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테니스의 ‘전설’로 꼽히는 이형택이 제일 못하는 게 딱 하나 있다. 영어였다. 현역 시절 윔블던대회에 출전하는 그와 우연히 비행기를 함께 탄 적이 있다. 영국에 도착할 즈음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이형택이 기자에게 다가왔다. 자기 것을 대신 좀 적어달라는 것이었다. 이형택은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땐 다 그랬으니까.
 
이형택은 또 영어로 진행하는 인터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우승이라도 했을 땐 더욱 그랬다. 그래서 그는 꾀를 썼다. 영어 잘 하는 한 선수에게 영어를 한글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걸 달달 외운 이형택은 멋들어지게 영어로 소감을 밝혔다. 진짜 영어 실력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게 어딘가. 얼마나 가상한가. 프로다운 자세였다. 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은퇴를 한 이형택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아마 그 때보다는 훨씬 더 영어를 잘 할 것이다.
 
이형택의 뒤를 이은 정현이 지금 세계 테니스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올 시즌 첫 그랜드슬램대회인 호주오픈 단식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8강에 진출한 것이다. 이형택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근데 정현은 이형택보다 잘 하는 게 또 하나 있다. 영어였다. 경기가 끝난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현은 주위 사람들을 웃길 수 있을 정도의 영어를 구사했다. 이형택처럼 외운 것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그는 이형택 보다 영어를 능숙하게 했다.
 
정말 자랑스럽다. 그가 포효하는 모습이 대부분의 국내 언론 1면에 실렸다. 앞으로 그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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