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장휘경 기자] 7년 전 볼보 승용차 부문을 삼켜 업계를 놀라게 했던 중국 저장지리(浙江吉利·Geely)자동차가 이번에는 볼보 상용차 부문 지분 인수에 성공,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99년 승용차와 상용차 두 개 브랜드로 분리 매각됐던 볼보자동차가 중국 기업의 막강한 자본력으로 약 20년 만에 한 지붕 밑에 둥지를 틀게 됐다. 중국 자동차 업계는 2010년 지리자동차가 볼보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해외 브랜드 인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인수 후 볼보의 매출이 증가하고, 지리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는 등 결과적으로 양사 모두가 수혜를 입은 것으로 평가돼 해외·중국 업계 전체가 M&A 추진을 반기는 것이다.


중국 3대 자동차 제조사인 지리자동차가 2010년 미국 포드로부터 볼보 승용차 부문을 인수한 데 이어 이번에는 볼보 트럭과 버스를 만드는 볼보AB의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로 부상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최근 지리자동차는 유럽의 최대 행동주의 투자가인 세비안 캐피탈로부터 볼보AB 지분 8.2% 전량을 매입했다. 정확한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약 32억5000만유로(약 4조15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시장의 평가 가치 대비 20% 이상 프리미엄을 얹은 수준이며 이번 인수로 지리자동차는 볼보AB의 의결권 15.6%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볼보AB는 지난 1999년 승용차 사업부를 미국의 포드 자동차에 65억 달러에 매각한 이후 볼보 승용차와 상용차 부문의 소유 구조가 분리된 상태다.

1986년 냉장고 제조업체로 시작한 지리자동차는 1997년부터 자동차 생산에 뛰어든 후발업체다. 그러나 포드로부터 볼보 승용차부문을 18억 달러에 인수, 경영권을 확보하면서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기업의 인수로 기술유출 등이 우려됐으나 볼보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기업 회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리자동차는 이 회사가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와 같은 신기술 사업에 주력토록 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상태다.

지리자동차는 최근 상용차와 양산형 승용차는 물론 프리미엄과 럭셔리 승용차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브랜드 다변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볼보AB의 지분 인수는 이런 움직임과 무관치 않은 것이다.

FT는 “지리자동차의 볼보AB 지분 인수가 당장 승용·상용차의 통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지리자동차가 승용차 부문에서 키운 볼보 브랜드력을 상용차 부문까지 확대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에 지리자동차가 인수하는) 볼보AB는 전기차와 선진 운전 지원 시스템 등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번 투자를 계기로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 공동 개발도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격적 사업 확장 지속

지리자동차는 볼보 인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해외 브랜드를 사들이고 있다. 지난해 5월 말레이시아 국영 기업인 프로톤 지분 49%를 인수하면서, 영국 슈퍼카 브랜드인 로터스 지분 51%까지 확보했다. 이어 7월에는 미국의 비행자동차 스타트업인 테라푸지아 지분까지 사들였다. 회사 측 발표에 따르면 오는 2019년에는 상용 비행차동차가 테라푸지아에서 출시될 예정이다.

또한 지리자동차가 볼보와 손잡고 설립한 합자회사인 링크앤코(LYNK&CO)는 지난해 11월 30일 차량공유 기능을 갖춘 커넥티드 컴팩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01’를 선보여 또 한번 이목을 끌었다. 이 자동차는 소유자가 운전하지 않는 시간대를 정해 ‘공유’ 기능을 설정하면 다른 사람이 잠금장치를 풀고 운행할 수 있도록 한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방식의 차량이다.

지리자동차의 이같은 행보에 주가도 지난해 4배 가까이 뛰었다. 홍콩 증시에 따르면 지리자동차는 지난해 1월 5일 종가 기준 주가가 7.68 홍콩달러였지만, 11월 30일에는 27.50 홍콩달러였다. 세계적으로도 테슬라에 비견할만한 성장이다.

업계에서는 지리자동차의 이런 성장이 볼보 인수를 시작으로 기술개발에 막대한 노력을 들이는 등 공격적인 운영에 따른 것으로 본다.

여전히 지리자동차는 글로벌 완성차사 인수를 노리고 있다. FCA와 메르세데스-벤츠 등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투자 가속화될 듯

지리자동차뿐 아니라 중국의 해외 자동차 업체 인수합병(M&A)은 더욱 힘을 받을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자본 해외 유출을 막고자 2016년 말부터 해외 M&A를 강력히 규제했다. 하지만 자동차·에너지·철강 등 산업의 해외투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당국이 자동차산업 육성에 집중함에 따라 자동차와 관련된 해외기업 인수 움직임은 가속화됐다. 글로벌 자동차 수출국으로의 전환이라는 정부 차원의 포부 아래 자동차 업계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진 것이다.

2008년 이후 중국 업계가 해외 자동차 제조·부품 업체들을 사들이는 데 쏟아부은 금액은 340억 달러에 달했다. 2016년 중국 자동차·부품 업계의 해외 투자 건수는 69건으로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지난해 상반기에도 55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매출 1000억위안(16조5000억원)급 자동차 부품업체를 육성하고 2025년 중국 차 업체와 부품회사를 글로벌 10위 안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제조2025’를 통해 제시하는 등 자동차 시장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발판 삼은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해외 M&A를 통해 규모를 확대하고 첨단 기술력을 확보해 국내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베이징(北京)자동차는 2009년 스웨덴 브랜드 사브(SAAB)의 2개 차종 생산설비와 지식재산권을 확보해 기술개발 능력을 향상시켰다. 둥펑자동차는 지난 2014년 프랑스 푸조시트로앵(PSA)의 지분 14%를 사들였다. 중국 최대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제조업체 창청(長城)자동차는 미국 지프(Jeep) 인수 포기 선언 이후에도 독일 BMW와의 합자회사 설립 등 해외 기업과의 협력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리자동차는 해외 유명 브랜드 인수 후 판매량이 큰 폭으로 늘어나 시장에서 우위를 점했다. 지난해 11월 지리자동차의 판매량은 14만1265대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8% 증가했다. 또한 1~11월의 누적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66% 급증한 109만3491대로 연간 판매 목표치를 달성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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