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서 시작해 사회 각계로 퍼져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에서 겪은 성추행 피해를 폭로해 법조계에서 촉발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사회 각계로 확산되고 있다. 서 검사가 활시위를 당긴 격이다. 미투 운동은 법조계와 정‧재계에 이어 문화예술계까지 번지고 있다. 잇단 폭로로 노출된 성폭력은 그동안 속칭 ‘꽃뱀’으로 인식됐던 견강부회(牽强附會) 주장이 아닌 ‘팩트(사실)’로 드러나는 모양새다.

서지현 검사, 활시위 당겨···‘나도 당했다’
“성폭력 묵인하는 사회 더 이상 안 된다”


최근 국내에서 확산되는 미투 운동의 불씨는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성추행 사건 폭로로 시작됐다. 서 검사는 지난달 29일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지난 2010년 10월 한 장례식장에서 안태근 전 법무부 국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을 게시했으며 이 내용은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파장은 서 검사가 당일 방송에 직접 출연해 8년 전 자신의 경험을 밝히면서 일파만파 확산됐다. 현직 검사 신분으로 실명과 얼굴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성추행 피해를 밝힌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 서 검사는 “피해자가 직접 나가서 이야기를 해야만 진실성에 무게를 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용기를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 내부에서 성추행 사실을 밝히면 ‘꽃뱀’이라는 비난을 받고 내부적으로 비밀리에 덮힌다고 폭로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가 서 검사의 공개 폭로로 논란이 커지자 ‘진상조사’를 하겠다며 대응에 나섰다.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서 검사의 폭로에 공감하며 ‘나도 피해자’라는 ‘미투’ 운동이 확산돼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직장인
‘이제는 못 참아’

 
지난 6일 직장인 익명 어플리케이션(이하 앱) ‘블라인드’에는 직장에서 겪은 성희롱이나 성추행 경험을 폭로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블라인드는 회사 이메일 인증을 거쳐야 가입할 수 있는 직장인 익명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다. 이 앱에 따르면 지난 1일 신설된 ‘미투’ 채널 게시판에는 1000여 개가 넘는 폭로 글(삭제 게시물 포함)이 올라왔다.

공기업 직원이라고 밝힌 한 이용자는 “사원 2년차 아버지뻘 본부장이 회식 자리에서 소주병을 주면서 하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면서 ‘미스김 회장님 술 한 잔 드리면서 애교 좀 부려봐’라는 말을 들었다고 남겼다.

또 다른 이용자는 “넌 날 기분 좋게 만들어야지, 왜 살랑거리는 맛이 없어?”라고 말한 회사 사장을 폭로해 공분을 샀다.

한 이용자는 “어디서 말도 못 하고 집 가서 거의 매일 울었고 성격도 예민해지고 모든 사람한테 불신이 생겼다. 결국 안 되겠다 싶어서 플젝(프로젝트) 끝나고 심리치료를 받았다”면서 피해 후 고통을 피력하기도 했다.

회사 이름을 내건 폭로도 다수로 올라오는 상황. 매달 회장이 방문하는 날 여직원들이 격려 행사를 한다는 한 기업과 회장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여직원들에게 장기자랑을 시켰다는 또 다른 기업에 대한 글도 성토 대상이다.
 
대학생도 동참
 
문화예술계에서도 미투 운동이 힘을 받고 있다. 지난 2016년 SNS에서는 ‘#문단_내_성폭력’ ‘#미술계_내_성폭력’ 등 해시태그(단어 앞에 #기호를 붙여 해당 단어에 대한 글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기능)를 달며 성폭력을 고발하는 행동이 이어진 바 있다.

최근 한 여성 감독이 동료 여성 감독을 성추행해 징역형을 받은 사실이 피해자 감독의 SNS 폭로로 드러났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가해자인 A감독을 제명했다. 지난해 A감독에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준 여성영화인모임은 긴급 이사회를 열어 수상 취소 논의에 들어가기도 했다.

대학가도 예외는 아니다. 한 대학원생은 SNS를 통해 교수와 강사로부터 겪은 성희롱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결국 자퇴서를 작성했다가 마음을 돌려 미투 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며 “빛을 보고 싶다. 이미 오래 어두웠다”고 적었다.

연세대 온라인 익명 게시판 ‘대나무숲’에는 한 작성자가 중학교 때 남학생들로부터 언어적 성희롱을 당한 사례를 올렸다. 그는 “중학교 때 경험들은 ‘사춘기 남학생들이 벌인 장난 같은 것’이라고, ‘그냥 이해하라’고 강요받는 상황이 올까 두려워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지나고 보니 억울하다. 왜 주변에서는, 인터넷상에서는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반응과 댓글들이 존재하는지”라고 적었다.

서 검사의 모교인 이화여대 학생들은 지지 성명서를 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지난 3일 재학생 등 670명과 교내 32개 단체 명의로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피해자들의 증언을 막음으로써 ‘성폭력을 묵인하는 사회’를 유지해왔다. 이제는 그동안 침묵을 강요받았던 피해자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면서 서 검사의 용기를 지지하고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정영훈 한국여성연구 소장은 “미투 운동은 개인의 용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연대로 가자는 움직임”이라며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강남역 살인 사건 당시 젊은 여성들이 포스트잇 운동을 하는 등 많은 오해와 왜곡에 맞서기 시작하면서 영향을 미쳤다”며 “연대를 향한 열망이 높아졌기 때문에 비슷한 운동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문화평론가도 “과거 집단주의에서 개인 중심으로 가치관이 바뀌면서 일상에선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인식이) 많이 생겼다”면서 “국가기관 등 집단은 잘 못 따라왔다. 검사 집단에서도 이런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2년 전 문단(文壇)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이번엔 미투로 바뀌었는데, ‘폭로’보다 개인의 자기 선언 같은 느낌을 많이 준다”며 “과거에 고발성이 강했다면 이번 미투 운동은 고발성에 ‘내가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용기와 결단이 반영됐다고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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