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은퇴 75세‧가구소득 77만 원 현실로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청년들의 비정규직‧저임금 문제로 빈곤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77만 원 세대’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또 노후에 필요한 적정생활비가 월평균 251만 원은 돼야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노년층 가계의 은퇴 준비는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빚 갚고, 자식들 키우느라 제대로 돈을 모으지 못한 탓이다. 부족한 생활비를 버느라 퇴직한 이후에도 일손을 놓지 못해 실제 은퇴 나이는 75세를 넘기게 되는 것으로 파악되는 현실이다.

적정 노후생활비 월평균 251만 원···최소는 177만 원
청년들, ‘열정페이’ ‘비정규직’ 문제로 뿔났다


KB경영연구소 골든라이프연구센터가 지난 13일 ‘2017 KB골든라이프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가계의 노후 자산과 연금 규모를 추산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적 노후재무설계 실태를 파악했다. 설문조사는 9~10월까지 서울 및 수도권, 광역시에 거주하는 20세 이상 74세 이하 가구주 2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조사와 대면조사를 통해 이뤄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은퇴 전 가구는 노후에 필요한 적정생활비를 월평균 251만 원으로 생각했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생활비로는 월평균 177만 원이 제시됐다. 은퇴 후 가구의 적정생활비와 최소생활비도 각각 250만 원과 172만 원으로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은퇴 준비는 미흡했다. 노후를 대비한 경제적 준비를 시작하지 못한 가구가 전체의 45.8%로 절반을 차지했다. 20대는 83.5%로 압도적이었으며, 30대 53.9%, 40대 51.1%, 50대 46.4% 등도 마찬가지로 절반가량이 노후 준비를 따로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 것. 은퇴를 코앞에 두고도 노후 준비를 시작하지 못한 60대의 비중도 23.4%에 달했다. 빚 갚고 자식들 키우느라 제대로 돈을 모으지 못한 것.

미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해 실질적 은퇴 시기는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로 나타났다. 은퇴 전 응답자가 희망하는 은퇴 연령은 평균 65세로 조사됐으나, 실제 완전히 일손을 놓는 연령은 약 75세로 추정됐다. 대략 10세의 차이가 나타난 수치다.

보고서는 “현재 25~74세의 절반 가량은 부족한 노후 생활비 등을 보완하기 위해 75세 이후에 일에서 완전히 은퇴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과거 한 달 월급이 100만 원도 안 되는 ‘88만 원 세대’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던 일은 옛말이 됐다. 77만 원 세대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가구 중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한 달 소득이 78만1000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구에는 10대 가구주도 있으며 대부분 20대 가구주인 것으로 전해졌다.

30대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의 월소득은 지난 2013년 이래 계속 낮아지는 가운데 2013년 90만8000원에서 2014년 81만 원, 2015년 80만6000원으로 떨어지더니 2016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80만 원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30세 미만 가구 중 연소득 1000만 원 미만(월 83만 원 미만) 비중은 2013년 4.4%에서 지난해 8.1%로 커졌다.

전문가들은 저소득 청년 가구가 늘어난 원인으로 1인가구의 증가도 꼽지만 근본적으로는 청년 비정규직 문제라고 진단되는 상황이다.

비정규직에서도 이른바 ‘열정페이(무급 또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주면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신조어)’를 받는 청년들의 임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특히 열정페이는 예체능 계열 직업군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방송 외주업체 VJ A씨(24)는 “60만 원 이하의 월급을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조금씩 오르는 추세며 내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더 높은 임금을 받기를 희망한다”면서 “그러나 사실상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고 일은 정규직처럼 하지만 언제 내침을 당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다 보니 실제로 임금 인상이 될지는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77만 원 세대라는 말을 공감한다. 주변 방송 업계 비정규직들의 입장만 들어봐도 77만 원보다 못한 금액을 받는 것이 현실”이라며 “열정페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쓰진 않지만 식사를 거르는 경우는 허다하며 예정되지 않은 야근은 기본이다. 이것이 암암리에 이행되고 있는 열정페이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열정페이와 또 하나의 악습인 근로계약서 미작성을 겪는 예체능 계열의 직업군은 배우, 연예인 매니저, 방송 스태프, 의상 도우미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직업군에서 문제를 겪는 것으로 관측된다.

또 예체능 계열만의 문제는 아니다. 열정페이는 다른 직업군을 비롯해 공기업에서도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 분기 세계 각국으로 120여 명의 해외 인턴을 보내는 한 공기업이 지원하는 비용은 교통비 명목의 월 400달러(약 46만 원)뿐으로 전해졌다. 이 외 항공료, 비자발급, 생활비 등은 모두 본인 부담이다. 해당 공기업은 학교에서 장학금을 준다는 것을 이유로 해명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장학금을 생활비로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존재한다. 처음부터 일자리 선택에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기업 회사원 B씨(25)는 “청년 비정규직 문제, 저임금 등은 청년을 우롱하는 기업들의 갑질 행태라고 볼 수 있으나 청년들도 입사 지원‧면접 시 신중하게 고려해보지 않는 것 또한 문제”면서 “입사 후 근로계약서 미작성도 상사 또는 경영진에게 정확히 따져 봐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과정도 안 거치고 불만만 늘어놓는 경우라면 자신의 권리를 남한테 맡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애초에 정부에서 기업들의 불법 행태들을 근절하고 법망을 대폭 강화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라고 말했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88만 원 세대도 모라자서 이제는 77만 원 세대가 됐다”고 발언했다.

이어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열정페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심지어 식비조차 주지 않아 점심을 거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면서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에 달해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그나마 일자리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저임금 비정규직의 굴레 속에서 생계를 걱정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미 (2017년) 12월 초에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일자리 대책회의’를 신설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년 약 20조 원의 일자리 예산을 연초부터 빠르게 집행하고 1월 중에 ‘청년고용 점검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제 청년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물론 국회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치적 공방이 아닌, 청년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합리적인 해결방안 도출을 위해 국회가 누구보다 앞서 노력해야 할 때다. 이제 여야가 손잡고 머리를 맞대며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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