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LG전자가 2월부터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기업문화 정착을 위해 ‘주 52시간 근무제’ 시범운영을 결정한 가운데 최근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 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LG전자 관계자는 최근 한 매체를 통해 “2월부터 TV 등을 생산하는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본부의 일부 조직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무에 대한 시범운영을 시작했다”며 “다음 달부터 시범운영 대상 조직을 점차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HE사업본부 임직원들이 지난 1일부터 시범 근무로 오후 5시 30분에 퇴근했고 시범운영 대상 부서는 직급과 관계없이 모든 임직원에 대해 이를 일괄 적용된다”며 “이번 시행은 7월부터 대기업에 적용되는 근로 시간 단축의 정부 지침을 따르기 위한 예비 조치다. 시행 과정의 부작용과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다음 달에 다른 사업부까지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일자리 창출 과제 중 하나인 ‘근로시간 단축’ 정책의 화답인 것으로 보인다.
 
문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현재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겠다는 근로시간 단축을 최우선 과제에 포함하고 이 문제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장시간 노동과 과로가 일상인 채로 삶이 행복할 수 없다. 과로 사회가 더는 계속돼선 안 된다”며 “노동시간 단축과 정시 퇴근을 정부의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장시간 근로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바 있다.
 
이에 재계나 일반기업이 최근 잇달아 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제 도입 등 선진 근로문화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우리 사회 전반도 고용 환경 개선에 나서는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
 
2018년 경제계를 관통한 키워드 ‘워라밸’이 그 예다.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라는 표현으로 연봉에 상관없이 높은 업무 강도에 시달리거나 퇴근 후 SNS로 하는 업무 지시, 잦은 야근 등으로 개인적인 삶이 없어진 현대사회에서 직장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들이 워라밸 열풍에 동참하는 이유는 정부의 정책에 발맞추려는 것 외에도 ‘젊은 퇴준생’을 잡기 위한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 20~30대 사이에서는 최근 퇴직을 준비하는 ‘퇴준생’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6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7.7%로 나타났다.
 
이들은 경쟁적인 취업 환경에서 어렵게 직장을 얻었지만 입사하자마자 1년 안에 퇴사를 준비하고 회사를 떠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 2935명을 대상으로 ‘직장 선택의 기준’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신입 직원들은 ‘연봉 수준’이 아닌 ‘근무시간 보장’을 1위로 꼽았다.
 
직장인들도 ‘높은 연봉과 저녁이 있는 삶 중 원하는 삶’을 묻는 조사에서는 70% 이상이 ‘저녁이 있는 삶’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나 기업들은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춰 근무환경 개선을 통한 ‘젊은 퇴준생’ 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워라밸’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특히 올해 대기업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극적인 시도를 한 신세계그룹에 맞선 노동계의 반발은 큰 화제를 모았다.
 
신세계그룹은 1월 1일부터 대기업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이로써 신세계·이마트 임직원은 하루 7시간 근무하며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9-to-5제’를 시행 중이다.
 
이와 관련 마트산업노조 이마트 지부는 신세계의 새로운 근무제가 올해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려는 ‘꼼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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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는 지난해 19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 35시간 근로 시간제는 노동 강도의 강화와 임금 삭감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2020년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오르면 노동자 한 명당 월 26만 원 적게 받는 구조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신세계·이마트는 매년 500억 원가량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받게 될 임금 총액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노조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이마트 본사 관계자는 “매년 임금 협상을 하므로 직원들의 임금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불필요한 업무 부담을 낮출 수 있다. 근로시간을 줄여도 연장근무와 수당 지급이 예전처럼 이뤄지기 때문에 임금이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워라밸’이 아직 대기업·공무원에만 국한된 얘기라며 날 선 우려를 표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조사한 ‘30대 그룹 유연근무제 현황’에 따르면 자산순위 30대 그룹 중 삼성, LG, SK, 롯데, 포스코, 한화, KT, 두산, 신세계, CJ 등 절반 이상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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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할 근무자를 구하기도 힘든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직원들의 눈치가 보일지언정 오히려 야근 수당을 지급하고 기존 직원이 하루 2~3시간 더 일 해주는 것이 비용절감에 더 효과적이라는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임금 격차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근무시간까지 달라지게 되면 양극화 현상은 좀처럼 좁혀질 수 없고 이후 취준생들의 대기업 쏠림현상도 더 심화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정세현 경영컨설턴트는 한 매체를 통해 “근로자들이 여전히 야근과 잔업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에 워라밸은 먼 나라 얘기”라며 “자칫 워라밸이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더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산업 전반에 이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근로자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기업의 파격적 시도에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특히 ‘업무 효율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 반응이 많다.
 
업체 관계자는 한 매체를 통해 “일찍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기업들은 제도 시행 이후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와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고 업무 생산성 강화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직장인 4만951명을 조사한 결과 주 2~3일 야근하는 직장인의 업무 생산성은 57%인 반면 주 5일 야근하는 직장인은 45%에 불과해 과한 노동이 오히려 업무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또 ‘워라밸’ 수준이 좋을수록 회사 만족도는 높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직장인 937명을 대상으로 ‘워라밸’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회사 워라밸이 좋은 편(매우 좋은 편+좋은 편)이라고 응답한 그룹에서 회사에 만족한다는 답변이 68.5%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워라밸이 나쁜 편(매우 나쁜 편+나쁜 편)이라고 답한 그룹에서는 ‘회사에 불만족한다(70.8%)’는 답변이 높게 나왔다.
 
하지만 이는 일부 대기업에 속할 뿐 작은 기업일수록 워라밸 활용은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고용부의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5~10인 미만 사업체 중 유연 근무를 시행하는 비중은 12.0%로 300인 이상 기업 53.0%와 큰 격차를 보인다.
 
정재우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 매체를 통해 “정부가 유연 근무제를 도입한 중소기업에 1인당 연 최대 520만 원을 지원하는 등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관리 비용 증가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고용주가 많은 실정”이라면서 “사업체 특성을 고려하고 유연근무제 도입이 가능한 직무를 발굴해 실제 사용하도록 장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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