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안희정 충남지사가 ‘2인자의 설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치열한 당내 경선을 거쳐 2위에 올라 명실상부한 여당 내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경선과정에서 문 대통령과 지지자들과 충돌하면서 현재 권력과 주류 진영으로부터 노골적인 견제와 공세를 받아야만 했다. 급기야 안 지사는 올해 8월에 치러질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 대신 ‘재충전 시간을 갖겠다’며 당분간 정치적 휴식기를 갖고 싶다는 뜻을 복수의 측근들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3선 도지사에 국회의원 재보선 출마까지 접은 상황에서 당초 유력하게 거론됐던 당권 도전을 사실상 포기하는 발언으로 파장이 클 전망이다. 안 지사의 복잡한 심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 安 측근, “공부(工夫)하고 싶다” 토로, 유학도 ‘검토’
- ‘2인자의 설움’ 정치적 재충전, 여권 일각 ‘입각설’도


최근 안희정 충남도시자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지난 1월23일에는 충남도의회 임시회 본 회의장에서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안 지사는 스위스 다보스 포럼 참석차 20일 출국해 부재한 상황에서 홍성현 자유한국당 도의원은 “새해 첫 회기에 도지사가 해외 출장을 간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며 “도의회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공격했다. 평소 안 지사답지 않은 처신이라는 게 지역 정가의 시각이다.
 
안 지사는 지난해 12월 18일 도지사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또한 6월 지방 선거와 함께 열리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출마도 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여권에서는 안 지사의 차기 행보로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 도전에 나서는 방안이 유력할 것으로 전망했다. 차기 대선을 준비하려면 당권 장악이 필수고 강력한 조직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20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쥐게 될 뿐만 아니라 대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도 있다.
 
최측근, “안지사 공부하고 싶다는 말 자주해”
 
하지만 최근 안 지사는 출국 전 측근들을 통해 ‘쉬고 싶다’며 당권 도전도 하지 않을 뜻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측근들은 본지와 최근 통화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말했다”며 “재충전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게 안 지사의 생각인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측근은 “유학을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쉬고 싶다는 말은 들었다”며 “국내에 있는다면 당권 도전 대신 입각을 기대해 볼 만도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면 유학을 가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전했다.
 
이미 안 지사는 12월20일 도청 출입기자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장에서도 이 같은 뜻을 밝혔다. 안 지사는 “도지사 업무 8년이 결코 쉽지 않았다”며 “임기 초반 2년 동안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이어 그는 “8년간의 도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개인적으로는 충전이나 공부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안 지사는 구체적인 행보를 밝히진 않았지만 측근들은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던 “상황이 복잡할 때는 원칙대로 가야 한다”는 소신을 감안할 때 당권 도전에도 나서지 않을 공산이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안 지사가 일정 기간 정치적 휴지기를 갖고 차기 총선 즈음 당의 요청에 따라 정치 행보를 재개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단 안 지사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상황은 그가 당내 ‘2인자’라는 점이 한몫하고 있다. 안 지사는 지난해 치러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맞서 2위를 차지해 여당 내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그런 안 지사가 문 대통령이 임기 1년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당 대표에 오른다면 정권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정권 초기부터 대선 정국이 조기 과열되는 것에 대해 문 대통령과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다. 안 지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현 주류 진영과 집권 초부터 정면 대결을 통해 당권을 거머쥐는 것도 부담이지만 자칫 당 대표에 오르지 못할 경우 지난 대선 경선에 이어 당 대표 선거까지 패배는 차기 대권 가도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는 “청와대가 안희정을 팽시켰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횡행하고 있다. 주류와 안 지사간 감정의 골이 그만큼 악화된 게 아니냐는 게 정치권 내 시각이다. 안 지사와 문 대통령 지지자들 간 갈등은 지난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그대로 노출됐다.
 
1위를 달리던 문 대통령과 그 뒤를 바짝 쫓던 안 지사는 ‘대연정’과 ‘선의발언’으로 정면충돌 했고 급기야 안 지사는 “질렸다”는 말로 사실상 두 후보 간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안 지사는 지난 해 2월2일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이루지 못한 대연정을 실현해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겠다”며 ‘대연정 논란’에 불을 지폈다. 당시 안 지사는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과반에 턱없이 부족한 집권당이 된다. 이 상태에서 현 헌법정신으로 국무회의를 구성하려면 원내 과반을 점하는 다수파가 형성돼야 한다”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도 수용하는 대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여당인 새누리당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 안 지사의 발언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다음 날인 3일 “새누리당, 바른정당과의 대연정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헌정유린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국민에게 속죄하는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과 연정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못박았다.
 
대연정 논란이 수그러들기도 전 안 지사의 ‘선의의 발언’으로 재차 공방을 벌였다. 안 지사는 2월19일 부산대학교 강연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K스포츠, 미르 재단도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사회적인 대기업의 많은 좋은 후원금을 받아 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安 ‘일거수일투족’
성에 안 차는 문 지지자

 
발언이 알려지자, 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국정농단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문 대통령은 “안희정 지사가 선의로 한 말이라고 믿는다. 다만 안 지사의 말에 분노가 담겨 있지 않다”고 각을 세웠다. 이어 문 대통령은 “분노는 정의의 출발이고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고 정당한 분노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연정’, ‘선의 발언’으로 크게 충돌한 두 인사는 이후에도 곳곳에서 정체성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급기야 3월22일 안 지사가 직격탄을 날렸다. 새벽 페이스북을 통해 안 지사는 ‘문재인 후보와 문 후보 진영의 비뚫어진 태도에 대해 -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냉정하다’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내용인즉, “문재인 후보와 문재인 캠프의 이런 태도가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하고 정 떨어지게 하는지 아는가. 사람들을 질리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성공해왔다. 그런 태도로는 집권 세력이 될 수 없고, 정권교체도, 성공적인 국정운영도 불가능하다”고 적어 문 대통령과 지지자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전날인 21일에는 문 대통령에 대해 “국가적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경선 때부터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며 “서로간에 싫은 소리를 원수처럼 해놓고 나중에 힘을 모으자고 하면 제대로 모아지겠나”라고 문 대통령 세력과 화학적 결합이 가능하겠냐는 문제 제기도 했다. 특히나 당시 야당 내 금기시된 표현인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미워하면서 닮아버린 것”이라고 사실상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었다.
 
안 지사와 문 대통령 지지자들과의 ‘앙금’은 새 정부가 들어선 지 6개월 지난 후에도 터졌다. 안 지사는 지난해 연말 성북구청 특강을 통해 문 지지자들의 ‘묻지마식 지지’에 대해 쓴소리를 보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에 안 지사는 “문재인 정부에 할 말이 있으면 집에 가서 문 걸어 잠그고 하겠다”고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가 비판과 비난이 수그러들지 않자 “애정으로 생각하고 비판을 달게 받겠다”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에 공감한다’는 안 지사의 표현 수위를 놓고 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안 지사는 1월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고 적으면서 “우리 모두는 그 누구도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대한민국이고 촛불정신”이라고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 지지자들은 댓글을 통해 “워딩이 약한 걸 보니 분노가 치밀지 않나보다”, “선의를 얘기할 때처럼 공허함이 느껴진다”, “밥을 먹어서 배가 부르다는 수준의 논평”이라고 ‘진정성’이 없는 발언이라고 냉소적인 평가를 내렸다. 특히 한 네티즌은 “살인자들도 용서할 것 같은 성자의 포지셔닝 말고 진정으로 안희정을 보여달라”고 지적했다.
 
안 지사의 일거수일투족이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는 곱지 않게 보이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 지사가 당권 도전에 나서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다수인 민주당 당원 및 지지자들에게 선택을 받기는 요원한 게 현실이다. 당내 분위기도 냉랭하다. 안희정계로 부를 수 있는 당내 인사도 김종민·조승래·박완주·강훈식 의원 정도다.
 
민주당 ‘친노’, ‘비문’
실종, ‘친문’ 득세

 
게다가 당내 대표적인 비문 인사인 박영선 의원도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면서 “나는 친문이다”고 주장할 정도로 ‘비문’이 사라진 상황이다. 여권 한 인사는 “지방선거 단체장에 도전하는 비주류 인사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친문’을 내세우는 이유는 분명하다”며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친문재인 지지자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당내 ‘친노’와 ‘비문’이 사라진 대신 ‘친문’만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안 지사가 당권 도전 뜻을 선뜻 밝히지 못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인사는 “안 지사가 한 템포 쉬고 정치권에 들어오는 게 향후 대권 가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금 같은 분위기에 당 대표에 오른다는 보장도 없다”고 충고했다. 안 지사의 최종 결심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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