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뉴시스>
이른바 ‘현대판 노예’로 불리는 노동 착취 논란이 또 다시 불거졌다. 경북의 한 농가에서 23년 동안 일하고도 단 한푼의 임금도 받지 못한 60대 남성이 발견되면서다. 현재 이 남성은 임시 구조 조치됐다. 4년 전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염전 노예’ 사건이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A(62)씨는 간이 컨테이너와 창고에서 자고 지내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해왔다. A씨는 구조 당시까지 불법과 인권침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A씨는 지난달 중순 서울의 한 쉼터로 거처를 옮겼는데, 경북의 한 면사무소 관계자가 장애인 단체에 학대 의심 신고를 하면서 착취 사실이 발견됐다.
 
그는 20년 넘도록 농가에서 축사 관리와 농사일을 하며 지냈다. 모내기철에는 새벽부터 일했고 오후 9시가 넘어서야 겨우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농장주 축사에서 염소를 먹이고 소똥도 치웠다. 혹독한 것은 업무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머물던 곳은 난방시설이 없어 한겨울에도 전기장판과 낡은 이불에 의지해야 했다.
 
A씨의 급료통장은 2013년도에 개설됐음에도 잔액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3년을 일했지만 무일푼이었다.
 
또 A씨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왜 이곳으로 왔느냐’는 질문에 “농사하다 왔다”고 엉뚱하게 답을 하는가 하면,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바닥만 바라보며 말을 얼버무렸다.
 
‘농장주에게서 임금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형님과 형수님이 정말 잘해줬다. 밥도 같이 먹고 잘 챙겨줬다”고 대답했다.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살았지만 20년 넘게 그곳에서 지내며 세뇌당한 것 같다는 게 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같은 이유로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A씨는 장애등록이 신청돼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쉼터 측은 설명했다.
 
이 같은 일을 저지르고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미미한 형편이다. 지난해 판결난 이른바 ‘현대판 노예 사건’들 가해자 절반 이상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반면 노예 사건 피해자는 구조 이후에도 오랜 시간 트라우마를 겪으며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현대판 노예’는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호주에서 노동착취를 근절하기 위해 관련법이 제정되고 기구도 신설돼야 한다는 의회의 권고가 나왔다. 호주 연방 상하원 합동 조사위원회는 ‘평범한 모습의 이면(Hidden in Plain Sight)’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49개 권고사항을 포함해 ‘反노예법’ 제정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번 조사는 과일 수확 작업을 하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청소업 분야의 착취 등 곳곳에서 현대판 노예노동 문제가 잇따라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4000만 명이, 호주에서는 4300명이 인신매매나 부채 상환, 강제노동, 기타 과거 관행 등을 통해 현대식 노예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많은 한국 청년들이 ‘워킹홀리데이’ 목적으로 호주로 가 일자리를 찾는 만큼 국내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판 노예’는 숨은 범죄이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각국 정부는 노동착취 근절을 위한 단속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