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 방향은 옳은 것 …장점 극대화 시키면 변화·개혁에 크게 기여보수층선 노무현 화법 파괴력 두려워 경솔하단 말로 의미 깎아내려“대통령이 위기에 처했는데 국무위원들이 몸으로 막아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대통령은 태풍이 불어올 때 오페라 보면 안됩니까.”지난 9월30일 오전 국무회의 석상에서 최낙정 해양수산부 장관이 느닷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장관들은 대통령이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방패막이가 돼야 한다는 `방패막이론`을 역설한 것이다. 국무위원들은 갑작스러운 최장관의 발언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한 여성장관은 나이가 어린 탓이라고 혀를 찼다. 노무현 대통령의 안색도 변했다. 노대통령은 국무회의 마지막에 늘 하던 정리발언도 없이 자리를 떠버렸다. 노대통령은 언제나 국무회의를 마무리지을 때 5분 정도의 정리발언을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이를 생략한 채 회의를 끝마친 것이다.

이날 국무회의 석상에서 `방패막이론`을 제기한 최장관의 참 의도는 무엇이며 노대통령의 싸늘한 반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최장관은 이에 앞서 9월26일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신임공무원을 대상으로 특강을 실시했다. 그는 “왜 우리는 태풍이 올 때 대통령이 오페라를 보면 안되는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우리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기적으로는 이점에 대해 노대통령이 국민에게 이미 유감을 표명한 뒤끝이었다. 이 발언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비난도 많았지만 “옳은 소리”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최장관의 발언 의도는 명백하다. 대통령의 언행이 항상 한나라당이나 일부 언론의 시빗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최장관은‘대통령이 가방 끈이 짧아 말을 함부로 한다’는 세간의 힐난을 잠재우고 싶었을 것으로 보인다.

가방 끈이 짧지 않은 자신을 보라면서. 최장관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마치고 바로 목포로 내려가 목포해양대학에서 해양정책에 관한 특강을 실시했다. 그는 양복 상의를 벗으면서 “갈 데까지 갔으니 옷을 벗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옷을 벗겠다는 표현은 국장 때부터 회의를 시작하면 으레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 하는 첫마디”라고 해명했다. 최장관은 그 다음날인 10월1일 한국교원대 종합교육연수원에서 전국 초등·특수학교 교장자격 연수생 특강에서 또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많은데 그 중 몇 놈이 (교장으로) 올라가도 아무 소용없다”는 등 실언을 한 것이다. 교장 연수생들이 일제히 항의하자 최장관은 강의실 바닥에 엎드려 넙죽 큰절을 하며 사과했다.

최낙정의 화법`은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을 닮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직설적이고 쉽고 명료한 표현을 즐겨 쓰고 비속어를 활용한다는 점등이 그렇다. `말을 함부로 한다`는 한마디 표현으로 압축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최장관의 화법은 노대통령 화법의 아류라고 할 수 있다. 화법에 관한 한, 최장관은 노대통령의 수제자라고 할만하다. 그런데도 노대통령은 고건 총리의 건의를 받아들여 최장관을 해임했다. 무슨 까닭일까. 말을 자유분방하게 구사하는 대통령으로서도 최장관의 언행이 지나쳤다는 평가를 내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최장관의 몇차례 돌출발언을 통해 자신의 화법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독특한 화법에 대해 비판과 고언이 잇따랐지만 별로 귀담아 듣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건 총리의 해임건의를 바로 수용한 것은 최장관의 돌출 언행의 문제점을 충분히 인정했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비속어(“선생 중 몇 놈이”)를 직접화법으로 사용한 것이 결정적인 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노대통령의 화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노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자신의 화법의 장단점을 깨닫고 장점을 극대화시킨다면 변화와 개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무현 화법`에 대해 비판하고 불편해하는 것은 `노무현 화법`에 담긴 역사적·사회문화적 의미를 읽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화법이 언어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가식적이고 중의적인 표현에 길들여져 있는 민중들의 언어생활이 달라만 진다면 우리 사회는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 화법에 능통할수록 고단수 정치인으로 대접받는 풍토도 잘못된 것이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정치인의 노련함으로 비쳐지는 한 정치개혁은 요원하다. 대통령의 말은 하나 하나가 국정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또 국민들은 대통령의 말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통령의 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노대통령은 한글세대 첫 대통령으로서 쉬운 우리 말글을 통한 권위주의 타파에 노력하고 있다. 언어의 무차별성을 통한 `언어의 민주화`를 선도하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국민과의 직접 대화로 친근감을 심어주려 하고 있고 토론문화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무기이다. 그러나 보수계층은 `노무현 화법`에 내재되어 있는 파괴력이 두려워 `경솔하다`는 말로 그 의미를 깎아 내리고 있다. 물론 노무현 화법에는 부정적인 요인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기본적인 방향은 옳다.

먼저 노무현대통령 화법의 특징을 살펴보자.
▲서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쓰는 쉬운 말을 사용한다.
▲표현이 진솔하다(속마음을 너무 쉽게 드러낸다).
▲문제의 핵심을 속 시원히 집어낸다.
▲가끔 비속어와 함께 막말도 사용한다.
▲반어법을 애용한다. 그러나 반어법인지 모르는 국민들도 있어 오해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유머를 곧잘 활용한다.
▲비유법을 사용하는 빈도가 높다.
▲전체적으로 말을 많이 한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설명을 길게 한다(자세하게 설명한다). 중국방문때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질문에 대한 답변이 너무 길었다. 간결하고 명쾌하지 못했다. 노대통령은 “시간이 많이 필요한 질문이지만 최대한 압축해 말해보겠다”고 운을 떼 놓고도 압축해 설명하지 못하고 너무 시간을 끌었다.

▲말하면서 손짓을 많이 한다. 이는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이게 한다. 중국방문때 기자회견에서도 손짓이 너무 잦았다. 반면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거의 손짓이 없이 차분하게 회견을 진행했다.
▲임기응변에 능하다.이상과 같은 노대통령의 화법에는 긍정적 효과도 있고 부정적 효과도 있다. 먼저 긍정적 효과로 8가지를 들 수 있다.
▲자신감의 발로.(어떤 분야든지 전문가와 심층토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설득력이 있다.
▲적절한 비유법 활용으로 감동을 준다.
▲화끈하고 투박한 말투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시원하고 통쾌한 느낌을 준다.
▲서민들의 정서에 쉽게 다가간다.
▲정치사회적 개혁을 위한 화두를 제공한다. 잡초론, 새끼줄 기차론(3월29일), 공무원사회 개혁세력 구축론, 계란론(7월3일) 등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권위주의 타파를 통한 민주적이며 서민적인 지도자상 이미지 제고.
▲`문어체 대통령`에서 최초의 `구어체 대통령`으로 부상. 부정적 효과는 6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발언의 일관성 부족으로 국정 혼선 초래 우려.
▲비속어와 막말 사용으로 품격 저하.
▲정책결정 과정에서 겪은 고민 등을 쉽게 털어놓아 불안정 이미지를 심어준다.(우유부단, 결단성 부족으로 비쳐질 수 있다)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내용이 서로 어긋날 수도 있어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너무 길게 설명하면 ‘요령부득’이나‘장황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적극적 지지자들은 혹시 말실수를 할까봐 조바심을 낸다. <다음호에 계속>


선경식 <언론인·본지 객원 논설위원>

◆ 1948년생(55)◆ 중앙일보·중앙경제 사회2부 차장
◆ 월간중앙 부장◆ 노동일보 편집국장 역임◆ (현) 한국 정경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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