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도 미투 사례와 비슷”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태움문화’로 대한민국이 들끓고 있다. 말 그대로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인 태움문화는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호되게 가르치는 방식에서 유래된 말이다. 지난 15일 송파구 아파트 화단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간호사 A씨 사건으로 인해 태움문화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간호사들에게 과중한 업무 주는 의료시스템 문제
근로기준법으로는 한계, 외국처럼 별도의 법 필요


A씨의 남자친구는 간호사 조직 내 태움문화가 A씨로 하여금 죽음을 택하게 만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에 경찰은 설 연휴 동안 A씨의 유족과 남자친구 등에게 1차 조사를 시행했다. 빠른 시일 내에 병원 관계자들 역시 조사할 계획이다. A씨의 근무 병원으로 알려진 서울아산병원은 현 사태에 대해 “조사 중에 있다”는 말만을 남겼다.
 
새벽 출근, 오후 퇴근
추가·특근 수당 없다

 
대한간호협회와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올해 1월 23일까지 간호사 7275명을 대상으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간호사 10명 중 7명이 인권 침해를 받고 있으며, 4명 이상은 동료 간호사나 의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프리셉터(preceptor, 선임 간호사를 지칭)가 신규 간호사를 교육하는 프리셉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앞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최근에 괴롭힘을 가한 가해자를 묻는 질문에 직속상관인 간호사 및 프리셉터가 30.2%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한 사례로 B간호사는 “데이 출근을 신규들은 새벽 4시에 한다. 새벽 4시에 출근해 퇴근은 오후 6~9시에 하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근무하는데도 추가수당이나 특근장부는 절대 못 쓰게 한다. 쉬는 날에 불러서 온갖 행사에 참여하게 한다. 그러면서 추가수당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근로자가 원하지 않은 근로를 강요하거나 연장근로를 강제한다고 한 응답(근로기준법 제 7조 - 강제근로의 금지관련)이 각각 2477, 2582 건으로 가장 높았다.
연장근로에 대한 시간 외 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경우(근로기준법 제 56조 -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관련)은 2037 건으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내부만의 문제 아니다
구조적 상황 돌아봐야
 

태움문화가 간호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이유로 대한간호협회 백찬기 홍보국장은 간호사 인력 부족 문제를 꼽았다. 자신의 일과 신입 교육을 병행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한 간호사에게 배당되는 환자의 수는 일본은 7명, 미국은 평균 5.4명, 캐나다는 4명 정도다. 반면 우리나라 종합병원의 경우 평균 21명 정도가 된다”면서 “간호사들에게 과업을 주는 의료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이론과 실무가 분리되어 있고, 병원마다 다른 시스템”도 원인 중 하나로 짚었다. “교육과정과 현장에서의 상황이 다르고, 실습을 마친 상황이어도 다른 병원을 가면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간호인력종합기획안’ 등 간호사가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국가에 요구하고 있으나 이마저 연기되고 있는 상태”라며 실제 국가 정책에도 문제가 있음을 꼬집었다.

협회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국가인권위(인권재단 사람)에 자문을 구하고 연말부터 1월까지 인권교육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잡일은 기본, 당직 몰아주기도
 
태움문화가 비단 간호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20대 어린이집 선생 C씨는 “선임제도는 없지만 경력 별로 텃세는 조금 있는 편”이라면서 “당직은 돌아가며 맡는 것이 원칙인데 사퇴 의사를 표한 한 명에게만 3일 연속 당직을 몰아주는 경우를 본 적 있다”고 이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신임 치위생사 D씨 역시 “업무 관련 질문을 하면 ‘교과서 보면 다 나와 있다. 책 봐’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책을 보고 하면 ‘왜 질문하지 않느냐’고 질책한다”면서 고충을 토로했다.

또한 “신입에게 업무가 가중되거나 잡일을 시키는 일은 빈번하다. 청소, 기구 닦는 일 같은 잡무나 기계를 켜고 끄는 것까지 모두 신입이 도맡아 한다. 내 실수가 아님에도 혼나거나 ‘우리 때는 안 그랬다’며 눈치를 주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근로기준법 외에
별도 정책 필요해”

 
노동당 장흥배 정책실장은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 “좋은 일자리가 갈수록 희소해지는 상황에서 노동권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직장 내 괴롭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지금 벌어지는 미투 사례처럼 권력 관계에서 열악한 지위에 놓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은 힘이 센 사용자로부터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으로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프랑스처럼 직장 내 괴롭힘만 규율하는 별도의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특별법이 다양한 형태의 직장 내 괴롭힘 유형을 정리하여 범죄화함으로써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직장 안에서의 물리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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