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예상못한 노무현식 배팅 … 야당, 정치적 복선 크게 경계‘총선 승리·정국주도권 회복 등 두마리 토끼사냥’ 풀이 설득력노무현 대통령의 혁명정치가 발진했다. 자신의 거취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재신임을 받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혁명적인 발상이다. 자칫 국가의 대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재신임 문제는 정국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엄청난 정국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것도 사실. 총선을 기점으로 이 변화의 물결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그렇지만 정치권의 시각은 곱지만은 않다. 복선을 깐 정치도박 수준으로 폄하하는 평가도 나온다. 이른바 ‘올인전략’이 그것이다. 그 전모를 취재했다.

포커판에는 불문율이 있다. 돈을 전부 판돈으로 걸 경우, ‘올인’이라고 외치는 것이 그것이다. ‘올인’은 포커판에선 대승부수다. 더 이상 물러날 자리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올인’은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을 때 행해진다. ‘올인’은 히든카드가 절묘한 상황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종종 생각할 수 없는 엉뚱한 경우에 나오기도 한다.상대편 카드에 비해 형편없는 경우도 종종 ‘올인’이 나온다. 이럴 경우 그야말로 대도박이다.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경우라고 볼 수 있다.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전격 발표를 바라본 정치권의 시각은 한마디로 ‘올인전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최근 궁지에 몰린 노 대통령의 마지막 승부수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문제는 노 대통령의 승부카드다.

노 대통령의 ‘히든카드’가 승패를 가를 것으로 정치권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쥐고 있는 ‘히든카드’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정치적 복선을 깔고 있는지가 확실하게 분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민주당 고위 당직자 역시 “정말 국민투표를 하자는 건지 잘 모를 지경”이라고 밝히는 등 정치권 관계자들조차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권의 이같은 반응은 당연한 결과다. 정부 공식라인에서조차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과 주위 몇 사람을 제외하고 이 문제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노 대통령의 진짜 의중 읽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히든카드’ 잡기에 정보망을 풀가동하고 있는 상태. 노 대통령의 재신임 언급이 있었던 지난 10일 오전 12시경.최병렬 대표는 상임위원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 언급이 있은지 한시간 후에 회의가 전격 소집됐다. 회의 참석자는 13명. 최 대표와 홍사덕 총무를 비롯, 현경대 박근혜 오세훈 남경필 양정규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의 주요 안건은 노 대통령이 언급한 재신임을 받아들이느냐 여부였다.

최 대표와 홍 총무 등 강경파 의원은 즉각 재신임 투표를 받아들이자는 입장이었지만, 다수의 중진 의원은 “재신임 언급에는 복선이 있을 것”이라며 사태추이를 더 지켜보자고 제안했다. 한나라당 일부 당직자들은 “재신임을 받아들이고 대선준비를 본격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지도부에 전달되기도 했다. 상당수의 당직자들까지도 대선후보로 누구를 내세우면 되겠느냐는 말까지 오고 갔다는 게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의 말이다. 이같은 한나라당의 입장은 11일 급변했다.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윤성식 감사원장 내정자의 국회부결문제와 김두관 전행자부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들고 나왔기 때문. 여기다 노 대통령은 언론환경까지 거론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한나라당이 강경기조로 돌변한 것은 당연한 수순. 일요일인 지난 12일, 한나라당 율사출신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 정치개혁특위 회의에서도 강도 높은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정치개혁특위에는 홍준표 김문수 정형근 최영희 김영선 의원 등이 위원이다. 이날 회의에서 “재신임 투표는 의미가 없다. 최도술, 양길승, 이광재 건에 대해 특검제를 도입해서라도 밝혀야 한다”는 발언이 터져 나온 것. 이처럼 한나라당의 반응이 싸늘해진 이유는 ‘노 대통령의 정국돌파용’이란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까지 내놓겠다고 각오한 최도술씨의 진짜 비리가 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했다. 이 당직자는 최도술씨가 수수한 SK비자금 중 상당액이 말못할 고위선까지 흘러들어갔다는 제보가 당내에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당내에선 최도술씨의 비자금 사건과 관련, 갖가지 풍문이 나돌고 있는 상태. 따라서 한나라당은 내부적으로 ‘재신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정리해 놓았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노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의혹과 관련, 특검제를 도입해 전모를 밝힐 것”이라며 “정치적 복선이 있는 재신임 문제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민주당도 한나라당과 보폭을 같이 한다. 지난 10일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고 치고 나갔던 민주당이 노 대통령의 측근 비리 규명을 들고 나온 것도 한나라당과 분석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은 노 대통령의 진짜 속셈. 앞서 말한 ‘올인전략’이 궁극적인 목적이란 게 정치권 한켠의 시각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배팅을 노 대통령이 시작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총선 승리와 정국주도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한 사냥으로 풀이하는 정가 인사도 있는 게 사실이다. ‘대통령직’이 배팅 액수라면, 게임판은 정치개혁과 정국주도권이 되는 셈이다. 게임에서 지면 대통령직을 내 놓아야 하고, 반면 게임에서 이기면 정국을 주도하면서 지역구도 타파라는 대명제 아래 정치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할 수 있다. 그야말로 ‘올인’을 외치는 형국이다.‘올인전략’과 관련, 정보기관 관계자는 “재신임 문제도 결국 정치개혁의 필요성이 중요한 모티브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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