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자유한국당이 떠나간 연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당 지도부가 ‘홍정욱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것. 홍 회장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이 계속해서 출마 요청을 한다면 재고할 여지가 있다는 게 지도부의 분석이다. 한국당은 홍 회장의 ‘불출마 선언’이 지도부와 사전 교감 없이 이뤄졌고, 당시 홍 회장이 서울 시장 출마에 긍정적이었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은 기대를 키우고 있다. 즉 출마를 고심 중이던 홍 회장이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와 과도한 관심으로 피로를 느낀 나머지 충동적으로 ‘불출마 선언’을 했을 뿐 얼마든지 입장을 번복할 수 있다는 것이 한국당의 판단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60% 이하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이 홍 회장의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홍정욱-김병준-나경원 3파전 구도로 경선 흥행몰이는 물론이고 보수 정당의 절체절명 과제인 ‘서울 탈환’이 꿈만은 아니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 “금명간 새로운 인물들 자천타천 하마평 오를 것”
- 文 떠나 ‘표류’하는 20·30 지지층, 홍정욱으로 ‘이삭 줍기’?

 
지난해 12월 28일 한국당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홍준표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로 공을 들이던 홍정욱 헤럴드 회장이 돌연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홍 회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제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한 언론 보도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셔서 제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국민과 국가를 섬기는 공직은 가장 영예로운 봉사”라면서도 “그러나 공직의 직분을 다하기에 제 역량과 지혜는 여전히 모자라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따라서 당장의 부름에 꾸밈으로 응하기보다는 지금의 제 자리에서 세상을 밝히고 바꾸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地選 ‘군불’ 때던 한국당,
“원오브뎀일 뿐” 위로했지만
 

홍 회장의 ‘불출마 선언’이 있자 한국당은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당시 홍 대표는 당 장악에 성공했고 ‘성완종 리스트’ 꼬리표까지 완전히 떼어내면서 지방선거에 본격적인 ‘군불’을 때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안대희 전 대법관과 장제국 총장에 이어 홍 회장까지 홍 대표의 ‘군불’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홍 회장의 ‘불출마 선언’ 직후 홍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는 홍 회장 외에도 많이 있다”며 홍 회장이 ‘원오브뎀(one of them)’이었을 뿐이라고 애써 위로 섞인 말을 내뱉었지만 정작 당 지도부는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물론 홍 대표의 말 대로 한국당에 홍정욱 카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김병준 국민대 교수와 나경원 의원 등이 한국당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지난 17일, 한국당 혁신위원회 주최 심포지엄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싶은 생각이 많다”고 사실상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정치 현장에 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광역지자체장과 같이) 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고 무엇을 말하기 위해 정말 마이크를 잡고 싶은 생각이 많다”며 “당내에서 개혁적인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우리 같은 사람이 들어가서 달라질 것 같은 게 있으면 이쪽이든 저쪽 당이든 무대가 열릴 때 그 (정치) 무대에 못 올라갈 게 뭐 있냐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나경원 의원 역시 최근 대여·대정부 공세에 고삐를 당기며 서울시장 출마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나 의원은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 이행에 사로잡혀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둔갑시키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는 IOC 헌장에 분명히 명시된 올림픽의 ‘정치 중립성’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라며 “이러한 우려를 담아 IOC 및 IPC 지도부에 서한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교수와 나 의원만으로는 ‘민주당 경선이 곧 본선’이라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국당의 승리 가능성은 희박한 게 사실이다. 당장 서울시장 선거 자유한국당 후보 적합도면에서 김 교수는 황교안 전 총리에도 뒤진다.
 
월간중앙이 여론조사기관 타임리서치와 공동으로 6·13 지방선거와 관련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황교안 전 총리는 30.9%, 김병준 교수는 6.0%로 집계됐고 63.0%는 의견을 유보했다 (기타 인물 6.2%, 없음 47.9%, 모름 8.9%). 

황교안이라는 응답은 모든 응답자 특성에서 김병준보다 높았고, 특히 50대 이상에서는 40% 이상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50대 46.0%, 60세 이상 40.7%). 현재 자유한국당 지지층에서는 황교안 82.3%, 김병준 3.8%로 나타났고 무당층에서는 황교안 46.7%, 김병준 4.5%로 조사됐다. 
 
위 조사는 1월 14일 서울시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이용한 유선(50%)·무선(50%) 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2.0%이고 표본추출은 성·연령·지역별 인구 비례 할당으로 추출했다. 표본오차는 95%의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다. 그 밖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나 의원이 처한 상황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나 의원은 최근 자신이 IOC에 보낸 서한으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나경원 의원 평창올림픽 위원직을 파면시켜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에 25만 6796명이 찬성했다.
 
“엉겁결에 나온 선언일 뿐,
당이 요청한다면 재고할 것”

 
상황이 이쯤 되자 당 내에선 이미 죽은 카드로 여겨졌던 ‘홍정욱 카드’에 대한 미련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당 지도부가 홍정욱-김병준-나경원 ‘3파전 구도’로 서울시장 경선 흥행몰이를 준비 중이라는 전언이다.
 
한국당이 이처럼 홍 회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당 지도부는 지난 12월 홍 회장이 불출마를 선언하기 전까지 홍 회장이 서울시장 출마에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는 데 기대를 건다.
 
나아가 홍 회장의 ‘불출마 선언’이 중앙당과 사전 조율 없이 충동적으로 이뤄진 점도 한국당의 기대를 키우고 있다. 홍 회장이 언론의 지나친 관심에 피로감을 느꼈고 이에 ‘충동적’으로 불출마 선언을 했을 뿐 재고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당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홍정욱 카드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렇지만 죽은 카드는 아니다. 주춤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라는 게 입장 번복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회장이 당시 정말 하기 싫어서 불출마 선언을 한 게 아니다. 하고는 싶었지만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이 너무 급격하게 찔러버리니, 엉겁결에 유보적 발언이 아닌 단정적 발언이 나온 것일 뿐”이라며 “홍 회장 외에도 내주부터는 그동안 언급이 없었던 후보들이 자천타천으로 하마평에 오를 것이다”고 말했다.
 
文 콘크리트 지지층 붕괴,
20·30 표심 홍정욱이라면?

 
만약 당 지도부의 기대대로 ‘홍정욱 카드’가 되살아난다면 서울시장 선거 판세에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집권 이후 처음으로 60%대 밑으로 떨어진 현 상황을 한국당이 잘 살리기만 한다면 ‘여권의 경선이 곧 본선’이라는 서울시장 선거 판세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터넷 매체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실시한 1월 넷째 주 정례조사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56.7%로 전주 대비 6.2%포인트 하락했다.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3일 조사와 비교하면 14.1%포인트 떨어졌다. 부정 평가는 전주보다 7.1%포인트 오른 37.6%를 기록했다. “매우 잘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8.3%로 조사 이래 최초로 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41%)보다 낮았다.
 
연령별로 보면 20·30대의 지지율 이탈이 두드러진다. 20대의 경우 지난주 긍정평가 63.4%에서 54.2%로 떨어졌다. 30대는 전주 (68.9%) 대비 11.1%포인트 하락한 57.8%였다. 반대로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정평가를 한 20대는 30.6% 41%로, 30대는 28.9%에서 34.6%로 각각 증가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23일 하루 동안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100%) 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체 응답률은 3.8%, 표본오차는 95%의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다.
 
이처럼 20·30 지지층의 민주당 이탈현상은 한국당이 홍정욱 회장에 대한 미련을 더욱 버리지 못하는 요인으로 관측된다. 한국당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참패 이후 보수 진영에는 세대교체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됐다. 이후 한국당은 혁신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펙’과 ‘스토리’를 겸비한 홍 회장의 ‘스타성’은 20~40세대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최적의 무기로 평가돼 왔다. 홍 회장의 아버지는 배우 남궁원 씨(본명 홍경일)다. 배우의 아들답게 홍 회장의 외모 또한 수려하다. 여기에 하버드대학교 학부와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엘리트다. 홍 회장은 연예인 못지않게 여성 팬층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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