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참사 이후 한 달도 안 돼 또 화재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26일 오전에 일어난 경남 밀양세종병원 화재는 제천 화재 참사에 이은 반복된 인재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35분께 세종병원 1층 응급실에서 화재가 최초에 발생한 이후 사망자와 부상자까지 급속히 늘어나 오후에는 170명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달 21일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 화재 이후 한 달여 만에 발생한 대형화재 참사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조사 후 발표되겠지만 병원 내 스프링클러 미설치, 유독가스 미배출 등 허술한 법체계가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점에서 제천 참사 때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대형 참사 악순환 반복 ‘왜?’
재난대응시스템 ‘수술’과 함께 훈련‧교육‧투자 필요


밀양세종병원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26일 브리핑에서 “해당 병원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세종병원을 운영 중인 효성의료재단도 “(의료법상)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면적이 안 된다”고 해명했다.

환자 100명 이상이 입원하고 5층짜리로 지어진 의료시설임에도 스프링클러 미설치 등 화재 예방과 초기 진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거 화재 이후 달라진 게 없었다.

29명의 목숨이 희생된 제천 참사 당시 건물 내 356개의 스프링클러가 모두 작동되지 않아 피해를 키운 것처럼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이번의 경우에도 스프링클러 미설치가 피해자를 다수 발생시킨 원인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높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법‧의식 다 바꿔야
 

현행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법 시행령에서 근린생활시설(세종병원은 건축법상 1종 근린시설)은 연면적 5000㎡ 이상이거나 수용인원이 500명 이상일 때 의무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지만 세종병원은 연면적이 1489㎡로 이 기준에 미달한다. 수용인원도 시행령에 명시된 산정방법을 적용하면 496명(연면적/3㎡)으로 기준을 벗어난다.

특히 지난 2014년 7월 장성 전남요양병원 화재 이후 요양병원 내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그전에 지어진 병원은 올 6월 30일까지 갖추면 된다.

이와 관련 소방당국은 병원의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여부와 별도로 화재 발생 직후 경보음이 울렸는지 등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 제천 참사와 동일한 유형의 대형화재가 되풀이되면서 정부와 소방당국의 안전시스템과 행정 미숙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도 못한다는 비난 여론이 나오고 있다.

제천 참사 이후 드러난 수많은 불법과 무관심에 대해 정부와 각계각층에서 화재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수박 겉 핥기식 소방안전점검과 불법주차로 인한 소방차 진입 불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안전불감증 등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쉽게 끊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대형화재가 발생할 때 마다 법이 정해지는데 법이 소급이 안 된다”면서 “병원과 목욕탕, 노래방 등 다중이용시설에 대해서는 정부가 소방시설 설치 관련 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와우아파트 붕괴부터
씨랜드‧세월호까지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대형 참사는 오래 전부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1970년 서울 청천동 와우아파트 붕괴사고(사망 33명·부상 40명)는 무면허 건설업자의 부실공사가 원인이었고 1972년 서울시민회관 화재사고(사망 51명, 부상 76명)는 무대 조명장치의 전기과열로 인한 합선이 화재의 시발점이었다.

1977년 이리(익산)역 폭발사고(사망 59명, 부상 130명)는 촛불이 고성능 폭발물을 실은 화약상자에 옮겨붙어 발생했다.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사망 292명)는 정원을 초과한 승객을 태운 사실이 드러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사망 32명·부상 17명)는 부실공법과 안전관리 소홀이 밝혀졌다.

1995년 대구 지하철 도시가스 폭발사고(사망 101명·부상 202명)는 공사장 작업 중 발생했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사망 501명·부상 937명)는 설계도면 변경 등 안전불감증이 원인이었다.

1999년 씨랜드 화재사고(사망 23명),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사망 40명·부상 9명)도 불법 구조(용도) 변경 등이 많은 사상자를 낸 원인이었다.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사망 304명)는 화물 과적, 선박 증축 및 내부 구조변경 등이 유력한 사고 원인으로 대두된 가운데 선장·선원의 무책임과 해경의 초동조치 미흡, 정부의 재난대응 능력 부재 등이 맞물린 대형 인재로 기록됐다.

같은 해 경기 고양터미널 화재사고는 사망자 9명과 부상자 60명을 냈다. 용접 도중 튄 불꽃이 원인으로 꼽혀 공사장 안전관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촉발한 사고였다.
대부분의 대형 참사는 허술한 제도나 법의 사각지대에서 정부의 무능과 밑바닥 수준의 안전불감증이 맞물리면서 반복되곤 했다.

정부는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대대적인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하며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내놓고 늘 재발방지 약속을 반복했지만 ‘땜질식 처방’에 불과했다. 불만이 들끓을 때면 책임자를 문책하고 엄벌하는 것으로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는 국면 전환에 급급했다.

부랴부랴 규제를 신설하고 새로운 기구를 만들기도 했지만 이런 미봉책은 시간이 지나면 되살아나는 안전불감증을 막진 못했다.

전문가들은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문제점이 드러나는 재난대응시스템을 ‘수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훈련이나 교육, 투자 등을 통해 여전히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영주 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형 화재가 일어나는 사이에서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공통적으로 중소 규모 건축물은 화재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안전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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