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에 쌓인 눈과 푸르게 녹아내린 바다 풍경은 일본하면 으레 떠오르는 진부한 상상을 단번에 부수어 놓았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당연한 듯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 가는 가고시마 그리고 미야자키.
 
            산과 바다, 그 신비로운 예술, 미야자키
 
가고시마 현 바로 옆, 규슈의 남동부에 위치한 미야자키 현. 아직 국내 여행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이곳은 왼쪽으로 웅장한 산맥과 깊은 숲, 청색으로 형형한 태평양을 끼고 있다. 워낙 신비롭고 거대한 자연이 많아 이곳의 신사들 역시 우리가 상상하는 일본의 신사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와 풍경을 자아낸다. 아름다운 바다와 숲 속에서 미야자키가 내내 품어온 여행지를 발견하는 새로운 시간.
 
           세계적인 화가들이 숨어 있는 미야자키 현립 미술관
 
미야자키 현립 미술관에는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와 르네 마그리트, 폴 시냑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일본에서 그 이름도 조금은 생소한 미야자키에서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해외의 작품 외에도 미야자키 현 내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화가 에이큐, 야마우치 타이몬 등의 작품도 함께 전시 중이다. 단순한 회화뿐만 아니라 판화와 도예 등의 다양한 예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는 사실이 관람에 재미를 더한다. 
           미야자키 현립 미술관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는 미술관 인테리어에 있다. 돌문을 열고 신이 들어 왔다는 미야자키의 신화를 바탕으로 건축됐다. 실제로 미술관 내부 곳곳에는 신을 연상시키는 장식이 많으며 건물 외관 입구는 신이 열었던 돌문을 그대로 재현했다.
  
           <Tip> ‘현실의 감각’르네 마그리트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유명한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 이곳에 있다. ‘현실의 감각’은 그의 작품 중 허공에 떠 있는 돌섬 그림 ‘피레네의 성’과 비슷한 작품으로 떠 있는 섬과 달, 지구의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산맥에 둘러싸인 다카치호 목장
 
해발 500m에 위치한 다카치호 목장은 가족 여행객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여행지로 최근 한국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 
          만화 영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당나귀를 만져 볼 수 있고 어린 양에게 직접 구매 한 먹이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미리 예약한다면 이보다 더 다양한 목장체험도 경험할 수 있다. 
          목장 주위를 둘러싼 기리시마의 광활한 산맥을 바라보며 족욕도 무료로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여행지가 아닐까. 목장 입구에는 이곳에서 직접 만든 유제품이나 과자 등을 판매하는 팜 숍과 식사하며 쉬어갈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팜 숍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직접 짠 우유로 만든 소프트 아이스크림. 우유에서 자연스레 느낄 수 있는 바닐라 맛이 달지 않고 부드러워 누구에게나 추천한다. 목장이 유명해지는데 이 아이스크림도 한몫 거들었다고 하니 반드시 맛볼 것.
 
          눈 덮인 에비노 에코 뮤지엄 센터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에비노 고원은 트레킹 명소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해발 1200m에서 안전하게 트레킹을 즐기려면 이 곳 에비노 에코 뮤지엄 센터를 먼저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다. 
         센터에서는 에비노 고원과 기리시마 자연에 대한 영상과 정보를 전시하고 있 다. 또 에비노 고원의 난이도별 트레킹 루트와 화산가스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는 곳의 정보도 공유해준다. 
         한국어 팜플렛도 비치하고 있으니, 언어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아도 좋다. 에비노 고원은 평소 겨울에도 따듯한 곳으로 유명해 한겨울 트레킹을 즐기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다만 간혹 폭설이 내리는 날이면 눈이 많이 쌓여 위험할 수 있다.
 
         미야자키의 숨은 명소 미이케 호수
 
입구를 찾을 수 없어 빙 돌다가 구석에 조그맣게 서 있는 팻말을 보고 따라 내려가면 보기만 해도 맑게 정화되는 듯한 넓은 호수가 나타난다. 
        주변을 둘러싼 산과 숲, 가운데가 움푹 파인 듯 자리하고 있는 호수가 한라산의 백록담을 떠올리게 한다. 화산 폭발로 생성된 미이케 호수 주변에는 상업적인 시설이 단 하나도 없다. 
        40여 년 된 공룡보트 몇 대만 물 위에 둥둥 떠 있을 뿐. 수면으로 비치는 태양의 반짝임은 물론, 물가에서 한가로이 목욕하는 철새들까지 한없이 여유롭고 자유로운 풍경이다. 주변의 화산 폭발로 쌓여 산이 된 다카츠호노미네가 우직하게 호수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돼준다. 
        한동안 머물러 있어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탓에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숨은 명소, 지켜주고 싶은 자연의 모습이다.
 
일본의 이스터 섬, 선멧세니치난
 
태평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선멧세니치난에서 칠레 이스터 섬의 유명한 석상, 모아이석상을 만날 수 있다. 
       가짜이기도 하고 진짜이기도 한 모아이석 상은 실제로 이스터 섬의 부족 장로회에서 유일하게 허가를 받아 완벽히 복제한 것이다. 이 석상 덕분에 선멧세니치난의 유명세는 일본을 넘어 세계적이 됐다. 
       석상이 있던 곳에서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색색의 조각상 ‘보와이안’이 있다. 불어로 ‘보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 조각상 역시 선멧세니치난의 인기 사진 스폿. 
       많은 여행객들이 컬러풀한 조각상 들 사이에 함께 앉아 사진을 찍어간다. 언덕의 정상에 오르면 푸르게 빛나는 태평양 의 둥근 수평선을 감상할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 아오시마 섬
 
조개껍데기가 쌓이면서 생겨난 섬 아오시마는 퇴적하고 융기해 만들어진 독특한 지형 ‘도깨비빨래판’과 자연스럽게 자란 아열대 나무로 인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아오시마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넘어갈 수 있으며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도보로 겨우 30~40분 정도다. 대부분은 울퉁불퉁한 빨래판처럼 생긴 섬 주위의 지형과 이곳에 세워진 신사를 보러 찾아오는 곳. 
      이 기이한 형태의 도깨비빨래판은 이천만 년에서 이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한다.
 
      <Info> 아오시마 해안 산책로
 미야자키에서 가장 넓은 아오시마 해변에 조성된 해안 산책로. 일렬로 심어진 야자수 나무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행객보다는 아오시마 시민들이 자주 이용한다. 이 산책로를 통해 아오시마 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신과 함께
미야자키 사람들의 안식처, 미야자키 신궁

 
곧게 뻗은 숲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회색의 거대한 토리이가 시선을 이끈다. 붉은색의 토리이만 보았기에 동판으로 이루어진 미야자키의 토리이는 조금 낯설다. 낮은 색감의 목조 건물과 좌우로 가지런히 서 있는 석등이 단정한 절제미를 풍긴다. 
     미야자키 신궁은 초대 진무천황을 모시는 곳으로 여행객들보다는 미야자키 시민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그야말로 이곳 주민들의 안식처이다. 한 남자가 신궁에 들어서기 전 테미즈에서 손과 입을 헹군다. 
     신을 만나기 전, 신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한 행동. 실제로 일본 대부분의 신사 입구에서 테미즈를 볼 수 있다. 
     본전에 들어선 사람들이 함에 동전을 던져놓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 뒤 가볍게 반절을 한다. 한국의 사찰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임에도 어쩐지 신기한 것은 그들의 삶에 이러한 ‘인사’와 ‘기도’가 자연스레 녹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Info> 신사와 신궁
 일본에는 신을 모시는 신사와 신궁이 있다. 신사는 말 그대로 ‘신’을 모시는 곳이고 신궁은 일본의 왕 또는 왕족과 관련된 신을 모시는 곳으로 조금은 의미가 다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을 신으로 모시는 곳 역시 신궁이라 부른다.
 
    파도소리에 젖은 아오시마 신사
 
해변가에 서 있는 붉은색 토리이를 지나 섬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오시마 신사가 나타난다. 규모는 작지만 주위를 둘러싼 열대나무가 이국적이다. 묘하게도 잘 어울리는 이 조합이 일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오시마 신사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람소리에 이끌려 본전의 오른쪽 문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의 소원이 적힌 나무패가 둥근 아치형의 터널에 매달려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숲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 그들의 소원이 그만큼 간절하기 때문이다. 
    터널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가면 녹색으로 가득한 나무들 사이에 붉은색의 작은 사당이 나타난다. 
    사당 주위로 색마다 다른 의미의 끈들이 잔뜩 묶여있는 나무와 소원을 담은 작은 황토접시가 가득 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소원을 빌고 간 신성한 흔적이다.
  
    <Info> 소원의 무게
 신사의 왼편에 마치 조각처럼 놓여있는 동그란 돌. 자신의 소원과 돌의 무게를 상상해 본 뒤 이 돌을 들어보자. 생각했던 것보다 가볍다면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 반대로 무겁다면 아직은 멀었다는 뜻이다.
 
   숲 속에 자리한 기리시마 신궁
 
높은 산맥 중턱, 세월이 느껴지는 오래된 삼나무 숲 속에서 고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기리시마 신궁. 일본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니니기노미 코토를 모시는 신궁으로 가고시마 현과 미야자키 현 사이의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가로수처럼 늘어선 삼나무 사잇길을 걸어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앗아가는 것은 오른쪽 구석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신목이다. 길게 뻗은 기둥과 곡선으로 뻗어나간 가지가 곱다. 
   몇몇 사람은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힌 채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다. 울타리로 가로막혀 있는 신궁의 본전은 가림막까지 쳐져 있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더욱 신비롭다. 한쪽에서는 운세를 점치는 연인들이 설레는 얼굴로 쪽지를 펼쳐본다. 신을 믿고, 운세를 믿고 그것이 대길이든 대흉이든 모든 것을 이겨낼 거라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가느다란 줄에 꼬깃꼬깃 접혀 있다.
 
동굴에 숨어있는 우도 신궁
 
동굴에 숨어있는 부산의 용궁사가 슬며시 떠오르는 우도 신궁은 해안가의 절벽을 따라가면 나타난다. 
  가파른 계단 왼편 우도 신궁의 절벽 안쪽으로 깊이 파인 동굴이 있고, 이곳에 바로 우도 신궁의 본전이 있다. 간간히 몰아치는 파도 소리가 동굴 안에서 잔잔하게 울리는 신궁의 풍경이 인상적이다. 
  동굴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면 이곳에 서 모시는 신 중 하나인 토끼신 동상이 놓여있다. 자신의 몸에서 아픈 부위를 만지면 그곳이 낫는다는 미신 때문인지 동상 곳곳은 칠이 벗겨져 금빛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동굴 밖에서는 여러 사람들 이 울타리에 기대어 바다를 향해 황토로 구운 돌을 던진다. 바위의 둥근 홈에 돌이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당연히 쉽지 않다. 일본에 수천 개의 신사가 있지만 저마다 소원을 비는 의식이 다르니, 신기하고 흥미롭다.

<사진제공=여행매거진 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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