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군사력 대치 ‘팽팽한 긴장’ 여전
지뢰 제거 또 하나의 과제


“아군과 북측 GP(최전방 경계초소) 시설물은 절대 촬영하시면 안 됩니다.”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경기도 연천군 중서부전선 태풍전망대에 오른 필자에게 들려온 첫 소리는 촬영 주의사항이었다. 전망대로 가는 길녘은 여느 농촌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곳곳에 보이는 ‘지뢰’ 표지판이 전방지역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자 비무장지대(DMZ)를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이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왔다. 태풍전망대는 휴전선 248㎞ 가운데 유일하게 임진강을 군사분계선(MDL)으로 끼고 있다. 북한 지역까지 1㎞가 안 돼 보였다. “우리 측 전망대 가운데 북한과 가장 가깝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좌우로 사람 한 길을 훨씬 넘는 철책이 이중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곳곳에 우리 측 GOP(General Out Post, 일반전초)가 눈에 들어왔다. 철책 안으로는 남북의 GP(Guard Post, 최전방 경계초소)도 보였다. 순간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영롱한 울음소리를 내며 철책 위에 앉았다가 바로 DMZ 안으로 사라졌다. DMZ는 임진강과 더불어 평화롭게만 느껴졌다.

태풍전망대는 원래 GP였다. 1991년 안보교육관으로 탈바꿈했다. 1968년 북한이 남쪽으로 추진 철책을 설치하고 DMZ 안으로 북방한계선을 내려 설정했다. 우리 군(軍)도 1979년 남방한계선을 태풍전망대까지 끌어올렸다. 정전협정 제1조 10항에 따르면 민사행정업무를 위해 허가받은 군인과 민간인은 DMZ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단, 군사정전위원회가 휴대 무기를 규정하고 한쪽이 1천 명을 초과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있다.

10항은 완충지대를 설정하려는 1항과 모순되지만 군사전략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남북은 DMZ 안에 GP를 두고 경계병력을 운영하고 있다. 남측 GP에는 태극기와 유엔기가 함께 펄럭였다. 아무런 깃발 없는 북측 GP가 멀리 마주보였다. 양측 GP는 몸통인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에서 뻗어 나온 촉수처럼 DMZ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중순 몇 차례 필자가 찾은 태풍전망대 앞 DMZ는 아군 GP가 ‘DMZ의 섬’이 된 듯 장관을 펼쳐보였다. 작가의 눈엔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싶었지만 초병의 말은 달랐다. 철책 순찰을 강화하고 평소보다 더 분주히 움직인다고 했다.

전방 관측이 쉽지 않아 풍광이 수려할수록 긴장감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란다. 특히 북한군이 임진강에 접근하면 아군 GOP와 GP는 서로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며 돌발상황에 대비한다.

육안으로 북측 GP 인기척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군은 열영상장비(TOD)로 북측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갈수기 임진강의 수위는 1.5m가량으로 사람이 뛰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군은 상황별 매뉴얼에 따라 대응한다. 무장한 DMZ에서는 그동안 실제 교전이 벌어졌다. 주로 남방한계선을 목책에서 철책으로 바꾸던 1960년대 잦았다. 휴전 이후 창설된 육군 28사단 역시 DMZ에서 1973년 4월까지 북측과 17차례 교전했다.

DMZ 수색 중 7회, DMZ 매복 중 7회, GP에서 3회 교전했다. 북한군 23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다. 북측 DMZ는 남측과 확연히 달랐다. 군사분계선 임진강 이남은 숲이 무성하지만 반대 편 북쪽은 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연기도 수시로 목격된다. 군은 화전 흔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측 DMZ의 베티고지와 노리고지 사이 넓은 개활지에는 집단 농장인 오장동 농장이 들어서 있다. 총면적이 1.2㎢에 이른다. 북한군과 주민들은 4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이곳에서 옥수수, 벼, 채소 등을 재배한다. 많을 때는 100명을 훌쩍 넘는다. 임진강까지 내려와 어로 활동도 한다.

DMZ를 출입하려면 남측은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북측은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기능을 인정하지 않아 별도의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있다. 송하성 경기대 교수(한국공공정책학회 회장)는 “북한은 DMZ를 보존할 곳이 아니라 통일을 위해 걷어내야 할 곳이라고 인식한다”며 “DMZ 보존에는 남북교류와 협력이 절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고라니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고라니는 인기척에도 도망가지 않은 채 배수로 쪽만 바라봤다. 배수로에는 새끼 고라니가 빠져 밖으로 나오기 위해 낑낑대고 있었다. 새끼 고라니를 돕기 위해 다가간 순간 일행은 깜짝 놀랐다. 어미 고라니의 다리가 3개뿐이었다. 아무래도 오래전에 묻힌 지뢰 때문에 다리를 잃은 것 같다.

낡은 지뢰는 사람의 무게보다 가벼운 동물이 밟아도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건조기 때는 지뢰 폭발로 생긴 불씨가 산불로 이어지기도 한다. 평화 생태를 꿈꾸는 DMZ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는 남북관계의 회복이다. 또 남는 커다란 숙제가 있다. 바로 지뢰다.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DMZ 지뢰 매설 수는 무려 100만여 발이다. 안전하게 제거하려면 400년 걸린다는 게 통설(通說)이다.

특히 현무암 협곡지대가 많은 중서부전선은 지뢰 탐지가 더 어렵다. 현무암 성분 가운데 15%가 철 산화물인 탓에 탐지기로 정확히 지뢰를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중장비로 땅을 파헤쳐 지뢰를 터뜨려 없애야 하지만 환경 파괴가 뒤따르는 어려움이 있다.

지뢰 문제를 한반도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뢰 제거와 매설 금지를 목표로 하는 대인지뢰금지협약에 160여개국이 참여했지만, 남북한은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은 지난 2014년 6월 더는 대인지뢰를 생산하거나 구매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도 한반도는 예외로 뒀다.
환경전문가들은 지뢰 제거에는 무엇보다도 ‘의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독일 역시 1990년 통일 이후 동·서독 사이 미확인 지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당시 독일 사회는 환경파괴 대신 ‘인간지도’를 선택했다. 퇴역장병 가운데 지뢰 설치자를 일일이 수소문, 지도에 없는 지뢰 위치를 거의 완벽하게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역 육군 대위 출신인 조대원 지역경제진흥원장(육군사관학교 49기)은 “사회적으로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고 지뢰를 완전히 제거하자’는 의지가 합의되어야 한다”며 “군과 민간이 힘을 모으면 지뢰 제거에 걸리는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광제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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