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의 안타까운 참변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서울 종로구 한 여관에 불을 지른 사고로 투숙객 6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했다. 사고로 사망한 세 모녀의 가장은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급거 상경해 시신을 확인했다. 까맣게 탄 건물 앞에는 침묵과 흰 꽃만 자리했다. 앞서 방화범은 성매매를 하려다 거절당해 앙심을 품고 불을 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방화범, "성매매 여성 부르려다 거절당해 불 질러"
 

 
    
지난 23일 오후, 투숙객 10명이 머물렀던 여관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경계 근무를 서며 출입 통제를 막는 경찰관 2명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여관 입구를 어지럽게 막아놓은 경찰의 진입금지 경계선 너머로 여관 내부가 보였다. 서울 나들이 첫날밤, 전남에서 올라온 세 모녀가 몸을 뉘였을 방 안은 온통 검은재와 그을림이 메우고 있었다.

두 여관이 마주보고 있는 골목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건물 앞에 위치한 경찰은 마스크를 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골목을 지나가던 시민들은 물끄러미 여관을 올려다보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분홍빛 건물 2층, 그을린 자국에는 불길 속에서 소리쳤던 투숙객들의 외침이 묻어있는 듯 했다.

 
    
건물 입구에는 국화 꽃, 과자, 맥주, 향(香) 등이 놓여 있었다. 21일부터 시민 한 두 명이 놓고 가 노란 빛이 돌기 시작한 국화 꽃 수십 송이 위에는 색이 바래지지 않는 하얀 조화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여관 근처 골목에서 식사를 마친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화재가 난 곳이 어디냐”면서 주위를 살폈다. 외진 골목을 지나가던 시민들도 이따금 걸음을 멈춰 여관을 바라봤다.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시민 A씨는 “너무나도 안타깝다. 언론을 통해 화재 소식을 접했는데 특히 서울로 놀러왔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세 모녀 이야기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골목을 지나던 노인 B씨는 “새벽에 일어난 일이니 인근에서 일하는 사람의 대다수도 언론을 통해 화재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나도 소식을 듣고 향을 사서 올려 두었다”고 전했다.

지난 20일 오전 3시 8분경 서울 종로구의 한 여관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으로 현재까지 투숙객 6명이 숨졌다.

20일 방학을 맞아 서울 여행을 왔던 세 모녀 등 5명이 사망했으며 21일에는 중상을 입었던 50대 남성이 치료를 받다가 결국 숨졌다. 이로 인해 사망자가 6명으로 늘었다. 4명의 부상자 가운데 C씨와 D씨도 화상을 크게 입어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화재로 희생당한 E씨의 남편이자 딸 F양, G양의 아버지인 30대 후반 H씨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하고 21일 거주하던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서울로 급히 올라왔다.

H씨는 이날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이곳에 안치된 부인 E씨의 시신을 확인했다. 이어 사건 수사를 맡은 혜화경찰서를 찾아 조사를 받았다.

H씨는 참담한 표정으로 최대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H씨는 경찰 조사에서 세 모녀가 어떻게 서울까지 올라와 하필 그 여관에 묵게 됐는지 경위를 설명했다. 장흥에서 함께 사는 10대 두 딸이 각각 중학교, 초등학교 방학을 맞자 어머니 E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게 됐다는 것.

세 모녀는 지난 15일부터 전국 각지를 다니다 여행 5일차인 19일 서울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들은 넉넉지 못한 여비 탓에 저렴한 숙소를 알아보던 중 이 여관을 발견하고 1층 105호에 투숙하게 됐다.

 
       
세 모녀는 출입구 인근 1층에 있었으나 한창 깊이 잠들었을 새벽 시간이고 불길과 유독 가스가 삽시간에 들이닥쳐 피할 새도 없이 참변을 당한 것으로 관측된다.

객실은 창고 등을 합해 총 10개로, 한 방이 6.6~10㎡(2~3평) 정도 크기에 불과하다. 이 건물은 지은지 50년이 넘는다. 객실 투숙비는 하루 5만 원대. 월 45만 원(1박당 1만5000원)이면 장기 투숙이 가능한 곳이다. 각 객실에는 작은 침상과 욕실이 달려있다. 인근 주민들은 “저렴한 쪽방”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찰 조사 결과 방화범은 여관업주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홧김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건물이 타고 있다”는 업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내가 불을 질렀다”고 112에 직접 신고한 방화범을 여관 인근에서 체포했다.

앞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유 씨에게 “성매매와 업무 방해 혐의로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한 뒤 여관 밖으로 걸어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사건을 종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방화범은 이후 택시를 타고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산 뒤 오전 3시 8분경 여관 1층 복도에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렀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인명 피해가 컸던 이유에 대해 건물의 노후화를 지목했다. 경찰 관계자는 “휘발유에 불을 붙이며 유증기가 번져 불이 순식간에 퍼진다. 늦은 시간 손님들이 자고 있던 데다 건물 자체가 오래됐으며 통로가 좁았던 이유도 피해를 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화범이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화재 사고 전 여관업주는 방화범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나 인근 주민들은 “이 여관은 여관바리를 부르는 곳으로 소문나 있다”고 말했다. 이 여관 건너편에 위치한 A여관 관계자는 “나는 잘 모르는 내용”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 여관 측은 한 매체를 통해 “성매매로 돈을 번 적 없다”며 부인했다. 그러나 인근 호스텔 관계자는 “근처 일용직 노동자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여관에서 여관바리를 자주 했다. 아주 예전부터 시작됐고, 최근에서 성업 중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들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장여관 성매매 경험담 <온라인 캡처>

온라인을 통해 알아보니 이 여관에서 4만 원에 여관바리를 했다는 경험담이 수두룩했다. 글을 게시한 한 남성은 주소까지 상세히 적어 놓았다.

한편 지난 2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망자 6명에 대한 부검 결과 모두 화재로 인해 사망했다는 1차 소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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