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 스스로 자멸…새로운 노선과 인물 절실하다!”
- “진보 잘해서 정권 빼앗긴 것 아냐… 보수 기회 있어”

 
박형준 전 사무총장(57)은 대한민국 보수의 위기에 대해 진보가 잘해서 위기에 빠진 게 아니라 스스로 자멸했기에 오히려 기회가 열려 있다고 주장했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박 전 사무총장은 “진짜 보수의 위기는 보수의 최대 장점인 책임 정치와 담론의 실종으로 국민들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노선과 인물을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JTBC ‘썰전’에 진보 진영 대표 인사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맞서 보수 진영 대표 논객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는 12월19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 2017년 박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문 대통령 탄생 등 정치사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지난 5월 대선은 비정상적인 정치일정이었다. 비정상적인 정치일정을 가져온 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광범위한 비판과 저항 그리고 국회의 탄핵과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그에 따른 대선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졌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촛불 혁명이란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진보 진영과 집권 세력에서는 촛불 혁명의 의사에 따라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또는 한국 정치를 이끌어 가야 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국정농단이 벌어진 것 자체가 3권 분립을 지키지 못하고 권력의 자의적 남용을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헌법정신에 위배됐기 때문에 그 책임을 물어 탄핵이 된 것이다.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근거로 촛불 혁명을 운운하는 것은 제대로 된 해석이 아니다. 촛불 혁명을 통해 청와대 중심의 국정 운영을 가져가면 과거 정권과 다를 바 없다.
 
▲ 보수의 위기다. 무엇이 문제인가.
 

- 보수가 5년 권력도 못 지키고 권력을 내줬다. 그렇다고 진보가 잘해서가 내준 게 아니다. 스스로 자멸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고도 보수 진영에서는 제대로 진단도 안하고 탄핵백서도 내지 못하고 있다. 반성하는 사람도 없고 책임지는 인사도 없다. 모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대통령을 보좌했던 사람들, 국정농단에 관여해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 누구도 결과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을 못 봤다.
 
보수의 큰 장점은 책임이다. 진보정치가 비판을 받는 것은 목소리가 크고 무엇을 주장하다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져도 뭉개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서다. 보수는 신중하고 사려 깊고 분명하게 책임지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수의 미덕을 찾을 수가 없다. 아무리 미래로 나아가려해도 국민들이 진정성을 믿지 않는다. 두 번째 보수의 위기는 담론 실종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역사는 누가 뭐라 해도 보수가 이끌어 온 역사다. 여러 가지 얼룩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가져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북한 체제보다 월등히 우월하게 된 것은 보수 노선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이젠 시대에 안 맞는다. 이젠 보수 진영에서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가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변화시켜 행복을 느끼게 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느냐 이런 것들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담론에 대한 관심도 없고 타성에 젖어 있다.
 
과거 박세일 교수는 보수의 비전과 가치를 논하는 ‘빅픽처론’을 내세워 담론을 이끌었다. 그러나 현재 보수 정당이라고 자처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그런 노력이 없다. 담론시장에서도 보수가 낡은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보수 정당 내 국회의원의 문제도 있다. 국회의원이 회사원화됐다. 국정철학이나 가치, 정치적 포부를 가진 사람이 적어지고 있다. 골목정치만 횡행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도 시대를 못 읽고 있는 부분이 있다. 일도양단(한칼로 쳐서 두 동강이를 낸다)식 정치를 하고 있다. 상대방을 공격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메시지가 과잉, 왜곡되고 이것이 반복되면 메신저 불신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이런 메신저 불신 현상은 특히 젊은 층에 극에 달해 있다. 이젠 스마트한 정치를 해야 한다.
 
▲ 그럼 ‘보수의 살 길’은 무엇인가.

 
- 탄핵 사태 이전의 우리나라 정치 지형을 보면 5.5대 4.5로 보수가 유리한 지형이었다. 그래서 진보 진영에서 ‘운동장이 기울었다’라고 한탄했다. 하지만 탄핵 과정과 대선을 거치면서 지금은 거꾸로 보수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 보수 성향의 국민들 20~30%가 떠나 마음을 줄 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미국이나 일본, 최근 칠레 선거까지 우파가 승리했다. 각국 선거 결과를 보면 보수가 진보보다 승리를 많이 하고 있다. 이유는 글로벌 시대, AI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노선을 갖지 못하고 여전히 낡은 정치 행태를 보이는 진보 진영 노선의 한계 때문에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진보의 공통된 고민이다. 한국의 경우 진보가 잘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보수에게는 기회가 열려 있다. 노선을 확장하고 인물도 발굴해야 한다.
 
영국의 보수당이 위기 때마다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 보수의 원로들이 의도적으로 참신한 얼굴을 찾아 내세워 위기를 넘겼다. 영국의 대처가 그랬고 캐머룬 전 수상도 마찬가지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노선과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
 
▲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으로 보수의 씨를 말린다는 지적도 있는데...
 
- 대단히 의도적이다. 전 정권이든 전 전 정권이든 모든 정권은 운영상의 문제가 있었다. 불법, 비리가 문제돼서 처벌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현정부 적폐 청산 방식은 다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과거사위가 있었다. 그런데 대단히 신사적으로 했다. 국회에서 법을 어렵게 통과시켜 법에 의해서 과거사위원회를 마련해 과거 잘못된 것을 정리했다. 적법절차(Due Process)를 밟아 보수야당의 공격 빌미를 차단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그런 방식이 성에 안 찬 거다. 그래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정부 기관 내에 적폐청산위를 설치해 민간인 중심으로 구성해 다 뒤져서 문제를 검찰에 토스하는 편법을 활용하고 있다. 국정원의 경우 안보의 심장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안보의 맹장 역할도 못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 태풍이 몰아치고 새로운 정권 인사가 실권을 잡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번에도 실권을 잡은 사람들이 민간인 적폐청산위에서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료를 더 제공하고 다시 자료를 검찰에 던지고 있다. 그래서 적폐청산 자체가 과거의 쌓인 제도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정권 비리를 탈탈 터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자체가 상당히 정치적이다. 적폐청산이 정치적 법적 정당성을 가지려면 적법절차와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면 안 된다.
 
전 정권 망신 주고 국민들 여론을 나쁘게 만들고 그래서 진보 진영이나 집권 세력의 지지율을 올리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 적폐를 청산하는 효과는 미약하다. 적폐 청산이 당연히 보수의 궤멸을 노린 측면이 있고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본다.
 
▲ 진보 정권 10년 집권 시나리오도 나오는데 보수 진영이 재집권하는 데 어느 정도 걸릴까.
 
- 그것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일이다. 10년 진보정권 시나리오는 현재를 기준으로 예상을 하는 것이다. 정치에서 5년은 너무 길다. 예측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박 정권이 2016년 총선 전까지만 해도 당시 새누리당 지지율이 45% 내외였고 민주당 지지율이 20% 이하였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공천을 망치지 않았다면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얻었을 것이고 국회에서 박 대통령 탄핵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은 한국 정치에서 일어난다. 총선 대선 결과를 예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보수가 지금처럼 하면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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