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도 존재감이 없는 정국
- 차기 리더십을 만들지 못하는 결과 초래할 수도

 
현재의 교착 정국은 야당들의 무능에 기인한 바가 크다. 다만, 문재인 정부 역시 행정부에서 가능한 일들 위주로 나름의 성과를 보여준 초반의 국면을 지났다. 이후 성과는 결국 의회의 합의가 필요한데 여지가 그다지 안 보인다. 이는 갈팡질팡하는 야당들 문제도 있지만 지지부진이 지속되면 결국 정권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게 된다.
 
문 정부가 노출한
부정적인 신호들

 
부정적인 신호들도 차츰 나온다. 지금의 ‘적폐청산’이란 구호는 정부 지지자들 사이에선 뭐가 됐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책임을 입증하는 것이 되었다. 서울동부지검에 ‘다스 횡령 의혹 관련 고발 사건 수사팀’이 설치됐고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 1부의 수사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조심스레 동부지검에 사건이 배당됐단 것 자체로 검찰이 죄를 밝혀 낼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도덕적 평가나 심증의 영역을 넘어선 법리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외교 안보 문제야 정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고 쳐도, 경제에서도 문제가 나타난다. 다행히 반도체가 호황이고, 다소 숨통이 트인 상황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바로 이런 시기에 한국 경제의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 의지나 로드맵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문재인 대통령의 대우조선해양 방문이 그렇다. “우리 조선 산업의 미래를 믿는다. 우리가 다시 조선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라는 말을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진보 진영에선 조선 산업에 주기가 있으니 공적 자금을 투여해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기업을 보존해야 한단 얘기를 너무 쉽게 한다.
 
하지만 산업 현황을 아는 이들은 훨씬 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전망까지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거제에서 벌어지는 일이 울산에서도 벌어질 경우 한국 경제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까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거제만 보더라도,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어찌 보전될지 모르는 마당에 이미 깊숙하게 찔려 자상을 입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선 모종의 군살 빼기가 불가피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서서 저리 말하니 채권단과 은행 등이 정부 눈치를 보느라 여신 회수를 늦추고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시장 실패를 보완해야 하지만 스스로 시장 환경을 바꿀 수는 없다. 변화된 시장환경과 하락하는 산업경쟁력을 인정하는 가운데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의 결과 발생한 실업자 및 주변 자영업자들의 고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 기조에서 한국 조선 산업을 어떤 방식으로 재편하고 업그레이드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도 나올 것이다. ‘구조조정=악’이라 여기는 것이 진보진영의 흔한 인식이고 민주당 역시 그에 편승할 때가 많지만 그리 따지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자영업자에 대한 구조조정 조치가 아닌가? 임금노동자만 사회적 약자로 인지하는 진보 진영의 편견만 드러낼 뿐이다.
 
‘청와대 직접 통치’
앞에서 고요한 민주당

 
문제는 이런 부정적인 신호보다도 이런 것들을 포함한 제반 문제들에 제대로 발언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야당들은 제대로 포인트를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비판을 난사하고 있다고 보지만, 이 경우엔 여당이 문제다. 민주당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야당과 전임 정부를 공격하여 지지자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하는 추미애 대표의 목소리만 들린다. 기자들이 물어보면 ‘청와대에서 다 챙기니 할 말이 없다’는 식의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좀 더 세밀하게 물으면 ‘알잖아’란 식으로 반응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은 분명 박근혜 정부와는 다르다. 박근혜 정부는 ‘콘크리트 30%’를 토대로 국정원과 검찰을 틀어쥐고 여당을 통치하고 여당을 통해 국회를 통제했다. 그래서 당시에도 여당에선 정부 지지의 목소리 외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그 역할을 지지자 그룹에서 자발적으로 한다. 추미애 대표 발언에서 ‘사이다’를 얻는 그 그룹이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일견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현 정부의 핵심 지지자 그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사례를 기억한다.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은 대통령과 정부의 기조에 맞추지 않았고 분열해서 우왕좌왕했다. 정동영 등 유력 주자들이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본인의 정치 기반을 닦았다.
 
그런데 ‘이견 논쟁을 용납합시다’고 주문한 안희정 충남지사 정도의 발언에서 당시의 정동영을 떠올리는 게 합당할까? 아마도 당권을 노릴 안 지사가 정권 지지자 그룹과 거듭 마찰을 빚는 것이 정치논리로 볼 때 현명하지 않다는 지점을 떠나서 볼 때, 시비만 따져서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견을 제시하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진보 언론 등을 순치시키려는 그 태도는 단순히 심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방법은 전혀 달랐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의 행보 내내 그렇게 자기 휘하 정치인들을 순치시켰다. 작년 초 대구·경북 지역에 조사를 갔을 때의 일이다. 그 지역 사람들조차 ‘박근혜를 십여년 밀어주니, 동네 괜찮은 정치인들의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이견 제시나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는 박근혜의 심리적 특성 때문에 결국 대구·경북 지역에서 선출된 이들은 ‘예스맨’들이었고 그것이 십여 년 누적되니 자기들 눈으로 보기에도 ‘정치인감’이 안 보이더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본인이 그걸 못 견디는 성품은 아니기에, 청와대에서의 토의는 활발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요인에 의해서라도 여당이 이렇게 조용한 것이 득이 되는지는 집권 세력과 그 지지자들이 한 번쯤 심각하게 자성해볼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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