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성립 요건 엄격 적용해 면죄부 준 꼴

“경제 범죄인데 법원이 왜 무죄 내렸는지 납득 어려워”
 
“재판부 해석대로라면 처벌받을 재벌 총수 거의 없다”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재벌 총수들의 배임 등 혐의가 연이어 무죄 판결이 나며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롯데일가 경영 비리로 재판에 넘겨졌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특경법상 횡령, 배임 등의 혐의 중 일부만 유죄로 판결돼 집행유예가 내려진 것도 논란을 가열시켰다.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실정이다. 시민단체들은 재판부의 판단이기 때문에 존중한다는 입장이지만 “재벌총수들에게만 맞춘 독자적인 법리를 만들어 지나치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일요서울은 기업인 ‘배임’ 무죄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봤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롯데그룹 임직원 9명에 대한 경영비리 1심 재판이 지난 22일 이뤄졌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상동)는 롯데피에스넷과 관련한 471억 원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혐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도록 해 롯데그룹에 재산상 피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 등을 ‘무죄’로 판결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기업인 배임죄에 대한 연이은 재판부의 무죄 선고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기업인 배임 혐의 무죄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판단은 법원이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법원에서 그런 판단을 내려 전반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다음 공판에 어떻게 영향이 미칠지 우려스럽다. 배임죄는 가볍지 않고 (이번 롯데 건은) 상당히 조사가 많이 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중대 경제 범죄인데 법원이 왜 무죄를 내렸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신동빈 회장의 경우 죄명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무죄로 나왔고, 집행유예가 나왔다. 일반 시민들이 봤을 때 재벌총수 일가가 회사에 손실을 미친 것으로 봤지만 실제 재판 결과가 이렇게 나와 안타깝다”며 “정권이 바뀌어서 시민들은 법원이 어느 정도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겠나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실제 결과가 무죄로 나오니 아쉬운 측면이 크다”고 했다.
 
“엄정한 처벌 기대”
 
경제개혁연대는 인터뷰 대신 논평으로 이번 롯데그룹 지배주주 일가 형사재판 1심에서 신 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과 관련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2월 27일 논평을 통해 롯데기공, 피에스넷 관련 배임 무죄는 ‘총수 봐주기’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논평에 따르면 결심 공판에서 징역 10년의 중형을 구형받은 신동빈 회장이 선고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롯데기공(現 롯데알미늄) ‘끼워넣기’ 관련 특경가법 위반(배임) 혐의, 롯데피에스넷 지분인수 및 유상증자 관련 특경가법 위반(배임)혐의 등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가 배임죄 성립 요건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해 계열사 끼워넣기, 계열사 부당지원 등의 각종 불법행위를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재벌 총수가 회사를 마치 개인 금고처럼 악용하는 행위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가 롯데피에스넷 지분 인수 및 유상증자에 참여한 행위로 인한 피해액이 약 390억 원에 달해 이를 유죄로 판단할 경우 양형기준표상 횡령배임 액수가 300억 원 이상이면 감경 사유를 적용하더라도 집행유예가 불가능한 점을 감안해 무죄로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제개혁연대는 “재벌의 편법적 행태는 갈수록 정밀해지고 또한 교묘해지고 있다. 형식만 가지고 따져서는 법의 그물로 이것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법의 판단은 여전히 보수적이고, 모호한 경우에는 기업 측에 너그럽다”며 검찰의 항소와 2심 재판을 통해 엄정한 처벌이 내려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특혜 줘서는 안 돼”
 
검찰이 말하는 배임과 재판부가 밝히는 배임에는 법리적 해석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검찰의 무리한 배임혐의 적용을 막기 위해 ‘경영판단의 원칙’을 근거로 배임죄의 범주를 엄격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경영자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면 예측이 빗나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해도 배임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김남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변호사는 검찰과 법원의 배임의 범주 차이에 대해 “배임죄에 대해서는 법리적인 논란이 있다. 법원이 최근 배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두고 있다”며 “검찰은 회사별로 보고 법원은 재벌 그룹별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롯데 피에스넷은 이미 원본잠식을 하고 부채가 많은 상태로 유상증자한 것을 산 거면 회사 입장에서 피해를 본 거다. 회사별로 보면 배임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룹 차원에서는 경영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본다. 그룹 이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 해석대로라면 경영적 손실이 있어도 거의 처벌받을 재벌 총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회사 입장에서 보는 게 맞다. 계열사들이 망해 회수 가능성이 없는데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주게 되면 지원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피해다. 주주들도 피해 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 그룹 단위로 파악하고 그룹 전체 차원으로 보면 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경영적 판단을 한 것이기 때문에 배임죄가 안 된다고 하면 재벌총수들에게만 지나치게 독립적인 법리를 만들어서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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