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지난 28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철거 공사현장에서 크레인이 넘어지면서 도로에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버스에 타고 있던 시민 1명이 숨지고 15명이 부상을 입었다. 현장 근로자가 아닌 일반 시민이 사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잇따르는 크레인 사고는 ‘예견된 인재’로 해석된다. 성과주의, 안전 불감증 등이 업계에 만연해서다. 특히 업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된다면 안전사고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번 사고는 크레인이 굴착기를 들어 올리다가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발생했다. 굴착기는 훅(갈고리)에 매달린 채 도로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크레인이 덮친 버스 지붕은 1m 깊이로 움푹 찌그러졌다.
 
‘크레인 안전사고’는 최근 수년간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해 8월 대구의 한 20층짜리 아파트에서 이삿짐을 옮기던 크레인이 넘어져 운전자가 부상을 입고 1100여 가구가 정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5년 12월 경남 김해시 복합문화센터 신축 공사장에선 100t 크레인이 철골을 옮기다가 옆으로 쓰러져 2명 사망, 부상 8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2016년 10월 서울 송파구 지하철 9호선 공사 현장에서 크레인이 넘어져 승용차를 덮쳤고, 같은 해 12월에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6층짜리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크레인이 쓰러져 행인이 다쳤다.
 
최근 통계를 보면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는 근로자 수는 증가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건설업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는 지난 3년간 꾸준히 늘었다. ▲2014년 434명 ▲2015년 437명 ▲2016년 499명 등이다. 하루 한 명 이상이 공사 현장에서 사망하는 셈이다.
 
전문가는 대형 건설사보다 중소 건설업체가 관리하는 작은 규모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큰 틀에서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발주·설계·시공·현장 근로자 간 명확한 안전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게 건설 안전 전문가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크레인 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앞선 사고의 대부분도 여기에 해당한다. 노후 장비 또는 불량부품 사용, 작업자 부주의 등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위험한 작업을 영세업체에게 하청을 주고, 노동자의 생명보다 눈앞의 이익을 앞세운 기업들이 서둘러 공사를 강행하는 등의 관행이 잇단 사고의 원흉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사고 크레인은 폐기물 더미 위에서 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5t 굴착기를 들어 올리는데 단단한 지반이 아니라 건축물 잔해가 덮인 약한 지반 위에 있었던 것이다. 강서소방서 관계자는 “지반을 단단하게 다진 후 작업을 해야 하는데 급하게 작업하려다 보니 위험을 무릅쓴 것 같다”고 밝혔다. 또 현장에서 크레인이 운행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정황도 드러난 상황이다.
 
현재 경찰은 공사장 측 과실 혐의 입증에 주력하고 있다. 경찰은 사고가 발생한 지난 28일 합동감식을 진행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연약한 지반에 크레인을 설치해 전도됐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크레인 기사 강모(41) 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해 사고 경위 등을 조사했다. 경찰은 현장 소장 김모(41) 씨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강 씨는 경찰에서 “작업에 앞서 맨눈으로 지반을 확인했고 경고음을 들었다. 수평을 맞추기 위해 굴착기로 쌓여있던 자재물을 옮기는 일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원인을 명확히 규명해 강도 높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처벌과 제재 수위가 약한 것이 잦은 안전사고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원청업체의 최대형량은 벌금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안전교육 미비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급하게 공사를 진행하다보면 근로자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할 시간이 없다”며 “안전사고가 발생할 것을 미리 감지하려면 예상되는 사고 유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업체로서는 수익이 중요한 만큼 처벌을 강화해 의무적으로라도 지키게 해야 한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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