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8년 4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통일 민주국가 수립을 위해 남북의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이 북한 평양에 모여 회의를 가졌다. 이른바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다. 남측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과 김규식 등이, 북측에서는 김일성과 김두봉 등이 참석해 우여곡절 끝에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소군의 즉시 철군, 남한의 단독선거 절대 반대 등이 요지였다. 
그러나 공동성명은 실패로 끝났다. 연석회의의 결정에 따라 남한에서 단독 선거 반대투쟁이 전국적으로 전개되긴 했으나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투쟁 주도자들이 주로 좌파세력에 국한되었기 때문이었다. 또 김일성이 연석회의를 수락하기 전인 1948년 2월 8일에 이미 조선인민군을 창설하고 2월 11일부터는 1947년 작성된 임시헌법 초안을 ‘전 인민 토의’에 붙이는 등 북한정권 수립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었다는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연석회의가 결과적으로 김일성체제 확립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는 2년 후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기습으로 남침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사실로 확인돼 결과적으로 당시의 연석회의는 남측이 북측에게 전쟁의 명분만 주고 철저히 이용만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연석회의는 전쟁 준비를 위한 일종의 위장평화공세였던 셈이다. 
북한의 위장평화공세는 이후 더욱 노골화했다. 6·25 남침을 감행하기 전 남북 단일국회 구성을 제의했고, 1960년 8월 14일에는 남북 연방제 통일을 제의한 가운데 1.21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사건과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일으켰다.
이어 1971년에는 평화통일 3대 원칙을 제시한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남침용 땅굴을 파고 있었고 1983년에는 미국을 포함하는 3자 회담을 제의한 다음 날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 폭탄테러를 자행했다.
1987년에는 서울 올림픽 동시 개최를 제의하면서 KAL 858기 폭파 테러를 저질러 탑승객 115명 전원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에는 남북 고위급 정치회담을 제의해놓고 제1연평해전을 도발,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을 6월 29일에는 제2연평해전을 감행했다.
지금까지 북한은 겉으로는 평화공세를 이어가면서도 한반도 공산화의 목적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북한의 평화적인 제스처는 대남적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화전양면전술 전략으로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내내 핵실험과 핵미사일 발사 실험 등으로 한반도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켰던 북한이 새해 접어들자 갑자기 평화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북한이 뭘 노리고 있는지는 세상이 다 아는 바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선 마치 통일이라도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북한의 전술을 다 잊어버린 듯한 모습이다.
물론 대화는 전쟁을 하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대화를 하더라도 반드시 한반도 비핵화라는 원칙 위에서 해야 된다는 말이다. 북한은 핵을 보유하는 길만이 유일한 생존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북한을 상대로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사실을 문재인 정부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주문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70년 전 김구 선생이 김일성에게 속았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