본이 들고 오기 전까진 만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국과 일본에겐 물론 과거사 문제가 있지만,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닌 이웃나라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문제를 논의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너무나도 유아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이런 처신을 취하자 미국 정부로서도 좌시할 수 없게 되었다. 아마도 미국 측에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라는 압력이 있었을 것이며, 한국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의를 가지게 됐다.
 
이 시점에서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당대에 일본이 취할 수 있는 양보의 폭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건 우리 입장에선 유감일지언정 당장 바꿀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둘째는 그 제한적이지만 진전된 논의를 우리가 수용했을 때 국민 정서가 용납할 수 있었느냐의 문제다. 여러 가지 우려가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그럴 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이런 조건에서 위안부 협의는 할 일이 아니었다. 협의가 처음 나왔을 때는 진보적인 미국 학자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진일보이긴 한데 피해자와 한국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 지가 문제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합의에 납득하지 못하는 걸로 나오자 진보적인 미국 학자들의 반응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섰다.
 
일본이 당대에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합의를 할 수 없다면, 한국 정부가 피해자를 봉양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문제에 관한 협의는 이와 별도로 진행하는 것이 옳았다. 원칙을 허물다 보니 해괴한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전후 사정이 그랬더라도 TF와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의 실책을 우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라도 외교 영역에서는 문제다. 이를테면 위안부 협의에 앞서 소녀상 문제에 대한 이면합의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추측하는 문제다. 그렇더라도 이걸 후임 정부가 까발려야 할 것인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회담에 대한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의 대응을 규탄하던 것이 현 정부의 인사들이다. 물론 아주 똑같은 건은 아니지만 비슷한 범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
 
더구나 현재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이 위안부 협의를 청산하자거나 새로운 위안부 협의로 갱신하자는 물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내 여론을 감안한, 혹은 현 정부 특유의 민족주의적 열망을 받아들인 대응으로 보이지만 ‘본전도 챙기기 어려운’ 형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을 이토록 좁힌 것은 전임 박근혜 정부의 실책이 맞다. 하지만 그 실책 위에서 최선의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좀 더 사려 깊고 세밀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개성공단 철수 과정 지적 납득 가능하지만...
 
반면 개성공단 철수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할 수도 있는 일로 보인다. 개성공단 폐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국제사회와 유엔이 현재 북한 핵미사일에 행하는 제재 조치를 생각해 봤을 때 개성공단 폐쇄 문제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렇더라도 절차적 문제는 남는다. 통일부는 순차적 철수를 건의했다고 한다. 사업가들이 겪게 될 손해와 고통을 생각할 때 이편이 더 합리적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지시로 일괄적인 폐쇄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지금까지 드러난바 전임 박근혜 정부는 전쟁 등의 비상사태를 각오하더라도 대선을 치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청와대에 상식 이하의 해괴한 문서를 남기고 떠난 것도 그 심리의 일환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 담화에서 탈북을 독려하는 등 북한을 자극하는 언사가 숱하게 많았다.
 
친중반일 외교 역시 시진핑의 중국이 북한 붕괴에 뭔가 일조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을 공산이 크다. 한반도에 급변사태가 일어나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박근혜 정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체제에서 새로이 권력을 창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졌던 듯하다.
 
물론 미망이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 그들은 반기문 카드를 만지작거리게 되었다. 성사됐더라도 권력의 철옹성은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노태우 정부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어떻게 대했는지 떠올려 보라.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비슷한 궤의 문제라도 적절성의 차이는 다를 수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아쉽고,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대응은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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