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적 자유 침해 행위”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퍼지면서 성범죄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직접적인 신체 접촉 없이도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와 이목이 집중된다. 간접적으로 상대방을 협박해 나체 사진 등을 스스로 찍게 해 전송받았다면 강제추행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겁박해 사진 받으면 ‘유죄’, 자의로 촬영한 사진 받으면 ‘무죄’

채팅 어플리케이션(이하 앱)을 통해 알게 된 여성들을 협박해 나체 사진 등을 스스로 찍게 해 전송 받았다면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없어도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심‧2심 깨고
고법으로 돌려보내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지난달 25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4년과 2015년 스마트폰 채팅앱을 통해 알게 된 피해 여성들에게 은밀한 신체 부위가 드러난 사진을 전송받았다. 이후 개인정보와 사진 등을 지인들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나체 사진 등 추가 사진과 동영상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피해 여성들 가운데는 10대 청소년도 포함돼 있었으나 A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를 활용해 피해자의 지인들까지 파악해 놓고 협박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참다못한 피해자들의 신고로 A씨는 결국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원심은 강제추행 혐의는 무죄라며 대신 강요죄가 인정된다고 봤다.

1심과 2심은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심은 A씨에게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했으나 2심은 강요 혐의만 인정하고 강제추행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A씨는 피해자들과 다른 장소에 있으면서 휴대전화로 협박해 사진과 동영상을 전송받은 것으로 피해자들의 신체에 대한 즉각적인 접촉 또는 공격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피해자들도 사법기관 신고 등을 통해 요구나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리하자면 실제 신체적 접촉이나 그에 버금가는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가 없었다는 것. 또 동종 전과가 없고 피해자들과 합의가 이뤄진 점 등을 고려해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단은 달랐다. A씨가 피해자들을 도구로 삼아 그들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강제추행죄를 저질렀다고 봤다.

대법원은 “A씨가 협박해 겁을 먹은 피해자들이 어쩔 수 없이 나체나 속옷만 입은 상태로 스스로를 촬영하는 등 행위를 했다면 이는 피해자들을 도구 삼아 그들의 신체를 이용해 성적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며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피해자들을 이용해 강제 추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고 신체에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다고 해도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며 “신체 접촉이 있는 경우와 동등한 정도로 성적 수치심 내지 혐오감을 주거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강제추행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상대방이 보낸
‘셀카’ 유포, ‘무죄’

 
애인이 하복부에 새긴 이름 문신을 스스로 찍어 보낸 사진을 SNS에 올린 것은 성폭력처벌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도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남자친구가 자신의 신체에 이름을 새긴 문신을 찍어 보낸 사진을 SNS에 올린 혐의로 기소된 B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1심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을 유죄로 판단해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비방 목적이 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명예훼손 혐의를 무죄로 봤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 사진이 전시됐다며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것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찍은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며 파기했다.

재판부는 “성폭력처벌상 촬영물은 ‘다른 사람’을 대상자로 해 그 신체를 촬영한 것임이 문언상 명백하다”며 “자의에 의해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까지 위 조항의 촬영물에 포함시키는 것은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난 해석이다”고 지적했다.
 
리벤지 포르노‧몰카
가해자에 구상권 청구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 ‘몰카(몰래카메라)’ 피해를 입은 이들이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지난달 20일 불법촬영물 피해자에 대한 삭제 지원 근거 및 가해자에 대한 구상권 행사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이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정법률은 국가가 불법촬영물 피해자에게 촬영물 삭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삭제 지원에 소요되는 비용에 대해서는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성폭력상담소 및 상담원교육훈련시설의 신고 민원 처리기간을 10일(변경 시 5일)로 명시했다.

이번 법률 개정으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에 대한 근거가 마련돼 앞으로 국가가 피해자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국회는 이날 성범죄자의 취업제한 대상기관을 확대하는 내용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도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 법률들은 공포 후 6개월 뒤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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