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제천 화재 참사, 늑장 대응 논란 속 소방 인력 부족 재점화
-불법주차로 늦어진 현장 접근…법적 보장에도 사실상 손 쓸 길 없어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지난 21일 발생한 제천 화재 참사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가운데 당시 미흡한 대처가 도마에 오르며 비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소방당국의 인력 부족 문제, 불법주차 문제 등 소방관이 감내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들이 부각되면서 응원의 소리도 들리고 있다. 여전히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점에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의 고충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제천 화재 참사로 2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충북 제천시는 아직도 일대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당시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소방관들이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는 등 상대적 박탈감까지 호소하는 상황이다.

피해를 키운 이유로 지목된 ‘늑장 구조’가 도마 위에 오르며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지만 이번 화재사고 희생자들이 한 사람 건너 아는 사람들이란 사실에 복잡한 심사라는 것이다.

당시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 A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건물 안으로 진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길이 무척이나 강했다. 농연도 가득했다”며 “돌아가신 분이 너무 많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죽더라도 건물로 뛰어들걸이란 생각이 든다”고 고개를 떨궜다.

또 다른 소방관은 “내가 아는 분도 돌아가셨다”며 “목숨을 던져서라도 구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앞서 대한민국재향소방동우회 산하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 SNS에는 당시 구조에 나섰던 한 소방관이 겪은 일화가 공개돼 안타까움을 샀다.

해당 소방관은 “좁은 지역이라 사망한 분들이 대부분 아는 분들이다. 내가 아는 친척도 사망했다고 한다”며 “현장에 투입돼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추위에 지쳐 떨고 있을 동료들을 위해 분식집에 들러 사려는데 소방관들이 대처를 잘못해 ‘죽일 사람들로’ 삼사오오 모여 얘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됐다”며 “죄인이 아닌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아무것도 못 사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결국 이번 참사는 피해 희생자뿐만 아니라 화재진압과 구조에 나섰던 소방관에게도 상처를 남기면서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턱없이 부족한 소방인력
대응 능력 저하

 
우선 이번 화재가 대형 참사로 이어진 데는 지역의 부족한 소방 인력에 비롯됐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국가적 차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제천 화재 당시 총 13명의 소방관이 투입됐는데 이는 서울 및 경기도 등 수도권 지역에서 화재 발생 시 40~50명이 출동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에 출동한 13명 중 구급대원 및 소방차 운전 인력 등을 제외하면 실질적 구조 인력은 4명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소방공무원 부족이 인명 구조에 걸림돌이 된 셈이다.

실제 서울·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현장 출동 인력 부족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부족한 현장 소방인력은 1만9254명에 달한다.

서울은 현장 소방인력의 94%를 확보한 것과 대조적으로 세종시는 48%, 충남은 49.96%에 불과했고 제천 지역이 포함된 충북도 기준 인력의 48.6%에 머물러 있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제천시의 경우 면적 833㎢에 인구 14만 명 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소방대상물만 2166곳에 달하지만 제천소방서에 구조대원은 13명이 전부다.

이를 위해 정부와 소방청은 2022년까지 소방관 2만 명을 확충한다는 계획을 수립 후 추진 중이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소방공무원을 운영해야 하는 지자체별로 재정 능력에 따라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이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소방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국가직 소방공무원은 583명, 지방직은 4만4392명이다.

더욱이 지역간 소방공무원 및 장비의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이번 화재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들어나면서 전문가들은 국가에서 일원화해 관리했을 때만이 ‘차이’를 좁힐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정부도 국가직 전환을 추진 중이지만 관계 법령 개정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번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불법주차 처리 문제 등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손꼽힌다. 이번 제천 화재 사건 현장에서도 선착대는 오후 3시 53분께 신고접수 후 오후 3시 37분에 현장 근처에 도착했지만 주변 불법주차 차량으로 현장 진입이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현장에 도착한 선착대는 연소 확대 방지와 함께 사다리차 전개 공간을 확보하고자 불법주차 차량 이동에 시간을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불법 주차로 소방 굴절차는 주차하는 데에만 15분이나 넘게 소요됐다.
 
불 꺼주고 사비 털어
보상하는 웃픈 현실

 
물론 현행 소방기본법 25조(강제처분 등)에 따르면 소방자동차 통행과 소방 활동에 방해가 되는 주차 또는 정차 차량, 물건 등을 제거하거나 이동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도지사는 강제 처분 등으로 입은 손실을 보상해야 하지만 불법주차 차량이 소방차 통행과 소방 활동에 방해가 됐다면 보상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법적 조항이 있지만 현장 소방관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상 소방관들이 사비를 털어 보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구조 작업 중 불가피한 물적 손실이었음을 소방관 개인이 직접 입증해야 함은 물론 만약 면책되지 않으면 승진에도 불이익이 있어 소방관들은 최대한 소송에 휘말리지 않으려 한다.

또 피해 보상을 위한 예산도 전혀 책정돼 있지 않아 사실상 소방관 개인이 모두 물어내야 하는 게 현 소방법의 현실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소방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에는 화재 진압, 구조 등 공무 중 발생한 사고 등에 대해 소방관의 형사상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해 주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번에도 민사 책임은 포함되지 않아 실효성 논란에 여지를 남겼다.

법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국민 안전에 복무하는 소방공무원들이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 전문가는 대중들이 특수부대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면서 “연면적이 4434㎡나 되는 건물에 사방에 불길이 치솟고, 1층 주차장의 차량 15대가 연쇄적으로 불타고, 대형 LPG 가스통 폭발까지 염려되며 벽에 매달린 사람이 떨어질 위기에 있는 상황에서, 선착대 6명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구조대원 4명이 영화처럼 불을 끄고 사람들을 구출해 낼 것이란 기대가 과연 타당한 것일까”라고 반문하며 충분한 소방인력과 장비지원, 제도적 시스템이 구축됐더라면 사고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최돈묵 전국대학소방학과교수협의회장(가천대 소방공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소방 파트는 미래 계획을 수립하는 파트, 현장 활동 파트, 예방 활동 파트 등 3개가 일괄적으로 움직였을 때만이 재난 예방이 제대로 되는데 정부 한 곳에서 소방 파트를 관리해야 이 부분이 원활히 작동될 수 있다”며 “소방관이 국가직으로 일원화됐을 때 이번 제천 화재와 같이 복합적인 재난에 근본 예방 및 대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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