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건 중 핵심으로 꼽혔던 삼성 뇌물 사건의 피고인들이 항소심에서 모두 감형돼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5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이날 열린 이 전 부회장 등의 뇌물공여 등 혐의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주요 혐의인 뇌물공여가 대부분 무죄로 인정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재판부는 뇌물공여 혐의 중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영재센터),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행위를 모두 무죄로 봤다. 재단 지원은 1심에서도 무죄였지만 영재센터 부분은 전부 유죄에서 무죄로 돌아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거나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부회장 사이에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을 매개로 승마, 영재센터, 재단 지원을 한다는 묵시적인 인식과 양 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부정한 청탁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재센터 및 각 재단 지원 행위를 뇌물공여죄로 기소한 공소사실 역시 무력화된 것이다.
 
정유라(22)씨에 대한 승마지원도 일부 유죄가 인정됐지만 1심과는 달랐다.
 
1심에서는 선수단 차량 및 마필 수송차량 구입대금 등을 제외한 공여금액 72억9427만원 유죄가 인정됐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용역대금 36억3484만원과 가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마필과 차량들의 무상 사용 이익만 승마 지원 관련 뇌물로 봤다.
 
이 전 부회장 등의 이 같은 '뇌물공여' 혐의들은 곧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라는 점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뇌물을 준 행위로 기소된 공소사실이 무죄가 나왔기 때문에 그것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긴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정씨 승마, 영재센터,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은 박 전 대통령의 삼성그룹 관련 뇌물수수 혐의의 주요 줄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의 책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단언할 수는 없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정치권력의 요구형 뇌물’로 정의했다.
 
재판부는 “이른바 ‘요구형 뇌물’ 사건의 경우는 뇌물을 준 사람보다 (뇌물을 받은) 공무원에 대한 비난이 상대적으로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이 부회장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적시했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해서 박 전 대통령의 책임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일종의 '장치'를 마련해 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박 전 대통령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가 이번 이 부회장 선고 내용과 별개의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사건에 대한 판단과 판결은 해당 재판부의 몫이고, 상급심 법원의 판결이라고 해서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이 부회장 항소심 판결문은 박 전 대통령 사건 재판부에 ‘증거 자료’가 되지만, 따라야 하는 ‘지침’은 아니다. 이번 재판부에서 인정하지 않은 ‘포괄적 현안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목표로 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도 있고, 뇌물 액수를 달리 평가할 수도 있다.
 
결국 박 전 대통령 재판부인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가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가 관건으로 남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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