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장의 시위로 정권 탈취한 文 정부, 자유 민주주의 정부 아니다”
- “보수 재집권, 리더십 필요해… 마크롱 같은 인물 나와야”

 
정규재 펜앤드마이크(PenN) 대표이사(한국경제신문 논설고문·60)가 보수 진영의 현 상황을 ‘보수의 궤멸’이 아닌 ‘보수의 태동’이라고 진단했다. 보수 논객으로 잘 알려진 정규재 대표이사는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시민적인 레벨에서의 보수운동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며 “나라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자각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이사는 지난 탄핵 정국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팟캐스트 ‘정규재 TV’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하기도 했다. 인터뷰는 12월 28일 전화상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끝나간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문재인 대통령 탄생 등 정치사에 많은 일이 있었다. 어떤 사건이 기억에 남는가.

 
- 문재인 대통령의 인민민주의적이고 민중주의적인 포퓰리즘 통치로 인한 정치 질서가 나타난 점이 2017년의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개별 사건보다는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만들어진 한국의 사회분위기, 소위 한국 이데올로기라고 할 만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 무엇보다 보수의 위기, 보수의 궤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 보수는 그동안 대한민국의 시스템 속에 녹아 있었다. 보수라는 이념에 대해 공부를 한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게 없었다. 그동안은 안보를 중심으로 한 ‘안보 보수 세력’은 있었지만 시민들 속으로 파고드는 ‘보수운동·시민운동’은 전혀 없었다.
 
시민운동은 궤멸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러나 보수의 가치를 축으로 하는 정치 질서가 모두 무너진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정치 질서 전부가 강한 직접민주주의의 변형 또는 민중주의의 부상으로 나타났다. 대개 이러한 것들은 좌익적 성향을 띠면서 나타나 있다. 그전 점에서는 보수의 궤멸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와 사회 분위기 자체가 바뀐 것이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시민적인 레벨에서의 보수운동은 새로 생겨나고 있다고 본다. 나라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자각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보수의 궤멸이 아니라 오히려 보수의 태동이라고 생각한다. 시민 레벨에서는 보수운동이 오히려 태동하고 있다.
 
▲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이 현실화되면서 지난 대선보다도 더 보수 진영은 분열될 공산이 커지게 됐다. 당장 6개월 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도 가시밭길이 예상되는데...
 

- 보수가 태동하고 있다고 했다. 깨어나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다. 당장 오는 선거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선거라는 것은 기존 정당들 간 어떤 역학관계를 만들어 내고 이슈를 어느 정당에서 주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현 집권 세력이 승리할 것이다. 보수 정당이라고 할 만한 정당이 얼마나 충분히 형성돼 있는지 의문스럽다. 자유한국당이 보수적 가치를 얼마나 담보하느냐는 데 있어 국민들이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유한국당이 정치적 구심점 역할을 해낼지 의문이다. 시대적 분위기가 민중주의적인 좌익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를 거슬러서 자유 민주주의적 질서를 회복하는 데는 동력이 모자랄 것이다.
 
국민의당은 안철수와 전라도 지역당의 동거였다. 바른정당은 오갈 데가 없어진 당이다. 따라서 이들이 소수 정당을 유지하기 위해 부득이한 합당을 할 것이다. 만약 합당과 같은 절차가 아니면 해당 정당들은 중앙 정치 레벨에서의 입지가 이번 지방선거를 거치며 소멸될 예정이었다. 이에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것이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다.
 
▲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목표가 10년 전 정권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적폐 청산 수사가 보수의 씨를 말린다는 평가도 나오는데.
 
- 정치 보복이다. 보수의 씨가 정치권의 몇몇 인물에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 보복에 지나지 않는다. ‘적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치를 민중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다. 민중주의적 접근을 하는 정당은 민주 정당으로 볼 수 없다. 독재 정당이다. 인민 독재 정당이 되는 것이다.
 
적폐 청산이라는 용어는 굉장히 위험한 용어이고 반민주적 용어이다. 마치 공산당이 집권한 뒤 좌익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적폐로 규정하고 이념에 따라서 숙청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보수를 궤멸시킬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정치인들의 얘기일 뿐이다. 보수의 가치는 다른 데 있다.
 
▲ 조원진 의원이 진정한 보수를 자칭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있다. 대한애국당이 와해된 보수 진영의 구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 그들이 무슨 진정한 보수인가. 친박 세력의 낙오자일 뿐이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 홍준표 대표가 ‘무죄’ 확정을 받았다. 복당파가 전원 당협을 꿰찼고, 친박계는 소멸했다. 홍 대표 체제의 자유한국당을 평가한다면. 홍 대표에 대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볼모가 됐다고”고 말하기도 했는데.
 
- 한국당은 자신들이 좌익적이지 않다, 좌익정당이 아니다라는 점에서 보수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기 어렵다. 이번 홍 대표의 ‘혁신’이라는 프로세스는 이념으로부터의 일탈이었다고 본다. 탄핵을 정당화하는 일련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비판의 여지가 있다. 탄핵을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는 박 전 대통령을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와는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을 미워하거나 정치적으로 무능하다고 본다고 해서 탄핵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전혀 다른 문제다.
 
▲ 향후 보수 진영이 재집권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

 
- 마크롱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한국은 굉장히 정치적 유동성이 높다고 본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얘기다. 그러나 순조로운 프로세스 속에서는 쉽지 않다고 본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워낙 수준 낮은 정치를 하고 있기에 어느 시점엔가 강력한 리액션이 나올 것이다. 정치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리더십을 누가 어떻게 어떤 형태로 표출해 전체 국면을 장악할지 아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 마지막으로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가 광장 민주주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광장의 시위로 정권을 탈취한다는 개념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길거리나 광장에서 떼거리만 많이 지으면 그것이 민주주의라 생각한다. 이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 각 독립적 개인들의 공화적 구성물이 시장경제체제라는 것 등을 이해하는 것이 보수주의의 기본 가치다. 국민적 성숙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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