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 기자] 좌파 혁명단체 소속의 정치범 ‘발렌틴’과 성 소수자 ‘몰리나’의 관계를 그린 <거미여인의 키스>는 연극이 대화의 예술임을 보인다. 대화가 연극의 시작임을 보인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교도소 감방을 배경으로 하며 무대전환 없이 진행된다. 정적이고 폐쇄된 공간에서 발렌틴과 몰리나는 서로 집중하고 사려 깊은 대화와 논쟁을 한다. 상대를 향한 진심 어린 반대는 그 밑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런 특징은 또 다른 2인극 ‘레드’와 ‘비너스 인 퍼’를 연상하게 한다. 발렌틴과 몰리나는 부정하고 부정하는 대화를 기반으로 서로의 진심을 알아간다.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는 ‘표범 여인’이 등장하는 영화 이야기가 오랫동안 이어진다. 몰리나가 말하고 발렌틴이 듣는 표범 여인 이야기는 세밀한 묘사와 설명이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실체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데 그건 두 사람의 평소 주장이 이야기 틈으로 너무 자주 끼어드는 것 외에 몰리나가 이야기에 너무 큰 애정을 품어 곁가지가 늘어나거나 발렌틴이 이야기에 너무 의지하거나, 자신들의 처지와 비교하기 때문이다. 표범 여인 이야기를 낭송하는 동안 파악할 수 있는 건 몰리나의 추억에 젖은 시선과 목소리뿐이다.

영화를 향한 몰리나의 기억은 관객에게 어떤 시절의 영화를 떠올리게 할 수 있다. 그 영화는 영화이기도 하고 시절이기도 해서 몰리나처럼 기억은 자유롭게 확장될 수 있다. 몰리나의 영화 풍경은 발렌틴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현실과 맞물려 혼란과 서정적인 긴장감을 유발한다. 혼란의 서정성은 관객의 기억을 되살리고 아무것도 없는 감방에서 환상이자 현실이 된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뛰어난 전개와 이를 감당하는 뛰어난 연기로 무대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대사와 연기의 영향력으로 무대 세트와 배경의 역할을 넓힌다. 배경을 압도하는 발렌틴과 몰리나의 관계는 오히려 그 관계의 지속적 강렬함으로 무대의 필연성을 다른 단계로 데려간다. 푸르스름한 조명과 무채색의 벽과 두껍고 거대한 철문과 철제 침대와 칙칙한 모포와 죄수복은 존재감이 큰 배우 옆에서 함께 존재감을 발휘한다.
발렌틴과 몰리나는 부정의 형식으로 대화한다.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하나 부르주아적 태생과 본능을 괴로워하는 발렌틴과 쾌락주의에 가까우며 이념의 대립은 관심이 없는 몰리나는 상대를 향한 부정으로 자신을 솔직히 드러낸다. 진심의 부정은 결국 상대를 향한 괴리와 의심을 걷어낸다. 헌신 그리고 죄의식을 동반한 몰리나의 말과 행동은 극심한 통증으로 침대 위에서 배변한(수치를 당한) 발렌틴을 버티게 한다. 관계의 발전을 마주한 관객은 작품의 흐름에 새롭게 몰입한다.

그러나 <거미여인의 키스>는 소통의 아름다움과 그 바깥 세계의 잔인함을 동시에 표현한다. 몰리나를 향한 고마움으로 속마음을 고백한 발렌틴의 바깥에는, 발렌틴이 몸담은 혁명조직을 없애기 위해 몰리나와 결탁한 교도소장이 존재한다. 거짓을 말하는 몰리나에게 진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발렌틴의 상황은 신념과 이성과 인내를 가진 인간(발렌틴)이 현실에 패배하고 마는 역사적 단편을 함축한다. 지배자로부터 강제로 권력을 받은 인간(몰리나) 역시 상대 혹은 자신을 파괴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어떤 인간은 스스로 희생을 택한다. ‘내가 역겹지 않다면’ 너의 몸을 만지고 싶으며 키스하고 싶다는 발렌틴을 향한 몰리나의 고백은 어떤 방식으로든 약자가 되는 이들의 습관적 또는 운명적 자기혐오와 같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몰리나의 고백을 들어 소외당하고 불행한 이들이 왜 연극에 등장하는지, 왜 가장 보편적인 알레고리인지 설명한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연극 자체의 아름다움과 이를 수용하는 개인의 한계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 어떤 이유로든 관객을 흔드는 작품은 마치 몰리나의 표범 여인 기억이 다른 모든 갈래로 뻗어 나가는 것처럼 관객의 기억을 되살린다. <거미여인의 키스>가 담고 있는 모든 장면에 자신의 경험과 평소 구체화 시키지 못했던 잔상을 투영한다. 연극의 힘으로 이중적 몰입이 시작된다. 무대 위 흐름과 머릿속 흐름의 분리는 본래 연극을 온전히 따라가지 못한다는 조급함을 주지만, 이중적 몰입으로 인한 정체는 작품을 향한 감탄이 기반이므로 관객은 불행하기보다는 어떤 긴장과 만족을 느낀다. 모두 함께 관극하는 공간에서 홀로 생각하고 간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추가된다.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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