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문재인 정권 하 검찰의 칼춤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이들의 칼끝은 현재 전(前) 정권을 거쳐 전전(前前) 정권까지 다다라 있다. ‘박근혜→친박계→이명박→친이계→보수 궤멸’로 이어지는 현 정부의 ‘적폐 청산 시나리오’가 5부 능선을 넘겼다는 관측이다. 미래보다 과거에 집착하는 정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문 정부의 ‘적폐 청산 시나리오’가 쓰일 수 있었던 데는 MB의 ‘자충수’가 컸다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 2007년 멸족 직전까지 갔던 친노계의 부활을 ‘견인’하고,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대열에 동참하면서 친노계의 재집권을 등 떠민 게 바로 이 전 대통령과 친이계라는 것이다. MB와 친이계가 ‘노 전 대통령 서거 부메랑’과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저주’에 맞닥뜨렸다는 해석이다.
 

- MB·친이계의 자충수 ‘둘’… 멸족 직전 親盧 부활 ‘견인’, ‘朴 탄핵 ‘찬성’
- 文 정부 탄생 후에도 계속된 ‘자충수’... TK 민심까지 잃어


검찰이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청와대 상납 의혹과 관련, ‘MB 집사’ 김백준(78)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의 신병 확보에 성공하면서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朴 집사’ 이재만 입 열어...
‘MB 집사’ 김백준은?

 
검찰이 김 전 기획관의 수사에 집중하는 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유용의 민낯을 드러낸 결정적 진술이 그의 최측근인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 전 비서관은 국정원 특활비 뇌물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박 전 대통령이 특활비를 기 치료 및 주사 비용 등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구체적 진술들을 쏟아냈다. 그의 진술은 “단 한 차례도 사익을 추구한 적 없다”던 박 전 대통령 진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이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의 ‘집사’였다면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의 ‘집사’였다.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의 현대건설 사장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인물로 청와대에선 자금 관리와 집안문제 등을 담당해 ‘개인 집사’로 불릴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법조계에선 김 전 기획관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 이 전 대통령에게 치명타가 될 메가톤급 진술들이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이 전 대통령 최측근 인사들이 검찰 조사에서 대부분 입을 열고 있어 이 전 대통령 직접 조사는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동시에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차명소유했다는 의혹을 받는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관련 수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신봉수)는 최근 김성우 전 다스 사장을 조사해 ‘이 전 대통령이 대부기공(다스의 전신) 설립 초기부터 관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2007년 검찰과 2008년 특검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은 다스와 관련이 없다’고 한 진술을 뒤집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사정 칼날이 자신의 턱밑까지 다다르자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검찰 수사에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성명서 발표를 통해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며 문 정부의 ‘적폐청산’을 ‘보복정치’로 규정했다.
 
무엇보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의 발언에서 주목할 대목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는 부분이다. 이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 전 대통령의 위 발언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이 전 대통령의 발언대로라면 문재인 정권과 친노계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들의 ‘복수’가 가능한 데는 이 전 대통령 스스로가 자충수를 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親盧 거세’ 직전까지 갔지만...
‘이명박 정권 서거 책임론’ 활활

 
지난 2007년 정권을 잡은 이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은 벼르고 별렀던 ‘친노 거세’ 작업에 착수했다. 퇴임 후 인터넷 정치로 고개 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주저앉히기와 친노 축출은 때와 시기의 문제였지 MB 정권에겐 집권기 동안 반드시 청산할 숙제 중 하나였다.
 
당시 검찰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물 만난 고기’와 같았다.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수사를 지휘한 대검 중수부장은 이인규, 검찰총장은 임채진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대검 중수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검찰총장의 직할부대였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인 박연차 씨의 비자금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과 왼팔로 통했던 참여정부 386 실세 이광재 전 의원과, 안희정 지사 그리고 수도권 친노 핵심 서갑윤 전 의원까지 한 올가미에 가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직접 조사까지 했다. 그 무렵엔 노무현 일가의 640만 달러 수수 의혹도 함께 불거져 나왔다. 친노계 전체가 ‘공중분해’될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수사는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파국을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당장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동반 급락했고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서도 검찰 수사가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몰고 갔다는 동정 여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이명박 정권 서거 책임론’에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순장론’까지도 나올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 전 대통령을 향했던 MB 정권의 ‘칼날’은 ‘근조 화환’으로 변하고 말았다. 당시 청와대는 살얼음판을 걷듯 긴장하고 조심했다. 충격받은 국민정서를 잘 다독이지 못한다면 민심이반에 따른 엄청난 역풍을 자초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자연스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당국의 사정 칼날은 무뎌졌고 벼랑 끝에 서 있던 친노계는 전원 생존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친노계의 부활을 견인한 장본인이 MB와 친이계’라는 관측을 내놓는 것이다.
 
이후 기사회생한 친노계는 새로운 수장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했고 문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다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18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48.0%라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51.6%를 기록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석패하긴 했지만 지난 2007년 공중분해 직전까지 갔던 때를 떠올리면 괄목할 만한 기세였다.
 
朴 탄핵 동조해 줬는데...
“설마 우리까지 도려 낼 줄은”

 
이처럼 친노계가 부활을 넘어서 제2의 전성기를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MB와 친이계는 지난 2017년 두 번째 자충수를 범하고 말았다고 정치권은 지적한다. 친이계 인사 다수는 지난해 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했다.

같은 시기 이 전 대통령 역시 더는 정치색을 갖지 않겠다며 당적을 버렸다. 그 결과 뜻하지 않은 ‘우군’들의 도움을 받은 친노계는 19대 대선에서 자신들의 두 번째 주군을 청와대에 입성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와 관련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차기 정권의 사정 칼날을 자신들 앞 즉 친박계에서 멈추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민주당과 함께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을 것”이라며 “자신들이(친이계) 탄핵에 도움을 줬으니 설마 우리한테까지 그럴까 라는 생각이었겠지만 현재 친이계와 MB는 ‘박근혜 탄핵의 저주’에 직면한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문재인 정권이 탄생한 후에도 친이계의 자충수는 계속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MB의 최측근인 홍 대표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바른정당 친이계 인사들을 ‘보수 대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한국당 재입당을 종용하면서 ‘최후의 보루' TK에서마저 지지를 잃었다는 것이다.
 
최근 당협위원장 교체 지역을 보면 홍 대표의 친이계 길 터주기는 더욱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배덕광 의원이 엘시티 비리 의혹으로 탈락한 부산 해운대·기장갑에는 2014년 보궐선거 때부터 친이계 안경률 전 의원이 도전장을 내고 있었다. 안 전 의원은 친이계이지만 구 민주계(YS계) 출신으로, 김무성 의원과도 가까운 사이다.
 
현역이 아닌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솎아낸 곳 역시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한국당으로 복당한 의원들의 지역구가 대거 포함됐다. 이번에 원내대표가 된 김성태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강서을이 대표적이다. 또 강길부(울산 울주군), 이진복(부산 동래), 정양석(서울 강북갑), 김영우(경기 포천·가평), 여상규(경남 사천·남해·하동), 홍철호(경기 김포을) 의원들의 지역구에서도 원외 인사들이 맡고 있던 당협위원장 자리를 빼앗겼다. 김성태 신임 원내대표까지 하면 7명의 ‘복당파’가 재공천 청신호를 받았다.
 
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성명 발표에 문재인 대통령이 대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재 권력과 전임 정권이 정면충돌하는 분위기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8일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 보복 운운하는 것에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 취임 후 가장 격노한 순간이었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 역시 문재인 대통령의 이날 메시지에 대해 “법질서 측면도 있지만 개인적인 분노와 불쾌도 다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느꼈다는 ‘개인적인 분노와 불쾌’ 역시 지난 2009년의 일로 추측된다. 그 해 5월 노 전 대통령 영결식 당시 문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 사죄하십시오”라고 외치다 경찰에 제지를 당한 백원우 당시 통합민주당 의원(현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대신해 이 전 대통령에 머리 숙여 사과한 바 있다. 즉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다시 거론한 것은 문 대통령 입장에선 참기 힘든 모욕이자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MB 수사에 ‘관망’ 입장을 고수해 오던 자유한국당도 이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프레임’을 기정 사실화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고 MB 측근 인사들 역시 “우리도 정권을 잡은 적이 있는데 우리라고 아는 게 없겠냐”며 현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해 한동안 정국은 꽁꽁 얼어붙을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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