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환은 롯데 회장인가요, 삼성 회장인가요”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재벌가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잊을 만하면 또 나온다. 내용도 서열싸움, 치정멜로, 모함, 복수 등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뻔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방을 사로잡는 비결은 뭘까.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만약 실제사건을 모티프로 한 재벌가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MBC ‘돈꽃’을 비롯해 지난해 종영한 JTBC ‘품위 있는 그녀’ 등 드라마 속 숨어 있는 실제 기업 이야기를 일요서울이 꺼내봤다.
 
‘청아타워 건설’ ‘전략실 해체’ 등 실제 기업 얘기와 비슷
‘품위 있는 그녀’도 종영 후 “실화 모티프” 알려져 화제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토요드라마 ‘돈꽃’은 실화를 모티프로 제작됐다고 공식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돈꽃’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돈꽃 실화’ ‘돈꽃 롯데타워’ ‘돈꽃 롯데’라는 연관 검색어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대변할 뿐.

‘돈꽃’은 청아그룹을 둘러싼 복수, 그리고 치정멜로 이야기다. 변호사 출신의 청아그룹 전략기획실 법무팀 상무 강필주(장혁 분)가 청아그룹에 들어가 장말란(이미숙 분)과 장부천(장승조 분)의 충실한 개를 자처하며 복수를 꿈꾸는 모습을 담는다.

지난해 11월 11일 첫 방송에서 강필주는 장부천의 배임, 폭행 등 각종 죄를 뒤집어쓴 채 감옥행도 마다하지 않는 ‘충실한 개’로 등장했다. 강필주는 장말란과 장부천이 장여천(임강성 분)에 밀려 청아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명예회장인 장국환(이순재 분)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혼사 사업’에 뛰어든다. 유력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나기철의 딸 나모현(박세영 분)과 장부천을 결혼시키고, 장국환의 숙원인 청아타워 건설 허가권을 따 내 장말란과 장부천이 청아가 경영권을 이어받도록 하겠다는 것이 그의 설계.

강필주는 장국환을 만나 빈 부지로 데려가 “이 부지에 청아타워를 세우고, 여기 120층에서 성대한 잔치를 열어드리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첫 방송 직후 네티즌들은 “롯데타워 이야기가 아니냐”며 뜨거운 관심을 내비쳤다. 바로 120층의 청아타워를 세우는 이야기가 롯데가 잠실 월드타워를 세우던 때와 비슷한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또 드라마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삼성그룹의 실제 이야기가 곳곳에 나타났다는 누리꾼의 제보가 이어진다. 정말란과 장성만 회장(선우재덕 분)이 낸 차량사고로 한 달 반 동안 의식을 잃었던 강필주가 회복하자마자 장성만 회장에게 복수의 칼날을 겨눈 내용이다. 강필주는 차기 정권에 청아가의 변신을 어필하기 위해 장성만을 해임하고 전략기획실을 없애자고 장국환에게 제안한다. 장국환은 좋은 생각이라며 바로 장성만에게 퇴임 지시를 내렸다.

이 내용이 방영된 후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는 “이순재가 그럼 삼성회장인건가?” “돈꽃, 삼성 이야기 차용한 듯” “타워 건설 이야기는 롯데 같았는데, 이제 삼성 이야기 같다” 등의 네티즌 반응이 이어졌다.
 
실화 바탕으로 한 과거 드라마는?
 
이에 앞서 실화를 모티프로 해 큰 인기를 끈 드라마는 JTBC의 ‘품위 있는 그녀’다. ‘품위 있는 그녀’는 재벌 ‘대성펄프’ 회장 안태동(김용건 분)의 둘째 며느리 우아진(김희선 분)과 안태동의 간병인 박복자(김선아 분)의 이야기를 다뤘다. 고아 출신인 박복자가 펄프회사 회장 안태용의 간병인으로 대성펄프家에 들어간 후 안태용의 마음을 사로잡아 안방까지 차지하고, 회사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드라마는 방영 내내 ‘실제 영풍제지 이야기가 아니냐’는 소문에 휩싸이며, 포털사이트 연관검색어에 ‘실화’ ‘품위 있는 그녀 영풍제지’라는 단어가 오르내렸다. 중견기업 ‘영풍제지’의 이무진 회장과 노미정 씨의 결혼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 또한 극중 우아진과 남편 안재석(정상훈 분)의 이야기는 실제 임세령 대상그룹 전무와 전 남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얘기가 아니냐는 설도 떠돌았다.

하지만 감독인 김윤철 PD가 직접 나서 “작가가 상류사회를 취재해 극화한 드라마다.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며 그야말로 ‘카더라’라는 추측으로만 남았다.

그런데 종영 후 백미경 작가가 실화였던 사실을 밝히며 다시 회자됐다. 백 작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A제지 사건이 ‘품위 있는 그녀’ 모티프가 된 게 맞다. 한 대기업 회장이 혼외자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한 게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그게 모티프가 됐다”고 밝혔다.

2012년 당시 79세였던 이무진 영풍제지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회사 주식 113만8452주(51.28%)를 35세 연하의 부인 노미정 부회장에게 넘겼다. 노 부회장은 이에 기존 보유 주식 9만6730주(4.36%)를 포함해 총 55.64%를 확보하며 영풍제지 최대 주주가 됐다.

그런데 노 부회장의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해 비극으로 치달았다. 2013년 3월 이무진 회장의 장남 이택섭 영풍제지 전 대표가 “노 부회장이 아버지 재산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뒤 불법적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까지 받아 쌍둥이 자녀를 낳았다”며 “이 사실을 안 어머니(본처)는 큰 충격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노 부회장을 고소, 고발한 것. 이 회장의 부인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 노 부회장은 영풍제지의 최대주주가 됐다.

하지만 영풍제지는 2015년 사모펀드인 큐캐피탈파트너스에 650억 원에 넘어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에 비춰지는 내용이 실제인 줄 아는 시청자들이 있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방송가의 한 관계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극의 재미를 위해 첨가된 내용이 특정기업을 지목하는 것에 대해서 일부 불편한 시선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 주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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