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언급 않고 누구를 건드린다는 것인가”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군의 최전방 지역에 설치된 ‘대북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직접 비판하는 내용이 모두 삭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김학용 의원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 위한 선제조치로 보여”
軍 “작전 사항이라 공개 어렵다”, 시민단체 “그럼 그동안 왜 홍보했나”


대북확성기 방송에서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에 대한 언급이 빠지는 등 방송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남북 간 대화 분위기를 반영해 상호 비방 방송을 자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상호 비방방송을 중단하기 위한 포석, 북한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 관측도 제기되는 상황.

국군 심리전단이 지난달 21일 김학용 의원실에 구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합동참보본부(이하 합참)은 월간단위 작전지침을 통해 대북확성기 방송의 수위를 낮춘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을 향해 김 위원장을 대놓고 공격하면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합참이 대북확성기 운영을 담당하는 국군 심리전단에 “‘김정은’을 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구두보고 내용에 따르면 방송 내용도 김 위원장을 언급하지 않고 “미사일 시험발사에 돈을 많이 써서 고생한다”, “고위층은 호의호식하는데 주민들은 굶주리고 있다”는 정도로 수위를 크게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비방 방송 자제
“복선 있을 것”

 
대북 확성기는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요 대북 심리 압박수단으로 앞서 정부는 지난 2015년 8‧25합의 이후 중단했다가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전면 재개했다.

심리전단은 현재 군사분계선(MDL) 남쪽 최전방에서 신형 고정식 24대와 구형 고정식 16대 등 40대의 대북확성기를 가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담화, 뉴스, 드라마, 음악 등 4가지 프로그램을 편성해 하루 20시간씩 방송한다.

이번 비방 방송 자제 조치는 지난해 12월경부터 진행됐다. 북측도 방송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평창올림픽 개막식 공동입장, 아이스하키 단일팀 소식 등 뉴스의 방송 분량이 더 늘어난 것으로 전해져, 평창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북 정권 비판 내용을 줄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다르게 내다봤다.

박준식 자유민주국민연합 사무총장은 지난달 27일 일요서울에 “(이번 조치가) 또 다른 복선이 있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주사파(主思派) 정권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으로 연방제 통일을 하려는 것 같다”면서 “한국은 휴전 중인 나라다. 전쟁 중이라 보면 되는데 (김정은 언급을 제외한 것은) 북한을 주적이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 안보가 암담한 상황이다. (이번 조치는) 북 정권의 수괴(首魁)인 김정은을 마치 북에서 최고 존엄으로 대우하라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신 나간 정권”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우리는 국제적으로 북한 동포를 3대 세습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현재)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압박을 덜 받을 수 있도록 ‘셀프 인질’이 돼 주는 양상이다. 강력한 동맹을 구축해야 할 미국과는 척(隻)을 지고, 중국한테는 굴종(屈從)하고, 북한에게는 셀프 인질이 돼 주는 그러한 전략”이라고 내다봤다.
 
“국민‧국제 사회는
어리석지 않다”

 
이번 조치와 관련해 노재천 합참 공보실장은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군에서 실시하고 있는 대북 심리전 작전 내용에 대해 공개적으로 확인해드리는 것은 제한된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우리 군은 작전 목적과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적용해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달 22일 일요서울에 “심리전과 관련된 내용은 작전 사항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다”면서 입장을 반복했다.

‘이번 조치의 이유’, ‘지속 가능성’ 등을 질문했으나 “늘었다, 줄었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다 등 (모든 부분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같은 입장을 내비쳤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지난달 22일 일요서울에 “(군이) 지금까지 대북 방송하는 것을 다 공개해 놓고 갑자기 밝히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동안) 대북확성기에 대해서 낱낱이 언론에 홍보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자신 있게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하는 게 당연한 것인데 (군의 말은) 의구심만 늘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치에 대해 “대북 방송은 북한군에게 진실을 알리는 하나의 수단이다. 김정은 체제의 폭압성을 알리는 창구인데 이 심리전의 핵심인 ‘김정은 언급’을 하지 말라는 소리는 대북방송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단팥빵에서 팥은 건들지 말라는 소리냐”라며 “(정부와 군이) 대북 심리전 방송의 기본 취지를 공감한다면 제대로 (방송을)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방송을 하려면 하지 말아야 한다. 비싼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전파‧인력 낭비하면서 대북 방송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북한을 적으로 여기지 말라는 얘기고 우리 국군에게도 상대적인 심리적 박탈감을 주는 것이다. 또 북한을 대변한다는 것인데 남북문제, 특히 북한 핵문제 등은 평화적으로 해결이 안 된다” 면서 “남북이 대화를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지난 70년 동안 남북관계를 보면 전혀 북한이 평화적으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UN(국제연합) 등은 한국을 위해 대북제재를 하고 있는데 막상 당사자인 한국은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키고, 분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남북 관계를) 헌법적 절차에 맞게 정통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지 꼼수를 쓴다거나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면서 “국민과 국제사회는 어리석지 않다. 왜 갑자기 김정은을 빼라고 하는지 모를 리가 없다. 심리전에서 김정은을 언급 않고 누구를 건드린다는 것인가”라고 힐책했다.

김학용 의원은 “대북심리전의 최후 보루인 대북확성기에서조차 김정은에 대한 비판이 빠진 것은 북한에 대해 현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저자세의 결정판”이라며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을 위한 선제조치로도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어 “한반도 위기 상황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데 군 당국이 먼저 경계를 느슨하게 풀게 되면 자칫 북한이 오판할 수 있다”며 “더 완벽한 경계·안보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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