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여론 ‘갑론을박(甲論乙駁)’

방송인 김어준 씨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방송인 김어준 씨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재인 정부의 분열을 위한 공작에 이용될 수 있다고 한 발언을 놓고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여론의 반응도 뜨겁다. 김 씨의 발언 ‘진의’를 놓고 제각각의 해석이 제기되며 공감과 분노의 시선이 엇갈리는 양상이다.

민주당 ‘집안 싸움’, 야당 “미투 모독 말라”
김어준 해명했으나 논란 계속


방송인 김어준 씨는 지난달 24일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미투 운동에 대해) 제가 예언을 할까 한다.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어떻게 보이느냐”라며 “‘첫째 섹스, 좋은 소재고 주목도 높다. 둘째 진보적 가치가 있다. 그러면 피해자들을 준비시켜 진보 매체를 통해 등장시켜야겠다.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사고가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나온 뉴스가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예언하는 것”이라며 “(평창) 올림픽이 끝나면 그 관점으로 가는 사람들이나 기사들이 몰려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혜원, 금태섭에
“괜한 억측 말라”

 
김어준 씨의 발언 이후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집안 싸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를 통해 “김 씨의 발언,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언론 매체 프로그램과 관해서 되도록 말을 안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얘기하는 사람이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적었다.

이어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일을 모를 수가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라며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에 무슨 여야나 진보 보수가 관련이 있나. 진보적 인사는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어도 방어하거나 드러나지 않게 감춰줘야 한다는 말인가. 깊이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금 의원이 공개적으로 김 씨의 발언을 문제 삼자 같은 당의 손혜원 의원은 지난달 25일 자신의 SNS에 “시사에 대한 약간의 상식과 고2 국어 수준의 독해력이 필요한 문장이었지만 이렇게 해석이 분분할 줄 몰랐다”면서 “괜한 상상력으로 억측 말고 김 씨 글 전문을 읽어볼 것을 제안한다”고 적었다.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도 같은 날 SNS에서 “난독증도 이런 난독증이 없네”라면서 “뜨고 싶었나. 천지분간 못하기는”이라고 꼬집었다.

야당은 한목소리로 김 씨를 비판하고 나섰다.

신보라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6일 논평을 통해 “한 좌파 방송인이 공작 사고방식에 관한 자기고백으로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재갈을 물렸다”면서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면 권력에 의해 수 십 년간 묵히고 썩혀졌던 피해자의 상처와 분노를 버젓이 보며 저 따위 저급한 공작을 상상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씨가 속한 좌파 진영에서는 성폭력 피해자의 상처와 고통까지도 공작의 소재로 만들고 활용하는지 모르겠지만 상식적인 수준의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니 색안경을 내려놓길 바란다”며 “비뚤어진 진영논리와 망발로 성폭력 피해자와 국민을 모독한 김 씨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 즉각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라”고 촉구했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논평을 내고 “미투 운동은 ‘좋은 미투 운동’과 ‘공작 미투 운동’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성폭력 가해자 그리고 피해 사실 은폐에 동참한 사람은 문재인 정부 인사 등 진보인사든 보수인사든 누구나 당연히 단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 씨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 고백 용기를 더 이상 모독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조금이라도 언론인이라는 자각이 있다면 지금 즉시 피해 여성들과 국민께 진심 어린 사죄를 하고 지상파와 라디오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할 것”이라며 “해당 방송사와 서울시 역시 이에 대한 책임 있는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김 씨는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지난달 26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미투 운동을 공작에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한 거지 미투 운동이 곧 공작이라고 한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전문가의 우려
“공감 부재 발언”

 
여론의 반응은 어떨까. 김어준 씨의 발언에 동조 의견도 있으나 정치적 사안으로 엮게 되면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 어려울 수 있다는 비판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김 씨의 팟캐스트가 공개된 직후 누리꾼들은 각종 SNS를 통해 설전을 벌였다. 여성의 성폭력 피해 사실인 미투를 정치적 관점으로 끌어왔다며 비난의 목소리가 일단 컸다.

SNS에서 한 이용자는 “김 씨로 인해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진보 좌파 인사를 지목하는 미투 운동을 하기는 어려워졌다”면서 “피해 사실을 밝히자마자 우파 공작 아니냐며 진실성을 의심하는 수많은 댓글들이 고발인을 향해 쏟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김 씨에게 놀란 건 미투 이야기를 하면서 ‘섹스’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 어떤 여성도 미투에서 섹스라는 단어를 연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나는 증언자의 말을 들으며 ‘폭력’이란 단어만 머리에 떠올랐다. 그의 머릿속이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김 씨의 발언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높아 논쟁이 치열하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여성인권이 중요하지만 김 씨가 어떤 의미로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며 “이슈를 이용해 진보 진영이 거짓 정보로 무차별 폭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줬다고 생각한다”고 동의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이소희 사무국장은 “피해 당사자들이 ‘내가 겪었던 피해가 어떤 것이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절절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정치공작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예언한 것은 그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공감이 부재한 발언”이라며 “변화해야 된다는 목소리에 입막음을 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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