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정치권이 ‘충북 제천 화재 예방법’을 제출한 것에 대해 ‘뒷북 행정’만 되풀이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가운데 앞으로 선제적인 대응을 내놓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지난달 31일 다중이용업소 화재 참사 예방을 위한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과 ‘도로교통법’, ‘건축법’ 등 3건의 법률안을 개정한 ‘충북 제천 화재 예방법’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현행 건축법은 목욕탕이나 병원과 같은 다중이용업소의 건축물 외벽에 사용하는 마감재료를 화재방지에 영향이 없는 재료로 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의 경우엔 적용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송 의원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 건축물을 방화 기능을 갖춘 마감 재료로 교체하는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비용을 일부를 보조하거나 융자할 수 있게 했다.
 
이밖에 특정소방대상물의 높이가 31m 이하일 경우 승강장에 제연설비 의무화, 소방관련시설 주변 구역에 불법주차를 할 경우 과태료를 기존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상향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고 뒤늦게 안전 점검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들의 ‘뒷북’ 행정을 지적한다.
 
국회는 충북 제천에 이어 경남 밀양에서도 대형 화재가 발생하며 여론이 악화되자 14개월 동안 상임위에 계류시켰던 소방 관련 법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정부는 국가안전대진단 등을 통해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점검’을 하고 ‘대책’을 마련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잊어버리고 점검은 점검에, 대책은 대책에 그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대형 참사가 벌어진 뒤 ‘뒤쫓기’식 대책을 비판했다.
 
실제 최근 연이어 발생한 대형 화재 참사 이면에는 불법 증축, 안전 규정, 소화 시설 등 미비하고 보완해야 할 허점들이 다수 발견됐다.
 
대형 화재 참사가 벌어진 밀양 세종병원과 제천 스포츠센터는 복잡한 내부구조가 닮았다.
 
<뉴시스>

제천 스포츠센터는 8, 9층 테라스를 무단 증축하면서 건물 내부가 복잡해져 연기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종병원도 일반병원 5곳, 요양병원 3곳, 부속동 2곳, 장례식장 2곳 등 모두 12곳을 불법 증축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샀다.
 
불법 증축 규모는 284.53㎡로 병원 연면적(1489㎡)의 20%에 가깝다.
 
이에 전문가들은 건물 내부가 이처럼 복잡해지면 합선, 누전 등이 발생할 소지가 크고 화재 발생 시 연기가 빠져나가기 어려워 탈출과 구조에도 시간이 걸린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일명 ‘셀프 점검’으로 불리는 자체 소방점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스프링클러 등이 설치된 연면적 5000㎡ 이상의 건물은 현행법상 전문 업체에 의뢰해 종합정밀점검을 받아야 하지만 제천 스포츠센터와 세종요양병원과 같은 그 미만의 규모 건물은 소방안전관리자 자격만 있으면 누구나 검사할 수 있다.
 
제천 스포츠센터의 경우 건물주의 아들은 2016년 8월 ‘셀프 소방점검’을 통해 소화기 충전 필요, 비상 조명등 교체 등 경미한 사안을 적어 제출했다.
 
하지만 건물 매각 후인 지난해 11월 민간업체가 이 건물을 점검했을 때는 화재 감지기 이상, 스프링클러 고장, 방화셔터 작동 불량, 완강기 부족 등 29개 항목, 66곳의 문제점이 지적돼 느슨한 안전점검의 실태가 드러났다.
 
또 밀양 세종병원은 최근 3년간 총무과장이 소방안전관리자로 세 차례 안전점검을 해 “문제가 없다”는 결과표를 소방서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점검 결과 이상이 있을 때만 소방서에서 시정을 요구하고 그 조치를 재점검할 뿐, 세종병원처럼 ‘이상 없음’ 결과를 소방당국에 제출하면 별다른 외부 점검을 받지 않는다.
 
이에 소방당국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절반을 웃도는 건물주가 셀프 점검을 하고 있는데도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므로 제출한 서류를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비상용 소화시설 미비에 대한 심각성도 부각됐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의 최초 발화지점인 지하 1층 주차장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건물 내부에 달린 스프링클러는 고장 나 작동되지 않았다.
 
밀양 세종병원에는 스프링클러와 옥내소화전 모두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불법은 아니다.
 
현행법상 일반 병원은 ‘11층 이상’ 또는 ‘4층 이상, 한 층의 바닥 면적이 1000㎡ 이상’이어야만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고 의료시설 중 요양병원만 규모와 관계없이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돼 있기 때문이다.
 
밀양 세종병원은 바닥 면적이 층별로 213~355㎡였다.
 
이 때문에 일반병원은 여전히 스프링클러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화재 참사 현장에는 이 같은 허점들이 드러난 가운데 비상구 출입 통로를 창고로 사용하도록 묵인한 소방 당국의 묵인과 방심에 대한 비난도 이어진다.
 
지난달 2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홍철호(자유한국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스포츠센터 건물 도면에 따르면 소방당국은 2010년 8월 사전 건축허가 과정에서 2층 여성 비상구의 출입 통로 앞을 창고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건축허가서를 승인했다.
 
또 홍 의원은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규칙’에 따라 120cm 이상 확보됐어야 할 비상구 내부 피난통로 폭은 잡동사니 등에 가로막혀 50cm에 불과했다고 밝혀 허가 과정뿐만 아니라 추후 점검까지 부실하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한 매체를 통해 “소방당국에서 비상구의 출입통로 앞을 창고로 사용하도록 건축허가에 동의했다면 문제”라며 “비상구 출입통로가 선반들로 막혀 있던 것은 이번 화재에서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던 주요한 원인이었는데 건축 시에 소방당국의 허가 사항이었고 이미 도면에 비상구가 창고로 사용될 것이 드러나 있었음에도 지적조차 되지 않았다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총체적인 부실이 방치된 끝에 대형 참사가 발생한 만큼 정부는 제2, 제3의 밀양 세종병원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엔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진완 전 창원소방본부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밀양 세종병원 화재만 보더라도 시설의 종류가 다르고 업종이나 규모도 다 다르다. 참사가 나면 드러나는 법의 허점을 고치거나 점검하는 데 늘 바쁜 현실이다. 참사가 되풀이될 수 있는 위험이 얼마나 더 있는지 살펴보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TF를 구성해 취약시설 등을 전수조사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응급처방밖에 안 된다. 지금은 TF가 어떻게 하면 소방시스템을 뜯어고칠 수 있을지 답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고 말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건과 관련 청와대에 화재 안전대책 특별 태스크포스(TF)팀 구성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청와대에 화재 안전대책 특별 티에프를 구성하는 것을 논의해달라”고 지시하며 “티에프에 정부 관련 부처, 안전공사 등 공공기관, 광역·기초자치단체,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다중 이용 화재 취약 시설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점검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기 바란다”고 말해 안전대책 부실과 심각한 안전 불감증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