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석유생산 올해 사우디를 추월할 전망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미국 석유생산이 올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수십 년 중동정책의 기초가 돼 온 지구촌 질서가 통째로 뒤집히게 돼 그 파장이 클 전망이다. 이런 상황은 한국 안보 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우리로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발표된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에 따르면 미국 원유생산은 2018년 1000만 하루 당 배럴(bpd)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정부들과 기업들에 조언하는 국제기구인 IEA는 올해 미국 원유 공급 예측치를 26만 bpd만큼 증가한 1040만 bpd로 높여 잡았다. IEA의 이 같은 예측 변경은 최근 원유 가격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데 기인한다. 현재 사우디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 간에 맺어진 협약에 따라 1000만 bpd를 약간 밑도는 원유를 퍼 올리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자국의 원유 생산 능력이 1200만 bpd라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1050만 bpd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올해에도 원유 생산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만약 미국이 러시아에 이은 세계 2위 산유국 지위를 회복하면 그것은 미국과 사우디 사이의 외교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두 나라는 미국이 사우디에 제공하는 군사적 방위와 값싼 사우디 원유를 교환하는 관계를 유지해 왔다. 헤리티지재단과 쌍벽을 이루는 미국의 유명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브루스 리델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석유를 둘러싼 미국-사우디 간 역학관계 변화를 가리켜 “그것은 지진과도 같은 변화다. 사우디는 더 이상 세계 석유가격 책정에서 결정적인 국가가 아니다. 상황은 마치 우리가 1970년대 초반으로 되돌아간 것과 같다”고 진단했다. 늘어나는 미국 원유 공급은 2014년 이래 처음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한 원유 시장의 열기를 식힐 수 있다. 미국은 국내 소비자들이 갑작스러운 원유 공급 손실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미국산 원유의 수출을 법으로 금지해 왔다. 그러다 2015년 이 법이 폐지돼 셰일 붐 속에서 퍼 올린 미국 원유를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미국의 원유 수출은 한때 200만 bpd에 이르렀다.
국제정치학자인 이춘근 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주간조선 기고에 따르면 2004년 텍사스의 중소기업 석유회사 회장인 조지 미첼에 의해 개발된 프래킹(Fracking) 공법은 미국 본토 전역에 거의 무진장 널려 있는 셰일가스 혹은 셰일석유를 중동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훨씬 싼값에 채굴할 수 있게 하였다. 지질학자인 아들의 반대도 물리치고 추구했던 집요한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미국 전역 상당 부분이 5억 년 전에는 바다였다. 바다였던 곳은 지금 미국 지표면에서 약 3000m 정도 깊은 곳이 두께는 얇지만 그 넓이가 방대한 암반층을 구성하고 있는데 그 암반을 셰일(Shale)이라 부른다. 한국어로는 혈암 또는 이판암이라고 한다. 5억 년 전 바다였던 그 바위 속에는 분명히 물고기 등 수많은 동물의 시체가 화학변화를 일으켜 석유화되어 있으리라는 사실을 지질학자들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캐낼 기술이 있느냐의 여부였고, 캐내더라도 중동석유를 사오는 것과 비교해서 채산성이 맞느냐의 여부였다. 그런데 미국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했고, 뒤이어 국제 원유시세가 올라 채산성이 확보되면서 미국 셰일 오일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제 미국의 원유 생산은 1990년대 초 이래 처음 사우디를 추월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미국은 20세기의 많은 시기 세계 원유생산을 지배했다. 처음에는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더드오일과 같은 거대 석유회사들이 국내에서, 그리고 뒤에는 미국 석유회사들이 사우디에서 수십 년 동안 유전을 운영했다. 하지만 1973년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보복으로 사우디가 주도한 아랍권의 석유 수출금지는 미국 경제를 뒤흔들었다. 사우디의 생산은 1980년대 주저앉았으며, 제1차 걸프전을 통해 미국이 중동의 지배적인 세력이자 사우디 수호자로서의 지위를 굳힌 1990년대 초반 다시 증가했다.
미국 원유 생산은 10년 전까지 정체됐다. 그러다 프래킹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서 2008년 이래 생산이 거의 배로 늘었다. 그런 한편으로 사우디 생산은 안정세를 유지해 왔다. 시장조사업체 IHS 마킷의 부회장으로 석유시장을 오래 관찰해 온 대니널 예르진은 미국-사우디 간 석유 역학관계의 변화를 가리켜 “그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그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미국 에너지 안보뿐만 아니라 실제로 세계 에너지 안보에도 기여한다고 생각한다”며 “정점(頂點)으로 여겨졌던 것을 뛰어넘는 이것은 미국 에너지에 새로운 전환점의 신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분석가들에 따르면 셰일 생산의 호조로 미국은 에너지 독립에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이라크와 쿠웨이트 같은 국가들에서 하루 7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한다. 지난해 1~10월 미국은 사우디에서 하루 98만8000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는데 이는 2009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컨설팅회사 라피단 에너지 그룹의 로버트 맥낼리 사장은 미국의 원유 생산이 증가함에 따라 대부분의 정책 당국자들이 에너지 안보를 핵심적 고려사항에서 제외하게 됐다고 본다. 이춘근 박사에 따르면 석유가 충분해진 미국은 석유로 인한 국제정치적 이익을 톡톡히 보기 시작했다. 중동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지난 30년 이상 항공모함 두 척을 중동에 상시 배치하는 등 매년 약 300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썼다. 그랬는데 셰일석유 혁명 덕분에 미국이 석유 때문에 쓰던 돈을 크게 절감하게 되었다. 미국은 그동안 만약에 대비한다며 중동에서 석유를 사다가 루이지애나와 텍사스의 동굴 속에 비축해 왔다. 그런데 이제 미국은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이제 미군은 더 이상 중동에 가서 전쟁을 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러니 중동의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다. 그래서 미국은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자제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용감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선언한 것은 그 한 사례일 뿐이라고 이춘근 박사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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