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논의가 새해 들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각 당 내부에서 불협화음이 계속 터져 나옴은 물론 양당 사이 정책 현안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차도 드러나면서다.
 
통합추진협의체는 8일 '통합개혁신당' 추진계획이나 창당준비위원회 출범 일정 등을 발표하는 등 겉으로는 합당 작업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이달 말까지 각 당 전대를 마치고 이와 동시에 창당준비위원회를 띄워 2월 내에 합당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구상이다.
 
그럼나 이 과정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의 '밀당'(밀고 당기기)이 지속되는데다 바른정당 의원들의 추가 탈당에 통합 효과에까지 의문 부호가 붙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군으로 여겼던 손학규 상임고문과 김한길 전 대표가 통합 추진에 힘을 실어주지 않고 있고 통합 반대파 역시 안 대표 '흠집내기'에 집중하며 통합 무산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안 대표와 유 대표 간 정책 현안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차도 드러나고 있다. 우선 대북·외교정책 등에서 양당의 정체성 차이가 가장 큰 뇌관으로 꼽힌다. 두 대표는 굳건한 한·미 공조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같이하면서도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온도차를 드러냈다.
 
안 대표는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당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환영한다”며 “평창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첫걸음을 내딛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이어 “우리 정부의 고위급 회담 제안에 대해서 북한이 의제와 전제조건 등에서 역제안할 가능성에 대해 면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민 대표는 북한의 올림픽 참가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선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유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평창올림픽을 남북 평화 구축과 북핵문제 평화적 해결로 연결시키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인사회 발언을 언급하며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어떻게 북핵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유 대표는 이어 “1994년 당시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영변 원자로가 있었던 북한이지만, 지금은 핵무장을 완성한 북한”이라며 “이 심각한 문제를 후손에게 떠넘기려는 친북 좌파들의 얄팍한 위선에 대해 국민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유 대표는 지난 8일 국민의당과의 대북정책 입장차를 거론하며 양당 통합에 대해 ‘최종 결심을 하지 않았다’고 본격적인 ‘밀당’을 시작했다. 이날 유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당 통합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심한 것은 아니다”며 “통합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은 혼자 할 일이 아니라 당이 같이 하는 것이다. 9일 의총에서 상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 대표의 신중론은 햇볕정책 등 안보관 협의에 난항을 겪고 있는 통합 논의에서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통합 반대파인 박정천(박지원·정동영·천정배)의 배제가 전제돼야 한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이에 안 대표가 같은 날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며 ‘진화’ 작업에 나섰으나 안 대표의 통합 드라이브의 동력이 일정 부분 상쇄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실제로 국민의당은 통합안 의결을 위한 전당대회 성사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가 신당 창당과 함께 전당대회 저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다 전당대회를 열기 위해 대표당원 의결정족수를 모으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통합파의 고민이다.
 
중재파에서도 안 대표의 통합 속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통합파는 내부적으로 통합 추진을 일주일 가량 멈추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는 전언이다.
 
국민의당 지도부 관계자는 "바른정당 상황에 중재파의 우려도 있어 통합 추진을 일주일 가량 올스톱한 상황"이라며 "안 대표를 비롯해 여러층에서 중재파 의원들을 만나 설득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안 대표 측의 이 같은 설득 작업에도 아직까지 접점은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 때 중립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안 대표의 선(先) 사퇴와 공정한 전대 개최'라는 중재안이 나왔으나 이에 대해서는 안 대표 측이나 반대파 모두 수용하지 않는 듯하다. 안 대표 측에서 호남파의 이탈을 각오하고라도 전대를 강행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 경우 의결 정족수인 '대표당원 2분의 1'을 참여시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유 대표는 8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통합 선언을 다 했는데, 국민의당 전당대회가 무산되거나 통합안이 부결되면 우리 당 입장이 매우 곤란해진다"며 "국민의당 내부 문제를 깨끗하게 정리한 뒤 통합하는 게 좋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앞만 보고 달리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통합열차'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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