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 등에 ‘무역확장법 232조’ 빼들어

대미 철강 수출 1위 캐나다 등은 규제에서 빠져
11월 중간선거 앞두고 전방위 통상압박 가할 듯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지난 16일(현지시간, 이하 같음) 미국 상무부(DOC)는, 미국 무역 법률들에 적용되는 국가안보 규정인 ‘무역확장법(1962년 제정)’ 232조에 의거해 알루미늄과 철강 수입에 대한 대규모 제한을 미국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장문의 보고서들을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DOC 발표가 있은 뒤인 지난 19일(한국 시간)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국산 철강이나 세탁기 수출에 대한 미국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처 등에 대해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처에 대해서는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나가고,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DOC의 이 보고서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이미 지난 1월 11일(철강)과 1월 17일(알루미늄) 각각 전달된 바 있다. DOC의 건의는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법령을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하자고 대통령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그런데 DOC가 이번에 내놓은 232조 사용 건의는 미국의 과거 국가안보 관련 조사 사례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과거 유사 사례들에 있어, 미국 대통령은 ▲규제를 시행하기를 거부했거나 ▲대상을 좁게 한정해 규제를 시행했을 뿐이다. 전자(前者)는 2002년 철강 반제품(半製品)과 철광석을 둘러싼 경우였으며, 후자(後者)는 1979년과 1982년 각각 이란과 리비아 산(産) 석유 수입에 대해 제한을 가한 경우였다. 1962년 232조가 법제화된 이래 이 조항에 저촉되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는 모두 26차례 실시됐을 뿐이며, 조처가 필요하다고 미국 대통령이 결정한 사례는 5건에 불과했다. 그랬던 미국이 이번에 232조라는 무기를 꺼내든 것이다. 물론 이 위력 있는 통상 무기를 실제로 사용할지 여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윌버 로스 상무 장관이 작심하고 232조 사용을 벼르고 있는 상황인 데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오는 11월 중간선거(연방 하원의원 전부와 연방 상원의원 3분의 1을 선출)를 앞두고 무역정책을 통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라는 그의 정치철학을 눈에 띄게 유권자들에게 상기시켜야 할 압박감을 느끼고 있어 ‘232조 발동’은 아무래도 현실화할 개연성이 크다.

철강·알루미늄 조사 과정에서 DOC는 국방부, 국무부, 재무부, 노동부, 미국무역대표(USTR)와 같은 일련의 정부기관들을 포함하는 “미국의 적절한 관리들”과 협의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국방 부문에서 철강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조사하라고 국방부가 군수국에 지시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 점에 주목해 국방부가 DOC의 조사에 힘을 실어주려 한다고 보고 있다. 알루미늄·철강 수입 규제에 대한 DOC의 건의는 현재 48%(알루미늄)와 73%(철강)인 미국 국내의 평균 설비가동률을 8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문제의 두 품목과 관련해 DOC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러 선택지를 제시하고 그 가운데 하나를 택하도록 했다. 알루미늄과 관련해 DOC는 이렇게 건의했다. ①모든 국가로부터의 모든 수입에 국가별과 제품별 할당량을 부과하되 미국으로 수입되는 전체 물량이 그 국가들의 2017년 대미 수출의 86.7%를 넘지 못하게 한다 ②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에 추가하여 모든 국가의 알루미늄 대미 수출에 최소 7.7% 관세를 부과한다 ③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에 추가하여 다섯 나라(중국, 홍콩, 러시아, 베네수엘라, 베트남)의 모든 알루미늄 대미 수출에 23.6% 관세를 부과하며, 다른 모든 나라들에는 2017년 대미 수출의 100%에 해당하는 대미 수출 쿼터를 부과한다. 철강과 관련해 DOC는 이렇게 건의했다. ▲모든 국가들로부터의 철강 수입에 각국의 2017년 대미 수출의 63%에 해당하는 쿼터를 부과하고 이를 국가별과 제품별로 적용한다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에 추가하여 모든 국가의 철강 대미 수출에 최소 24% 관세를 부과한다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에 추가하여 12개 국가의 철강 대미 수출에 최소 53% 관세를 부과하며 다른 모든 나라들에는 2017년 대미 수출의 100%에 해당하는 대미 수출 쿼터를 부과한다. 

문제는 가장 가혹한 조처인 53% 관세 부과 대상 국가에 한국이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한국 외에 나머지 11개 국가는 브라질, 중국, 코스타리카, 이집트, 인도, 말레이시아, 러시아, 남아공, 태국, 터키, 베트남이다. 미국이 일본을 포함한 캐나다·독일 등의 전통우방을 제외하고 한국에 53%의 높은 관세를 적용할 수 있음에 전문가들은 주목하며 이를 우려한다. 한국 정부가 전통 한미동맹관계를 내세우며 한국산 철강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온 터라, 미국의 결정에 단순한 경제논리 이상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DOC는 보고서에서 12개 국가를 선정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철강을 가장 많이 수출한 상위 20개 국가는 2017년 기준 캐나다, 브라질, 한국, 멕시코, 러시아, 터키, 일본, 독일, 대만, 인도, 중국, 베트남, 네덜란드, 이탈리아, 태국, 스페인, 영국, 남아공, 스웨덴, 아랍에미리트(UAE) 순이다. 캐나다는 대미 철강 수출 1위인데도 12개 국가에 포함되지 않았고 미국의 이웃인 멕시코와 전통적 우방국인 일본, 독일, 대만, 영국 등 대부분 제외됐다. 전통적인 우방국가이면서 대미 수출비율이 높은 국가들이 제외된 이유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이 없다. 이와 관련해 로스 장관은 지난 16일 언론 인터뷰에서 12개 국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들 국가의 최근 몇 년간 생산능력 확장 속도,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의 성격, 환적 여부 등 여러 요인을 분석했다고 설명하고 특히 대미 수출 증가율이 “핵심 요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루미늄·철강 수입 규제에 대한 DOC 건의를 검토 중이다. 대통령은 DOC 보고 90일 안에, 즉 철강에 대해서는 4월 11일까지, 알루미늄에 대해서는 4월 19일까지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 ▲건의된 방안들 가운데 한 가지를 실행한다 ▲건의된 방안들을 변형해 실행한다 가운데 한 가지를 결정할 수 있다. 결정의 한 측면으로서 대통령은 개별 국가들로부터의 수입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 그럴 경우 DOC는 전반적인 수입 물량이 목표 수준으로 유지되게끔 나머지 국가들에 대한 쿼터나 관세 조정을 대통령에게 건의한다. 일단 대통령이 결정을 내리면 그는 그로부터 15일 이내에 결정을 이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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